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중우(衆愚)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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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중우(衆愚)정치

황경춘

2012년 04월 02일 (월) 02:10:50

난숙(爛熟)한 자본주의가 금융시장이란 공룡(恐龍)에 짓밟혀 경제적 빈사 상태에 빠졌던 이탈리아가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 지 4개월이 되었습니다. 정치인이 아닌 경제학자로서 선거에 의하지 않고 대통령 지명으로 총리가 된 마리오 몬티(Mario Monti)와 그가 이끄는 전원이 경제 전문가인 이색 내각은 긴축 정책으로 일단은 이탈리아를 파산에서 구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민주주의를 무엇보다 앞세우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몬티를 영접하였을 때 그의 비민주적 선임에는 전연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표지에 그를 소개하며 “과연 이 사람이 유럽을 구할 수 있을까?”라고 토를 달았고 특집기사 제목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직업 정치인이 아닌 몬티는 지난 4개월 동안 이탈리아 정치사상 드물게 보는 개혁정책으로 이탈리아를 위기에서 구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유럽을 아니 온 세계를 경제 공황의 악몽에서 잠시 한숨 돌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특별한 묘책을 쓴 것은 아닙니다. 그는 다만 전임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실천에 옮기지 못한 정책을 과감하게 밀고나가며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정도(正道)인 세출을 줄이고 세입을 늘리는 길을 따랐을 뿐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다음 선거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유권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이점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극우와 극좌 소수 정당을 제외한 중도 우파인 전 여당과 중도 좌파인 최대 야당이 모두 그의 정책을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제(稅制) 및 퍼주기 복지정책 개혁 등을 추진하는 데 있어, 변호사, 공증인, 신문기자, 그리고 노동조합 등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에는 발행부수에 따라 정부가 신문사에 보조금을 주는 별난 제도가 있어 전 내각 때 약간 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보조금을 전폐하면 100개에 가까운 신문이 폐간 위기를 맞는다고 야단이 났습니다.

이렇게 개혁이 추진되면서 유권자 사이에는 상하원 합쳐 천(千) 명 가까이 되는 의원이 추진하지 못한 개혁을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소수 경제전문가들이 해내고있으니 입법부에 대한 불신과 불평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정계에서는 과거 말만 많고 부진했던 의원 수 감축을 포함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4월에 들면서 몬티 내각은 그의 개혁정책에 가장 큰 난관인 노동법 개정으로 노동조합과 대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고용주가 종업원을 해고하는 절차를 더 쉽게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으로 벌써 일부 노조는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세 갈래로 분립된 노동단체들과의 교섭을 어떻게 마무리짓느냐에 현 이탈리아 경제개혁정책의 앞날이 달려 있다고 EU(유럽연합)의 경제 받침돌인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독자를 가진 이탈리아 거주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 여사는 최근에 쓴 글에서 지금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이 생각은 하고 있지만 대놓고 말 못하는 한 가지 사연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는 이제 기능불가(機能不可)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라 했습니다.

왜 큰 소리로 그렇게 떠벌리지 못하냐고 하면, 첫째 그것은 몇 세기에 걸쳐 쌓아올린 문명을 스스로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되면 중국의 민주주의가 어떻다 자유가 어떻다 비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지적했습니다.

사실 2천5백 년 전 공화제 정치를 제창한 그리스가 경제 위기를 맞고 오랜 공화정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가 저 지경으로 중우정치(衆愚政治 mobocracy)로 타락한 요즘, 민주주의에 대한 걱정은 정치학자의 몫뿐이 아니겠습니다만, 이탈리아의 경우 선거에서 뽑힌 선량(選良)은 그 자리에 남은 채 지도자만 바뀜으로써 개혁이 제대로 추진되는 것을 보고 유권자들은 생각할 점이 많다고 느끼게 된 것입니다.

시오노 여사는 500 년 전 르네상스 시대의 마키아벨리가 그의 책 ‘정략론(政略論)’에서 공화정치 로마와 베네치아 공화국의 예를 들며 “이런 제도의 도입에 눈을 뜨지 않는 나라는 종래 정체(政體)를 지키려 들면 나라가 망하고, 나라의 멸망을 피하려 하면 정체 그 자체를 부숴야 하는 벽에 부딪힌다”고 말한 것을 인용, ”이탈리아의 몬티는 이미 이 실험을 시작하였다. 일본도 남의 일로만 볼 수 없지 않으 냐“고 다그치는 말로 그의 글을 맺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사태에서 배울 교훈이 많을 거라 생각하여 시오노 여사의 글 일부를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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