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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둥이 카드와 복지정책
이승훈 2012년 04월 10일 (화) 02:24:09
매달 한 번 열리는 치과의사들의 모임. 같은 구에서 근무하는 치과의사들끼리 모여서 사는 이야기와 안부를 나누면서 앞으로 치과의사들이 나아갈 길도 함께 의논하는 자리입니다. 이번 회의의 주요 안건은 다둥이 카드 혜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다둥이 카드는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 중 하나로, 일정 연령 이하의 어린이를 세 명 이상 둔 가정에 발급되는 신용카드입니다. 이 카드에는 다른 카드에 없는 몇 가지 혜택이 있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속한 구청에서도 복지 확대의 일환으로 다둥이 카드의 혜택을 늘리기로 했는데, 그 중에 치과 진료 할인을 집어넣을 생각으로 협조를 요청해 온 것입니다.

갑론을박 끝에 일단 다음 달 모임에서 결론을 내리기로 하고 회의를 끝냈지만 집으로 가는 내내 개운치 않은 느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복지를 늘리는 것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복지 혜택을 통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 해소에도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당연히 찬성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서 이번 다둥이 카드 혜택에 반대했던 치과의사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사업이라면 필연적으로 거기에 따른 복지예산 역시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번 다둥이 카드를 통해 진료비를 할인해 주는 치과의사에 대한 보상은 조금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즉, 복지 정책 시행을 통한 생색은 정부가 내지만 그 과정에 필요한 재원은 치과의사들의 봉사로 채우겠다는 방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느낀 것입니다.

만약 치과의사 사이에서 사회를 위해 봉사하자는 목소리가 자발적으로 나왔거나, 구청 쪽에서 제안이 올 때 할인해 주는 진료비의 일부를 보상해 준다거나,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현재 받고 있는 할인 혜택이 치과의사의 봉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면 대다수의 치과의사들은 찬성을 했을 겁니다. 비록 크게 부담 가지 않는 금액이긴 하지만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듯한 시행 과정이 반감을 만들어 낸 것이죠.

내일이면 4ㆍ11총선입니다. 막판 선거전이 과열되면서 여당은 김용민 후보의 막말을, 야당은 문대성 후보의 논문 표절을 공격하는 식의 폭로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지만, 공약을 놓고 봤을 때 이번 선거의 이슈는 복지 정책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도 현재보다 세금을 늘리지 않고도 그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모습은 별 신뢰가 안 갑니다. 세금을 거두는 전체적인 비율을 높이지 않고 철저한 징수와 예산 절약만으로도 현재의 몇 배가 넘는 복지 예산을 충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그것도 여당 의원들이 주장한다는 것은 현재 자신들의 세금 징수나 세금 집행 과정에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이렇게 주장한 달콤한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번 다둥이 카드와 마찬가지로 정책 입안과 시행을 통한 생색은 정치인들이 다 내고 필요한 재화와 시간은 민간인들의 봉사를 통해 조달하는 방식이 여기저기서 이뤄지진 않을지 걱정입니다.

어차피 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현실성 없는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정치인 개인의 능력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유권자들의 의식 수준이 낮다는 반증입니다.

복지를 늘려서 힘들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것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에 투입해야 하는 재화와 시간이 유한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마법 같은 것이 아니라 한정된 재화와 시간을 적재적소에 분배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유권자들의 혜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1979년 서울 출생. 단국대 치대 졸.
2008년 <한맥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치과의사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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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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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생활 현장에서 소재를 찾아 시의 적절하게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선거 전후하여 비슷한 경험들을 했을 것 같은데, 이승훈님의 글로 공감대를 넓혔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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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09: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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