공원에서 짜장면 시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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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짜장면 시키는 사람들

허영섭

2012년 03월 23일 (금) 00:31:39

이번엔 ‘분당선 담배녀’가 얘깃거리입니다. 어느 여성이 지하철 객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이를 말리는 옆자리의 할아버지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대들었다는 것이지요. 누가 찍었는지 모르지만, 동영상이 인터넷에 나돌면서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지하철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말리는 어른에게 대들었다는 얘기가 그렇게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경춘선 열차에서 승객들이 술판을 벌이는 장면이 인터넷에 소개되어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등산을 갔다 돌아오는 10여명의 남녀 일행들이 객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술잔을 돌리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다른 승객들의 눈총이 쏠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한 채 종이컵에 맥주를 따라 마시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요구되는 기본 예절과 공공질서를 잃어가는 우리 사회의 솔직한 단면을 보여주는 모습들입니다. 네티즌들의 표현에 따르면, 그야말로 개념이 없는 처신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일일이 잘못됐다며 지적하고 탓하기에도 진저리가 날 정도입니다. 우리의 가까운 주변에서 비슷한 경우들이 너무도 자주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무슨무슨 막말녀만 해도 시리즈를 이룰 정도입니다. ‘4호선 막말녀’가 있고, ‘9호선 막말녀’가 따로 있습니다. 거기에 ‘택시 막말녀’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10대로 여겨지는 여학생이 지하철 좌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았다가 옆자리 할머니에게 훈계를 듣자 끝내 참지 못하고 대들며 난투극을 벌인 ‘지하철 패륜녀’ 유행어까지 등장했던 것입니다.

물론, 각각의 경우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처지에서 과연 어느 쪽이 잘못됐고, 어느 쪽이 피해자인지를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서로 시비가 붙은 상황에서 욕지거리를 내뱉고, 머리채를 잡고, 발길질을 해 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아량과 인내심이 점차 메말라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인터넷을 후끈 달궜던 개똥녀 사건을 비롯해 국물녀, 진상녀, 폭행녀 등의 사건들이 대체로 그런 결과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당장 내 입장과 기분만 좋으면 남의 생각은 신경 쓸 바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KTX의 화장실에서 승객들이 몰래 내뿜은 담배연기로 인해 열차가 몇 번인가 멈춰섰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옛부터 삼강오륜을 논하면서 서로 원칙과 예의를 지키는 데 소홀함이 없었던 우리 사회가 어째서 이렇게 감각이 무뎌졌을까요. 그렇다고 고리타분하게 공자님이나 맹자님 말씀을 들추자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평소의 일상생활에서 이웃끼리 불쾌감과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지낼 수 있도록 마지막 한계선을 넘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미 상당히 변해가고 있습니다. 길바닥에 가래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쯤은 당연한 권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공원에서도 아무리 범칙금 엄포를 놓아도 애완견 배설물은 여전하며, 시속 20km의 제한속도 표시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들의 질주본능은 그칠 줄 모릅니다. 자칫 자전거끼리 피하려다 바로 옆의 보도로 걸어가는 산책객들을 덮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지하철 계단에서 우산대를 앞뒤로 휘저으며 올라가는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그 우산 꼭지가 뒤따라 올라가는 사람의 얼굴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지하철에 올라타고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접어 다른 승객이 앉아 있는 머리 위의 짐칸에 버젓이 올려놓는 사람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태가 변하면서 공중질서와 도덕의 훼손에 대해 용인하는 범위가 점차 넓혀지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제는 숙녀분들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화장을 해도 으레 그러려니 넘어갈 뿐입니다. 거기에 시비를 걸다가는 필경 남성우월론자 내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도장을 찍히기 십상입니다. 전철에서 커피를 마시고, 햄버거를 먹고, 스티로폼 용기에 떡볶이까지 들고와 나눠먹기도 합니다.

공원에서 짜장면을 시키는 것은 또 어떨까요. 처음 몇 명이 시작할 때는 재미도 있고, 낭만일 수도 있고, 사진으로 남길 만한 추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모두 짜장면을 시키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서로에게 짜증이고, 공해일 뿐입니다. 지하철 승객들이 자리에 앉아서 저마다 김밥을 먹거나 화장품을 꺼내놓고 얼굴을 다듬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광화문 네거리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짜장면을 배달시키는 장면을 목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왜 잘못이냐고 항변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지요. 어느 한 사람에게 허용될 경우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허용돼야 하고, 결국에는 모두에게 불편과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동영상을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나무라기에 앞서 스스로 개념 없는 처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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