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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아주 오래오래 산다
김영환 2012년 05월 15일 (화) 00:17:41

펄 시스터스 배인숙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라는 번안 노래가 있습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눈이 내린 그 겨울날 첫사랑을 묻어버리고 젖어드는 외로움에 나는 이제 돌아다본다.…”라며 헤어진 사랑을 읊조리고 있지만 그 원전인 프랑스 샹송 ‘시인(Un poète)'의 노랫말은 딴판이죠. ‘시인은 아주 오래 살지는 못한다(Un poète ne vit pas très longtemps)’라고 시작하지만 시인은 가장 사소한 불의와 악덕, 권력에 맞서 고함지르며 추방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빈 속에서 자신의 마지막 핏방울로 글을 쓴다고 노래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요절한 시인과 예술인이 많습니다. 김소월, 이상, 박용철, 이중섭이 그랬고 윤동주는 일제의 고문으로 생을 일찍 마감했습니다. 서양의 아폴리네르와 푸시킨, 반 고흐는 마흔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인생의 정수를 작품에 응축하기 위해 생명을 불사르다보니 명이 짧아졌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난 5월12일 토요일 충북 옥천에서 사흘간 열린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제25회 옥천 지용제에 참가했습니다. 태어난 해(1902)는 알아도 돌아간 해를 모르는 정지용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름으로 울음을 우는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로 시작하는 ‘향수’,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하니/ 눈감을 밖에,’라는 '호수'의 작자입니다.

지방의 축제하면 대부분 먹거리와 토산물 판매로 인상을 남겨주지만 지용제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지용 2012 문학포럼’에는 정지용과 김기림의 문학적 상관성(최동호), 순수 서정시가 출현한 사태의 문화사적 의미(정과리), 탈식민주의 담론을 통해본 지용과 구보문학의 동질성(박태상)을 비롯하여 김영옥 북경제2외대 교수의 정지용과 다이왕쇼(戴望舒) 시 비교 연구 등의 논문이 발표되어 1,000 명이 넘는 청중을 강력히 빨아들였습니다.

실개천이 흐르는 지용 시인의 생가 곁에 세워진 기념관은 전국에서 모인 문학 팬들로 북적였고 지역 주민들이 정성껏 마련한 육개장과 떡을 점심으로 들기 위한 긴 줄이 만들어졌습니다. 82세의 노부인에서부터 서울 영등포에서 온 중학생 문학소녀까지 만났습니다. 기념관 곁뜰에서는 친구의 하모니카 반주에 맞추어 우리 가곡을 부르는 중년 부인의 ‘용기’도 보았습니다. 옥천으로 가는 전세버스에서는 어느 부인의 즉흥시도 들었습니다.

지용회의 회장이자 제17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자인 유자효 시인은 "옥천은 시인이 브랜드가 된 고장이며 지용제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문학축제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습니다. 문학상 시상식에는 지역 인사가 총출동하여 행사를 축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축사를 들으면서 이곳 지자단체장은 문학도 꽤 잘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시종 충북 도지사는 “옥천 군민은 ‘향수’의 군민이고 정지용 시인과 더불어 무한히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정지용 시인 하나만으로 옥천은 배가 부르다. 지용제는 국가 행사로 승격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용희 의원은 “옥천은 농산물 상표에도, 친목단체의 명칭에도, 상호나 거리 이름에도 지용이 등장하여 군민과 일상을 함께 하는 존재로서 자부심의 원천이다. 지용은 품격 있는 옥천을 만드는 풍성한 밑거름”이라고 말했습니다. 옥천의 문패에서 ‘향수로’를 보았습니다. 김영만 옥천군수는 “물질만능의 심성이 황폐된 이 땅에서 문학인들은 부디 더 큰 성을 쌓아주기 바란다‘고 축사했고 박찬웅 군의회 의장은 ”지용제가 지역과 세대를 이어주고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옥상에 올라가 메밀 베갯속을 넣으며 떠오르는 시상을 ‘옥상의 가을’로 형상화하여 24회 지용문학상을 수상한 강원도의 이상국 시인은 “육친과 정지용은 동년에 태어났으니 저의 수상은 동시대를 살았던 육친의 막대한 유산을 받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다”면서 “정지용 문학은 이 땅의 향토성에 기인한 민족 전통 정서에 커다란 영토를 일구었고 제 손바닥만 한 시의 땅도 전적으로 그 영토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분하지만 저는 아무 대책 없이 상을 받아놓고 기뻐할 수밖에 없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정지용이 처음부터 대접받은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지용제를 한다니까 “지용이 도로를 넓혀 주었냐, 다리를 놓아 주었냐”하는 일부의 볼멘소리도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줄기차게 움직여 지용제를 만들었고 ‘문학 열차’를 운행하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알찬 내용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시인이 1988년 해금되고 중학교 교과서에 그의 시가 실리게 될 때까지 어두운 세월의 잔해를 벗기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초등학생들의 무용과 다양한 기법을 선보인 지용의 시 낭송, 가야금과 단소, 대금이 어우러진 ‘퍼포먼스’는 우리 글로 쓰여진 시가 얼마나 영롱한 운율을 지니고 있는가를 증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여류시인이자 소설가인 릿쿄(立敎)대의 고이케 마사요(小池昌代) 특임교수는 옥천의 문학제 열기를 찬양하면서 지용의 시 ‘유리창1’을 일어로 낭송하여 지용제의 국제화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지용의 시를 가곡으로 만든 ‘고향’, ‘향수’를 남성 4중창으로 부를 때에는 시인의 영혼이 그대로 객석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인구 5만5,000명의 옥천군이 정지용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가장 성공한 지역축제라는 상찬을 받는 것은 우리나라 지역 사회가 그만큼 상향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일 듯 합니다.

서정적이고 토속적인 이미지로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정지용 문학제의 참가는 각박하게 살아온 필자에게 잊고 살았던 시의 향수를 일으켰고 건조한 일상에 감성의 단비를 촉촉이 뿌린 체험이었습니다. 알랭 바리에르가 쓴 샹송 ’시인‘의 노랫말은 결국 “시인은 아주 오래오래 산다”고 전합니다. "시인의 아이는 겨울과 봄을 가리지 않고 태어나 예언자인 시인의 영광을 노래할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시인은 아주 오래오래 살아 있다"는 것이죠. 문득 내 가슴에도 시인이 오래오래 살게 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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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119.XXX.XXX.29)
하장춘님이 보내오신 글입니다. "충북 옥천의 정지용을 기리는 지용제를 새로 만들다 시피한 컬럼을 읽고 20년 전 부터 가끔 씩 제안해 오던 '지방에 문화를 옮겨 심자'고 해온 주장이 이제 꽃을 피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선 먹는 축제를 넘어 섰다는 표현과 일본 시인의 참가가 꽃 봉오리로 보여 집니다. 그리고 시를 4중창으로 노래 한 점도 큰 봉오리로 보이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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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7 22: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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