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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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케이크

유능화

2012년 05월 03일 (목) 00:52:04

매주 수요일은 아버지와 아침식사를 같이 하는 날입니다 얼마 전 수요일 아버지가 식사하시기 전 저에게 불쑥 사진이 든 봉투를 하나 주셨습니다. 전 주 일요일에 우장산(雨裝山)을 오르신 후 제 아우와 함께 찍은 ‘우장산 등정 기념사진’이었습니다. 봉투 앞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人生萬事苦盡甘來(인생만사 고진감래)다. 살다보면 어렵고 힘들 때가 있지만 이것을 이겨내면 큰 행복이 온다. 나의 기분이 바로 이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큰 아들에게.”

아버지는 겨울이 끝날 무렵 잘못 넘어지는 바람에 척추에 선상 골절(Linear fracture) 이 생기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처음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데 한 시간 정도나 걸릴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셨습니다. 통증이 심하니 거동이 힘들어 지고, 더 나아가서는 변비도 심해지고 하루하루가 힘든 생활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내과 개업의 친구가 자기 아버지는 골절 후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고 말해 저는 속으로 은근히 걱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고를 당하고 3개월 만에 아버지가 우장산엘 올라가신 것이었습니다. 산의 높이라야 96m밖에 안 되고 매일 운동 삼아 가시던 곳이었지만 사고 후에 다시는 못 가실 줄 알았는데 다시 오르게 된 아버지에게는 특별한 감회가 드셨던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너무 기뻐서 같은 실버 아파트에 사는 어르신 130여분들과 50여명 되는 직원들에게 케이크를 돌렸습니다. 이른바 ‘우장산 등반기념 케이크’입니다.

그 케이크와 함께 돌린 봉투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회원님, 반갑습니다. 502호 유승헌입니다. 저는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하다가 넘어져서 척추골절을 당한 후 많은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차남 유필화 교수와 우장산 등반을 무사히 다녀오고 나니 너무 기뻐서 여러분들과 그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애정으로 힘이 되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모두 건강하시길 빕니다. 502호 유승헌 드림.”

그날 아침식사 시간에는 아버지가 어르신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덕분에 케이크를 잘 먹었습니다.” “더욱 건강하세요.” “오늘 더 좋아 보이시는데요.” 등등... 아버지가 사시는 실버 아파트에서는 별로 웃을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케이크 이벤트’로 인하여 어르신들이 모처럼 웃으시니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생일 케이크는 흔히 먹어본 적이 있겠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케이크는 처음 먹어보는지라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이었고, 그만큼 오가는 정도 순수해 보였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그 특별한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보여주신 마음가짐이 너무 멋지다,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첫째는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이요 , 둘째는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기뻐하는 마음이요, 셋째는 기쁨을 남들과 같이 나누는 마음입니다.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이야말로 아버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 오래 사시면서 멋진 모습을 더욱 자주 보여 주셨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