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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세미나]삶의 질, 경제사회의 위기; 그 진단과 극복의 길
서재경 2007년 06월 09일 (토) 11:07:28
島山아카데미 創立18周年紀念세미나
- 2007년 6월 5일 -

도산아카데미가 주최한 「한국사회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세미나가 지난 6월5일 오후 도산기념관에서 열렸습니다.

창립 18주년 기념행사로 기획된 이 세미나의 1부에서는 「국가비전과 국제.남북관계 위기, 그 진단과 극복방안」을 주제로 양승함 한국정치학회 회장이 주제발표를 담당하고 이석연 변호사, 이정희 외국어대 교수가 지정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2부에서는 「삶의 질과 경제사회 위기, 그 진단과 극복의 길」을 주제로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가 발제를 맡고 최광 외국어대학교수(전 보건사회부장관), 자유칼럼그룹의 서재경 대표가 지정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조순 명예교수는 “한국경제의 핵심은 대기업인데 이들의 투자가 활발치 않다. 이들의 기업정신이 약화된 것이 아니라 기업규제가 까다로운데다가 임금 물가가 세계적으로 높아서 투자의 수익 전망이 낮기 때문이다” 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도 방향을 잃어 가고 있으며 문화의 질이 나빠지고 있는 현실과 교육의 품질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최광 교수는 ‘일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한국을 정상적인 나라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각료에 전과자가 이렇게 많은 나라는 아프리카에도 없다고 비판하며 나라의 국격(國格)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유칼럼의 서재경 대표는 ‘건국 이래 42명의 문화부장관이 배출되었는데 이중 3분지1은 문화와 상관없는 정치인들이었으며 문화를 논할만한 장관은 4명에 불과했다’고 분석하고 국민의 정체성 확립과 글로벌 교양인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문화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유칼럼은 삶의 질과 관련한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를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된 조순 박사의 연설문과 서재경 대표의 발표자료를 특집으로 엮어 홈페이지에 게재합니다. 독자여러분의 큰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第2主題 발제문:

삶의 질, 경제사회의 위기; 그 진단과 극복의 길


   



"경제만 방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도 방향을 잃고 있다.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적절한 정부의 역할이 정립되어야 한다."

- 趙 淳 서울大學校 名譽敎授



I.
얼마 전 Financial Times는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채,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예를 들면서 자세하게 보도한 바 있다. 一例로 중국 北京의 현대자동차회사의 근로자는 평균연령이 26세인데, 월급$360을 받고 시간당 다섯 가지 모델의 자동차 68대를 생산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 울산공장에서는 평균 41세의 근로자가 $4,680의 월급을 받으면서 시간당 55대를 생산한다고 보도했다. 한국 대기업이 국내에서 투자를 하지 않고 중국이나 인도로 진출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중소기업도 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 산업의 공동화를 우려해야 할 판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 현상에 대해 알고는 있겠지만, 이렇다 할 대책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글로벌 경제에 불가피한 변화이기 때문에 걱정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인지 모른다. 정권 말기에 처한 정부는 마지막 큰 업적으로 FTA에 ‘올인’하고 있다. 한미 FTA를 체결하고 EU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 FTA를 체결하면, 이런 문제는 자연 해결된다고 보는 것도 같다. 그러나 동시 다발적으로 FTA가 쏟아진다면, 경제의 방향상실은 더욱 심각해지리라고 나는 본다.

IMF 이후로 경제성장률은 4% 내외로 낮아졌다. 한국경제의 핵심은 대기업인데, 이들의 투자가 활발치 않다. 이 들의 기업정신이 약화된 것이 아니라, 기업 규제가 까다로운데다가 임금·물가가 세계적으로 높아서 투자의 수익전망이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득과 부, 산업과 지역 등, 경제전반에 걸쳐, 이른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환율이 계속 내리고 교역조건이 악화되면서, GDP는 증가하고 있는데도 GNI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北京, 26세 월$360에 시간당 68대 : 울산, 41세 $4,680에 55대

한국사람 들의 근검절약은 세계에서도 유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정신이 퇴색하면서 享樂文化가 자리 잡고 있다. 국민의 쓰임쓰임이 너무 헤프다. 이것이 세계최고의 임금·물가, 그리고 끊임없는 환율 下落을 지탱하고 있다. 10년 전 IMF를 맞은 것은 기업의 過多負債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민간 가계부분이 過多負債로 시달리고 있다. 10년 전에는 IMF의 ‘구제’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없다.

