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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 오브 더 데이 (fish of the day)
신아연 2012년 05월 10일 (목) 00:54:30

‘fish of the day’
우리 식당 입구에 놓아 둔 어항 속 물고기를 짓궂게도 우리는 이렇게 부릅니다. 메뉴 가운데 생선 요리는 활어를 그 자리에서 잡아 손님 상에 올린다는 의미로 ‘fish of the day (오늘의 생선)’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손가락 한 마디 크기도 못 되는 그 녀석이 정말로 어느 날 ‘fish of the day’ 로 식탁에 오를 리는 없고 장난 삼아 어항 앞에 그렇게 써 놓았더니 아닌 게 아니라 무심코 오가는 손님들도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특별히 ‘키운다’고 할 것도 없이 그저 물이나 갈아주면서 ‘ 어이, fish of the day.’ 하고 한마디씩 놀리기나 한 것이 벌써 4개월쨉니다. 어항 물을 바꿔 주던 매니저가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며 “never die! (절대 안 죽네!)” 하던 때가 두 달도 더 전이니 우리는 이미 그때부터 녀석의 생명력을 신통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예쁘고 앙증맞아서,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한 번씩 들여다 보면서도 며칠이나 더 살려나 했던, 살면 살고 죽어도 그만이라 생각했던 것이 4개월이 넘고 보니 꿋꿋이 살아 가는 그 미물에 전과는 다른 눈길을 주게 됩니다.

어차피 가게 치장을 위한 것이라 죽으면 또 다른 고기를 사 넣을 요량으로 제깟 것 목숨보다 오히려 어항이 깨질까 보아 염려하던 것이 이제는 ‘그 물고기’가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 특정한 ‘그 생명체’에 마음이 기울게 된 것입니다.

국 대접 두 개를 포개 놓은 정도의 크기에 알록달록한 자갈 몇 개와 이끼 낀 플라스틱 수초 한 그루가 고작인 공간이 지루할 법도 하건만 작은 물고기는 지칠 줄 모르고 헤엄칩니다. 움직이면 살고 멈추면 죽기라도 할 듯 필사적 몸짓으로 한시도 쉬지 않고 몸을 놀리는 모습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발해서 꼭 영화 <쉬리>에 나오는 칩을 넣은 물고기를 연상케 합니다. 정말이지 경탄해 마지않을 생명력입니다.

일평생 곁에 둘 친구 하나 없는 실존적 절대 고독의 공간에 놓인 자신의 운명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데 집중하는 작은 물고기에 마음을 주기 시작한 이후, 이따금 그 하찮은 생명에 생각이 매여 조바심이 이는 생경스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그 물고기가 죽으면 제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생명 가진 것들의 에너지와 탄력도 함께 사그라질 것 같고, 어쩌면 잘 되던 장사가 기울어 버릴 것 같은 마술적 사고도 이따금 떠올라 가게에 들어서면 곧장 그 녀석부터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느낌의 총체는 밋밋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숨은 그림’처럼 내재하는 생명의 본질과 존재의 근원에 대한 신비와 경이의 조각을 찾아 내는 체험에 닿아 있습니다.

물질 세계의 배후, 어둠을 몰아내는 빛, 악을 따돌리는 선한 의지, 모방이 아닌 참된 것, 부정을 이기는 긍정의 힘등 이른바 엔트로피 법칙을 거스르는 일체의 창조적 에너지 같은 것 말입니다.

우리 물고기의 순도 높은 생명 에너지와 닮은 것들로 껍질을 깨고 가까스로 세상에 나오는 병아리, 아스팔트 틈 사이로 비집고 올라와 기어이 자신의 꽃을 피워내는 한 포기 식물, 겨우내 죽은 듯 딱딱하고 마른 가지를 뚫고 나온 여리디 여린 새순, 사춘기의 질풍노도를 통과한 청년, 젊은이와 다름없이 미래를 계획하는 백세 노인, 환골탈태한 신앙적 회심자 등을 함께 떠올려 봅니다.

