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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간 (2)
장주익 2012년 04월 05일 (목) 01:55:27
건물 하나로 어느 도시가 바로 떠올려지거나 나아가 나라 전체가 연상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건물 중에 그러한 건물의 첫째를 꼽는 게 허락된다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꼽고 싶습니다.

반백년 전인 1956년, 호주에서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지사(Joe Cahill)가 시드니 항내 삐죽하게 나온 베네롱 곶(Bennelong Point) 1만8천 평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로 하고 국제현상설계를 공모합니다. 약 200여 점이 세계 각지로부터 도착합니다.

4명의 심사위원 중의 1명인 유로 사리넨(Eero Saarinen 1910~1961, 핀란드 태생이면서 미국에서 활동한 건축가)은 심사장에 다소 늦게 도착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미 1차 예심에서 떨어져 옆으로 치워놓은 설계안들 중에서 하나를 발견하여 집어 들고는 “이것이다. 이게 당선작이다! 천재인데!” 라고 소리치게 됩니다.

1957년 1월 29일 이른 아침, 39세의 무명 건축가이던 웃숀(Jorn Utzon 1918~2008)은 덴마크의 자택에서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깹니다. 시드니로부터의 당선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곧 이어 시드니로 날아가고, 그곳에서 상세 설계 작업을 하며 공사 책임자가 됩니다.

설계안의 둥근 지붕을 보고 사람들은 바람을 잔뜩 안은 배의 ‘돛’ 같다고 하거나 ‘조개껍질’ 형상이라는 둥, 어느 경우는 비상하려는 ‘새’ 같다거나 ‘수녀 모자’ 같다고 들도 합니다만 웃숀‘ 자신은 어느 날 우연히 오렌지 껍질을 벗기다가 얻은 착상이라고 말합니다.

공사의 1단계인 기단 부문의 경우 1961년에 공사가 끝납니다. 그러나 벽과 지붕이 연결된 10개의 조개껍질(Shell) 모양의 지붕부문 공사는 진척이 지지부진합니다. 부풀어 오른 돛 같은 둥근 지붕은 천이나 섬유가 아니라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져야 하며 이 조개껍질(Shell) 모양의 제일 높은 곳에서 바닥까지는 68미터에 달하는데 공연장내에 기둥을 세울 수 도 없었습니다.

또한 바다를 향한 대형 유리부분은 벽의 기능을 하면서 기후 변화에도 견뎌야 하는 등…. 그 같은 구조물의 공사가 전 세계 어디에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보니 공사 방법의 연구나 시행착오 등에 당초 예정되었던 5년의 공사기간은 훌쩍 넘어서고 700만 호주 달러의 예산도 이미 많이 초과하게 됩니다.

‘Shell’을 덮은 자기로 된 흰색 타일만 해도 스웨덴에서 곰팡이가 슬지 않아 청소가 필요 없는 자기 타일을 연구,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3년이나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65년 주지사 선거가 있었고 새로 당선된 주지사(Robert Askin)와 담당 장관(David Hughes)은 이미 공사 기간과 예산을 크게 초과하고 있는 오페라하우스에 대하여 조치를 강구하게 됩니다. 또 당시 호주 국영방송에서는 제1극장을 관객이 적은 오페라 극장보다는 콘서트홀로 변경할 것을 끈질기게 주장해 오고 있었습니다.

1966년 2월, 새로운 주정부는 수차례의 회의와 검토를 거친 끝에 급기야 발주처로 하여금 공사비 지출을 중단토록 하게 하고는 공사 책임자인 웃숀에게는 사퇴 압력을 가합니다.

4월말 웃숀은 가족과 함께 호주를 떠나며 말합니다. “다시는 호주에 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그동안 주정부와의 알력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주정부는 호주 건축가(Peter Hall등) 3명을 내세워 공사를 빨리 끝내도록 독려하게 됩니다. 제1극장이 오페라에서 콘서트홀로 바뀌게 되고 항구에 도착한 무대장치는 건물 내에 넣지도 않은 채 거대한 겉모습을 완성하는데 급급하다보니 많은 부분이 생략, 변경, 단순화되어갑니다.

1973년 10월 20일, 설계안이 확정된 후 17년 만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영연방을 대표하는)이 참석한 가운데 시드니오페라하우스는 준공식을 갖습니다. 웃숀은 초대되었지만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 후, 시간이 한참 흐른, 1999년 설계안이 당선된 후 42년이 지나고, 웃숀이 호주를 떠난지 33년이 지난 후, 호주 주정부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재단은 81세인 웃숀과 화해를 시도하여 그로 하여금 앞으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모든 디자인에 대하여 지침을 내리도록 하게 합니다.

2003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설립 30주년에 즈음하여 웃숀은 건축계의 최고의 명예이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Pritzker) 상을 85세에 받습니다. 2004년 오페라하우스 내에 ‘웃숀 룸’을 웃숀의 인테리어 설계로 개설하는데 이는 그의 설계가 적용된 유일한 내부 공간 입니다.

2006년 서쪽 주랑(Colonnade)은 웃숀 설계에 의하여 준공되는데 이 역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테이프를 커팅하면서 웃숀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공식 설계자로 명명하게 됩니다.

2007년 1월 UNESCO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합니다. 오래된 역사유물이 아니고 건물이 준공된 지 34년 만에 등재되다보니 ‘최연소’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합니다. 2008년 11월 29일 웃숀은 결국, 그의 눈으로 직접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완공된 모습을 보지 않은 채 90세의 나이에 덴마크의 자택에서 잠자던 중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그의 서거 소식에 세계 각지로부터 수많은 애도 전문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덴마크보다는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로 쏟아져 들어왔다고 합니다.

장주익
제물포고, 고려대를 나와 직장 (애경,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금강개발, 뉴코아백화점 등)에서 근무. 정년퇴임 후 젊어서부터 관심 있던 건축분야에서 건축물의 이해를 돕는 해설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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