II.
   
경제만이 방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도 방향을 잃고 있다. 경제의 저성장 및 그 구조 불균형의 심화와 아울러, 사회의 쇠퇴가 深化되어, 국민의 삶의 질의 低下되고 있다. 그런데도 당국의 대책은 없고, 민간에도 自省 自淨의 노력이 없다.

사회가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사회의 이해당사자간에 이해, 양보, 관용 등은 없고, 불신, 분열, 의혹, 상호비방이 일상화하여 항상 內部破裂(implosion)의 양상을 보임으로써, 국민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공동체의 모든 부문에서 여러 형태의 破裂이 소리 없이 터지고 있다. 잊어진 과거의 비리가 새삼 들춰진다. 법규와 그 유권해석, 그리고 국민‘정서’는 항상 달라지기 때문에, 어제의 무죄가 오늘의 유죄로 되고, 오늘의 명사가 내일의 죄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화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흥분해야 하고, 恒心을 가질 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론이 나오기 어렵고 나라의 장래를 위한 좋은 비전도 기대할 수 없다.

한마디로 한국의 문화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 이것이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여기서 문화라 함은 흔히 말하는 음악이나 미술, 연극, 스포츠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웹스터(Webster)나 옥스퍼드 (Oxford) 영어사전이 정의하듯이 주로 교육과 硏修를 통해, 국민의 행동과 사고 등의 지적(intellectual), 도의적(moral) 수준이 고도화 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문화의 질이 향상함으로써, 國格 (즉 나라의 品格)이 상승한다.

한국문화의 질을 저하시키는 몇 가지 특징

(1) 경제유일주의. 한국은 開發年代 이후로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해왔다. 이것이 점점 강화되어 이제는 경제유일주의로 치닫고 있다. 국민도 이에 中毒되어 소득과 부를 모든 가치보다 우선시하게 됐다. 사람의 가치도 소득을 올리는 능력으로 평가하며, 교육의 목표도 소득을 올리는 능력을 기르는데 중점을 둔다. 경제운영의 목표도 GDP 성장이 지상목표이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 사회, 정치 등, 문화적인 면이 낙후되어서는 경제도 발전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전통가치의 몰락. 개인차원에서의 節制, 誠意正心등의 자기수련과 사회차원에서의 出處進退의 節度 등은 이제는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가르치는 데도 없다. 이것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좋은 가치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문화가 자기파열(自己破裂)에 직면하게 됐다. 모든 문화, 모든 윤리도덕의 중심인 가정과 가족의 중요성은 무시되고 그 사회적인 지위와 역할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서도 오히려 엷어졌다. 이것이 문화의 정체성(identity)의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진정한 個人主義는 없고 기준 없는 集團 利己主義가 자리 잡고 있다.

(3)교육의 실패. 문화의 향상은 교육의 향상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데, 개발연대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육은 부실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인은 自國의 역사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치부하여, 전적으로 서양의 겉치레 모방을 위주로 교육을 운영해왔다. 그 결과 한국인은 주변국의 국민에 비해 서양의 새로운 유행을 추종하는데 민감하다. 그러나 자국 문화의 기초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모방도 似而非 모방으로 끝난다. 교육정책 중 특히 잘못된 것은 한글전용과 평준화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 좀 더 언급할 것이다.

(4) 정부 역할의 방향상실. 한국인은 원래 感性이 풍부하며, 신명이 나면 폭발적인 저력을 발휘하지만, 정밀하고 이성적으로 사리를 따지는 데에는 소홀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정치운영에 있어서나 경제 정책에 있어서나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고, 그 변화의 振幅이 極端的으로 큰 것이 상례이다. 예를 들어, 70년대의 중화학육성은 극단적인 重商主義와 국가주의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해, 양보, 관용은 없고, 불신, 분열, 의혹, 상호비방 일상화

IMF를 맞은 한국정부의 개방정책은 종래의 국가주의 기조를 포기하고 IMF도 놀랄 만큼 과감하게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 참여정부에 의한 한미 FTA의 체결, 그리고 동시다발적인 여러 나라들과의 FTA추진 등도 한국특유의 정책변화의 振幅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편하고 쉬운 것을 선호하며, 시대의 풍향에 따라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성품은 질서와 규범, 균형과 조화를 무시하기 쉬우며, 成熟한 문화 발전을 어렵게 한다.