이제 우리 가게 사람들은 더이상 무심코라도 그 물고기를 ‘fish of the day’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오래된 농담에 식상해서이거나, 아니면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살고 있는 것한테 장난말이라도 밥상 위에 올릴 식재료라고 하기가 미안해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미물 속에 내재하여 그 미물을 움직이는 생명의 근원적 손길 같은 걸 느낀 이후 그 녀석을 두고 잡아먹힐 존재라는 불경하고도 망측스런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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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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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110.XXX.XXX.229)
아무것도 아닌 것이 꽃피우고 열매 맺고 가을을 맞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람은 자연의 순리를 얼마나 성실하게 잘 따르는 것일까, 미물만도 못한 심정으로 돌아볼 때도 있습니다.
좁은 어항속을 분주하게 헤엄치는 작은 붕어 한 마리에서 "생명의 본질과 존재의 근원"을 유추하는 아연님의 깊은 통찰이나 그런 시간을 통해 더욱 살아있음에 감사 할 수 있는 겸손이 귀하게 읽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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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22: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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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감사합니다. 나이들어 갈수록 사람은 그대로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이 더욱 깊어집니다. 인간은 피조물일 뿐이라는 생각도요... 삶이 귀하고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피조물 중에서 인간은 좀 게으른 편이지요. 자연은 이렇게도 정확하고 성실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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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3 18: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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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220.XXX.XXX.168)
"그러한 느낌의 총체는 밋밋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숨은 그림’처럼 내재하는 생명의 본질과 존재의 근원에 대한 신비와 경이의 조각을 찾아 내는 체험에 닿아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문장인지! 다른 것도 다 아름다운 글이지만.
하루하루가 다르게 우리는 생각의 연못이 맑고 마음에 드는 그런 아침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주변을, 미세한 일상을 눈여겨 보면 볼수록 '나'를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 정원의 잎새들은 밤새도록 피어나는 달음질을 얼마나 쳤을까요! 그 살아있음을 발견하고 느끼고 하면서 우리는 삽니다. 그리고 이 지점까지 온 것이 아닐까요.그 깨어있음의 연속이 우리 삶의 진실이 아닌가 합니다.생명과 삶에 대해 애착을 갖게하는 이번 글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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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09: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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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감사합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격려를 해주시니. 제가 쓴 글보다 marius님의 글이 더욱 아름답고 세밀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숨은 그림'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인데 인간들이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영안이, 심안이 자꾸만 흐려지기 때문에 볼 수가 없는 거지요... 세상이 너무 그악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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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3 18: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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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우리 물고기가 매스컴을 탄 후 더욱 쌩쌩해 져야 할텐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좀 걱정됩니다.

물고기도 그런데 개야 말해 뭘 할까요. 그 귀한 생명들이 사람들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때로는 상처도 받지만 그래도 사람하고 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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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3 18: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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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203.XXX.XXX.30)
신아연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그 작은 물고기 속에 있는 생명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임을 알면 선생님의 심정을 잘 이해하게 됩니다.

여러 해 전 제가 어렸을 때 배운 일본 요미가따 책에 실린 하이꾸 가운데 "야레 우쯔나 하에가 데오 스루 아시오 스루" 라는 시가 기억 납니다. 때리지 마소. 파리가 손을 부비고 발을 부비지 않는가 라는 시 입니다. 손을 부빈다는 말은 용서를 빈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정이 넘치는 시 입니다. 식물 속의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또 하나의 하이꾸가 있습니다. "아사가오니 쯔루베 도라레떼 모라이 미즈" 물을 길러 우물에 갔는데 두레박에 나팔 꼿 넝쿨이 얽혀 있어 그걸 떼지 못해 물을 긷지 못하고 남에게서 얻었다는 역시 인정이 넘치는 시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귀학게 여기면 평화로워 진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셔서 이 사납고 어두운 세상을 밝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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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0 14:5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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