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냄새와 사람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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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냄새와 사람향기

김홍묵

2012년 05월 02일 (수) 01:55:17

어느 대학 교수가 5만 원짜리 새 돈 한 장을 꺼내 들고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돈을 갖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봐요.” 학생들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는 돈을 마구 구겨버리고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 돈을 갖고 싶은 사람?” 이번에도 죄다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는 구겨진 돈을 발로 짓밟아 발자국으로 얼룩진 돈을 들고,
“이 돈이라도 갖고 싶은 사람?” 그래도 전부가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새 돈이나 헌 돈이나 똑같은 효용이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군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건강하고 꿈이 파랗고 환경이 좋은 사람도, 좌절하고 만신창이가 된 사람도 스스로는 다 ‘소중한 나’입니다.”
친구가 E-mail로 보내 온 ‘좋은 글’ 중의 하나입니다.

돈 대신 사람을 대입하면 어떨까요. 배우자로 선택하고 싶은 상대, 신입사원으로 선발하려는 응시자, 친구로 사귀고 싶은 사람…. 그 대상으로 젊고 용모가 빼어나고 스펙도 화려하고 가문도 직장도 훌륭한 젊은이, 직업도 없이 가난하고 재산도 용모도 보잘것없는 중년, 늙고 병들고 여력도 없는 노인 중 어떤 사람을 택할까요. 새 돈이나 헌 돈처럼 똑같은 효용가치를 인정할까요?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과 동떨어져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부부 부자 조손 형제자매 친구 사제 간의 사랑 화목 존경과 신의는 원시공산사회 이래 인간을 특징짓는 본성입니다. 성악설(性惡說)보다 성선설(性善說)을 더 신봉하는 것도 본성에 더 충실하려는 인간의 상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칭송과 박수를 아낌없이 보냅니다. 유엔 사무총장ㆍ세계은행 총재ㆍ아이비리그(Ivy League) 대학 총장ㆍ세계 정상에 오른 스포츠맨ㆍ지구 최고봉을 정복한 산악인ㆍ한류(韓流) 전파로 국위를 선양한 엔터테이너…. 또한 아프리카 오지에서 가난과 병마를 씻어주는 의사ㆍ목사, 혹한의 남극기지에서 탐사와 연구 활동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에게도 경의와 격려를 보냅니다.

그런가 하면 신뢰할 수 없고 지탄받을 사람도 널려 있습니다. 뭉칫돈을 횡령한 교장, 선생님을 희롱하고 폭력까지 휘두르는 학생, 군사기밀을 판 군인, 상납을 밥 먹듯 한 경찰, 돈과 향응에 취한 판검사, 뇌물 받고 비리를 저지른 공직자, 로비에 놀아난 국회의원들입니다. 나라 곳간을 축내고 사람값을 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보다 더 우리를 슬프게 하는 축들도 계속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권력형 비리 연루자들입니다. 멘토(mentor)니 동향 출신이니 하는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이권에 개입하거나 로비자금을 받고 낙마하여 구속되는 모습은 국민들을 부끄럽고 창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임기 말만 되면 터지는 공직자 비리는 경제 대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격을 갉아 먹는 반국가 행위에 다름아닙니다.

모두가 돈 때문입니다. 그 돈은 찢거나 구겨 밟아도 제값을 쳐줍니다. 하지만 때 묻은 사람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말로는 ‘돈보다 사람이 소중하다’고 하지만 제 값을 매겨주지 않습니다. 선의라고 해도 함정이 없을까, 아쉬운 소리를 해도 믿을 수 있을까, 큰소리를 쳐도 허풍은 아닐까 하는 선입견과 의심을 떨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탁한 돈도 고약한 냄새가 나지만 돈으로 세탁한 사람은 악취가 나니까요.

요즘 화사한 봄꽃을 완상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지에 가지각색의 꽃을 피우는 동백ㆍ영산홍ㆍ군자란ㆍ제라늄ㆍ사랑초….
나무나 화초는 제때 물을 주지 않아도 잎이 시들해질 뿐 불평이 없습니다. 햇볕이 충분하지 않은 베란다에 자라면서도 해마다 같은 때, 같은 색, 같은 모양의 꽃을 어김없이 피워 화려한 자태와 향기를 선물합니다.

꽃이 피지 않는 활엽수나 침엽수도 봄이면 새잎으로 단장하여 싱그러운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대신 낙엽은 새잎 뒤쪽에 감추었다가 슬그머니 떨어뜨려 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니면 가을에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거름도 너무 많이 주면 죽을 정도로 탐하는 법이 없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습니다.

난초와 지초(芝草)는 심산유곡에서 자라지만 감상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항상 향기를 내뿜습니다. 사람도 심지가 굳고 곧으면 향내가 납니다. 청렴ㆍ검소하게 사는 청백리, 재능과 재물을 나누어 쓸 줄 아는 재산가, 말과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지식인, 사랑을 베풀면서 스스로를 낮추는 덕망가,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남의 위기나 목숨을 구해주는 의인들입니다. 그런 사람의 주위에 있는 사람도 향내가 납니다. 향 싼 종이에 향내나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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