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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으로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신아연 2012년 04월 12일 (목) 00:29:31
나이 들수록 자꾸 살이 찌니 뭘 먹기가 겁이 납니다. 같은 체중을 유지하려면 예전에 먹던 양보다 30% 정도를 덜 먹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후 배불리 밥을 먹어본 지가 언제인가 싶습니다. 풍족한 세대임에도 양껏 배를 채울 수 없는 게 딴엔 서럽지만 체중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살이 찌고 나면 단 백 그램이라도 빼기가 얼마나 힘든지 역시 경험이 말해 주었기에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먹는 데 비해 에너지 소모량이 많아 키와 몸무게의 비례가 가장 적절하다는 표준 체중을 30년 넘게 유지하고 있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기준점에 걸려 있어서 행여 그 수치를 넘기게 될까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휴전 없이 죽을 때까지 계속될 이른바 ‘살과의 전쟁’ 입니다.

남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몰라도 같은 몸무게를 지켜 나가는 것이 제게는 삶의 긴장이자 작은 성취,나아가 행복일 때가 있습니다. 작으나마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 쾌락과는 구분되는 내밀한 기쁨이기도 합니다.

그 밖에 정리 정돈을 잘 한다든가, 절약하는 편이라든가, 규칙적으로 글을 쓴다든가 하는, 제 자신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게 해주는 습관들이 몇 가지 더 있어서 살아가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저로서는 타성과 관성을 거스르며 노력한 절제와 인내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시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일상의 행복을 가꾸는 데도 어느 정도의 내공과 훈련이 필요한데, 영속적이며 궁극적인 행복의 원천이랄 수 있는 인간의 도리나 정의로운 태도, 신중한 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가까운 사람을 시기 질투하지 않는 마음,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반성 등을 내면화하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 일생을 두고 정진한다 한들 그런 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질 수나 있는 건지, 나아가 어느 정도 수련이 되었다 해도 무엇을 절대 기준으로 삼아 평가받을 수 있을지 막막하고 아득할 때도 있습니다. 그에 앞서 선험적이며 절대적인 가치나 윤리적 틀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마저도 모호한 상황에서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다양한 잣대로 문제를 상대화 하거나 그러한 논의나 노력 자체를 무화( 無化)시킬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체중이 줄고 느는 것이야 저울만 정확하면 냉큼 올라가 보면 바로 알 일이며, 집이 지저분하거나 통장의 잔고가 확연히 줄었다면, 글쓰기에 게을러졌다면 느슨해진 생활을 다잡으면 될 일이지만 삶의 진정한 행복과 의미를 부여할 제 자신의 영적, 정신적 성장과 성취의 정도는 무얼 기준으로 점검하며 어떤 자각과 의지로 지켜가야 할지요.

이성복이라는 시인은 진정한 사랑이란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인간의 생리대로라면 당연히 ‘입으로 먹고 항문으로 배설해야’ 하지만, 우리의 본능과 본성을 거슬러 의미를 찾고 성찰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생리 시스템마저 거꾸로 하려는 결단이 요구된다는 뜻일 겁니다. 어찌 사랑뿐이겠습니까. 신뢰와 우정,자유를 비롯하여 사람답게 사는 모든 것을 추구하기 위한 각오도 이 말을 빌려 담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한다’는 인문학적 배경의 성찰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유대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한 예수의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그는 엉뚱하게도 “이미 태어나 늙기까지 한 사람이 어떻게 모태에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사람이 정말로 두 번 모태에 들어가는 일이 가능합니까.“라고 반문합니다. 마치 ‘사람이 입으로 먹지 어떻게 항문으로 먹느냐’는 반문의 ‘기독교 버전’처럼 들립니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는 육의 사람을 벗고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 성령을 덧입어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써 ‘항문으로 먹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으로 먹는 것’에 타성과 습관이 든 저야 체중계의 눈금 따위에 큰 의미를 두고 행복을 찾지만, ‘항문으로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인간 너머의 절대적 존재를 인정하고 그 존재가 인간의 역사와 개인의 삶 속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영속적인 의미와 행복을 찾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은 영혼을 빚어내는 골짜기’라는 존 키츠의 말이 깊이 와닿을 것입니다. 영적 세계관을 선택하기로 결단하는 순간, 엄연하고 뚜렷한 가치와 절대적 윤리 기준에 의해 격려와 질책을 받으며 ‘영혼의 성장’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향해 그 삶이 이끌려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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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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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김윤옥님,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모든 것에 욕심을 버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가지고 싶은 것이 저의 욕심이라 우습지만 저는 부페 식당엘 가면 식탐으로 정신을 못 차리지요.^^ 옷을 사러가도 그렇구요. 그러니 저같은 사람은 절제에 또 절제가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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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5 12: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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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marius님, 왜람되지만 이제는 죽음에 대해 거의 매일 생각하며 삽니다. 죽음을 가까이 느낄수록, 자꾸 실감해 보려고 할수록 삶에 더욱 깨어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영원한 안식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문제는 살아있는 동안을 헛되이 보내는 것에 자책감을 느끼지요.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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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5 12: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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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110.XXX.XXX.229)
최근에 *금식, 당신이 잃어버린 황금열쇠* (마크 나이스 원더 지음_박갑용 옮김)라는 책을 펴낸이로부터 받았습니다. 아마도 금식으로 우리의 영적 성숙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하는게 아닐까, 짐작하며 정독하리라 맘을 먹었습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가끔 생각하면서도 무절제하게 맛있는 음식에 탐닉하는 저 자신에 실망 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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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3 20: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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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220.XXX.XXX.84)
30%
참 끌리는 말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잊고 버리고 저 미지의 행로를 찾아가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쓰신 글을 읽고 이 생각 저 생각 해봤습니다. 앙드레 지이드의 '지상의 낙원'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유인 인공위성이 공중 폭발하고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한 연설문도..... 두 사람의 글이 극과 극이지요. 죽은 자들은 이제 무거운 지상의 짐을 내려놓고 하느님곁으로 가는 자들에게 신의 축복(God bless you!)이라 했습니다(레이건). 지이드는 모든 정신적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나침반을 하늘 보다는 땅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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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3 10: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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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래 (110.XXX.XXX.249)
신아연씨 글을 읽고 多夕 柳永謨 선생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다석은 '肉의 사람을 벗고, 靈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 즉 '復活' '거듭남'을 <'몸나'를 죽이고 '얼나'로 거듭 태어나는>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우리 몸의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게 부활,거듭남이 아니고 '육신으로 살아가는 삶을 죽이고 영성, 성령으로 살아가는 것'이 거듭남이고 그래야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지요.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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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3 07: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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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110.XXX.XXX.249)
신아연 선생님

또 한번 홈란을 치셨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해 바람 불면 날라갈 정도로 삐쩍 말르고 백지장 처럼 창백해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먹을 것이 있으니까 배가 나와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나야말로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 해야할것 같습니다. 인생은 파라독스로 꽉 차 있습니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노숙자였고 결혼도 안 했고 출세도 못했으나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좋은 글 계속해 쓰셔서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못한 사람들을 위로해 주세요. 그것 보다 도 가치 있는 삶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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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2 1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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