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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 찬가
김영환 2012년 04월 24일 (화) 00:26:35
바람막이 하나 없는 들판에서 얼어 죽은 것처럼 누렇게 움츠려 있던 부추에 새순이 나오더니 금세 부쩍 컸습니다. 대파도 하늘을 향하여 기지개를 켜더니 어느새 씨앗을 준비하는 봉오리가 생겼습니다. 감자도 눈을 심은 지 한 달만에 땅 위로 귀여운 연두색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얼마 전 파주의 허브하우스에서 15년생이라는 로즈마리가 보랏빛 꽃을 활짝 내뿜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 김포의 꽃집에 들렀더니 온실 밖에 내놓은 로즈마리 꽃이 비바람을 맞으며 웃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물가가 오르고 생활이 곤핍해도 봄은 벌써 우리 곁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괜히 졸리고 몸이 이리저리 찌뿌드드한 춘곤증에는 봄나물이 으뜸이라고 합니다. 봄나물이라면 맛으로나 성분으로나 단연 냉이죠. 냉이는 3월 중순에서 하순까지 캔 것을 제일로 친다는군요. 땅을 기어가듯이 짓밟혀도 죽지 않는 모진 생명력. 누구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냉이는 왜 그렇게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지요.

냉이는 된장찌개용으로 좋다는데 어느 동태찌개 집에서는 마지막에 풋풋한 냉이를 얹어 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오래 끓이면 물러지고 향이 사라지기 때문이랍니다. 냉이는 뚝배기에 한 두 개만 넣어도 군침이 도는 독특한 맛과 향이 배어나오죠. 냉이에는 소금의 흡수를 막아주는 칼륨을 비롯하여 마그네슘, 나트륨, 구리, 아연 등의 무기물과 비타민 A, B1, B2, B6, C, 엽산과 간에 좋은 메티오닌 등 아미노산도 풍부하다고 합니다.

몸에 이롭지 않은 봄나물과 산채가 어디 있을까만 혹한을 견디고 일찍 새순을 만드는 식물일수록 강인한 생명력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좋은 자양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딸기를 비롯하여 민들레, 봄동, 부추, 대파, 쪽파, 두릅, 쑥 등 모두 그렇죠. 거꾸로 비실비실하는 나무에 사람이 맞는 포도당 주사를 놓았다는 애호가도 있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순환하는 영양소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죠.

얼마 전 어느 일본 월간지를 보니 식물 속의 비타민 함량이 대폭 감소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출하되어 대형 할인점을 채우는 식물을 보면서 언제가 제철인지 맞힐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제철에 나지 않는 식물의 비타민이 제철 때의 비타민보다 함량이 매우 줄어든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2월산 시금치의 비타민은 8월산에 비해 비타민C 함량이 8배라고 합니다. 그만큼 제철 나물이 중요하다는 건데요.

나물은 잔손이 많이 가지요. 대형 할인점의 냉이야 깨끗하게 씻겨 나오지만 들판의 냉이나 아기 쑥은 국을 끓이더라도 흙을 걸러내려면 수 없이 여러 번 씻어야 하고 큰 쑥은 푹 삶아서 풀독을 뺀 뒤에 다시 끓여야 합니다. 하지만 잔손이 간 만큼 미각의 보람이 있지요.

나물은 한식에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 마이클 잭슨이 10여 년 전 우리 비빔밥에 반했다고 했죠. 기내식도 비빔밥이 인기라는데 한식의 세계화를 향한 가능성이 믿음직스런 대목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젓가락이 갈 데가 없는 국적 불명의 좀스런 퓨전 한식을 싫어합니다. 퓨전이 한식의 세계화에는 기여할지 모르지만 서빙하는 여인들의 개량 한복이 주는 소외감도 그렇고 짧게는 김장김치에서부터 길게는 수십 년 묵은 된장과 간장이 존재하는 한식의 정신이 배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전국 곳곳에 ‘산채 정식’메뉴가 있다시피 나물을 빼놓을 수 없는 한식을 발전시키려면 젊은이들의 미각이 중요한데 풀 근처에는 젓가락이 가질 않는 젊은이들이 문제입니다. 어른들은 구황식물의 고마움을 경험했기에 나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일부 젊은이들은 육류와 패스트푸드에 인이 박여 나물을 싫어하는 것이죠. 외국에서 나이 드신 동포들이 나물의 향수에 젖어 우리 식으로 들판에서 고사리 같은 산나물을 캐다가 자연자원 훼손으로 적발되어 수십 만 원의 벌금을 문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습니다.

오지의 천연환경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경북 영양군에서는 5월18일부터 사흘간 자생식물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제8회 ‘영양 산채 한마당’이 열린답니다. “산나물은 약초다”, “산나물은 웰빙 음식으로 지친 현대인들의 기를 북돋아 주는 데 더 없이 좋은 음식”이라고 자랑합니다. 인스턴트 시대의 속성 음식에 시달린 심신을 자연이 내린 산채의 ‘슬로푸드’로 되살리는데 도움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기차 타고 영양에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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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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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121.XXX.XXX.42)
누구 바람낼 일 있어요? 안 그래도 마누라는 요즘 봄나물 캔다며 종일 땡볕에 나가 산답니디다. 아예 나물로 연명하고 있지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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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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