III.
   
이와 같은 경제·사회의 추세와 문화의식의 빈약으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는 계층은 글로벌경제와 연관이 없는 대다수의 계층, 구체적으로 실업자, 자영업자들, 대다수 농민, 老年層 등, 돈을 못 버는 사람들이다. 이 계층의 폭은 대단히 두꺼워, 格差社會의 큰 基層을 이룬다. 노년층은 경제적으로 곤궁할 뿐 아니라, 世代間 대화도 두절된 상태에서 질병과 고독에 시달리고 있다. 世代間 格差는 어느 나라에도 있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단절이 진행되는 나라는 드물다.

幼兒 및 少年層 역시 拜金文化의 희생이 되고 있다. 부모는 이들에게 앞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4, 5세 때부터 대학 입시를 겨냥한 각종 특수훈련을 강제한다. 제 나라말도 제대로 알기 전에 영어를 배우기 위하여 이른바 「早期유학」을 보낸다. 보도에 의하면 이 나라 젊은 부모의 다대수가 조기유학에 찬성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미국, 캐나다는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 심지어 케냐나 남아공화국까지, 영어를 쓰는 나라를 찾아 조기유학을 간다.

아이 들은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야 할 기초교육을 습득할 기회가 박탈된 채, 시험을 잘 치고 돈벌이를 잘 하기 위한 수단을 배우는 불행한 인생의 막을 올린다. 부모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킨다고 자부한다.

이 나라 학교들의 교육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무서운 현실을 생각할 때 조기유학을 바라는 학부모의 ‘非情’을 나무랄 수도 없다.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10대 아이들의 集團 性暴行과 殘虐行爲 보도를 볼 때, 이 나라 어린이들에게는 학교는 곧 地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데도, 학교나 정부가 어린이를 보호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다는 말은 없다.

반면, 少年家長의 가정, 母子家庭은 절대빈곤 내지 상대빈곤에 시달리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경우도 많다. 불우한 가정의 희망은 이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서 옳은 교육을 받는 것인데,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처럼 갈망하는 4년제 대학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최근 일간지에 보도된 어느 최고급 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관한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의식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일간지가 이 나라 최고급 대학의 학생회장 선거 공약을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란 머리기사로 보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공약 내용은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 또는 호프의 음식값, 술값을 20% 할인할 수 있게 할 것이라든가, 출제된 시험문제를 수집하여 DB를 구축하겠다는 등이었다.

그 신문은 이 공약의 가벼움을 한탄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학생들에게는 이것이 충분히 「무게 있는」 절실한 문제였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어쨌든 이 공약에서는 이 나라 대학의 교육 내용과 그 결과를 알 수는 있다. 우리나라 최고급 대학의 上級학생들이 고작 이런 정도의 理想과 抱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앞으로 이 나라 문화의 질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한동안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돌고 최근에는 교육부가 획기적인 인문학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나는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는 데에는 찬동하면서도, 문제는 人文學의 위기가 아니라 敎育의 위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리라고 본다.

지나치게 많이 드는 育兒費 · 生活費와 女性의 社會參與機會의 확대는 晩婚, 離婚, 低出産의 급격한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인구동향의 분석을 따르면, 2015년부터는 인구의 절대적 감소가 예상된다. 그 때가 되면, 불행한 노령인구는 더욱 많아지고 이에 따라 경제의 역동성은 더욱 줄어들고, 그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이 예상된다.

IV.
   
앞으로 한국경제의 정책기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사회의 활성화와 문화의 성숙도를 높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경제, 사회, 문화에 걸쳐 실종된 방향을 다시 찾아야 한다. 경제에 있어서나 사회·문화에 있어서나 절제와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여야 한다. 성급한 사람들이 이 방향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쳐 형성된 경제, 사회, 문화의 문제가 일조에 해결될 묘방은 없다는 것도 확실하다.

어려운 문제를 여기에서 상론할 수는 없으나 기본방향에 관련된 몇 가지 意見을 개진하고자 한다.

첫째,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적절한 정부의 역할이 정립되어야 한다. 경제의 방향상실과 문화·사회의 방향상실은 表裏의 관계에 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관돼 있으므로 정부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종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시대에 정부가 이러한 프로그램을 수립한다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경제나 사회·문화가 공동화 내지 內部破裂 상태에 있는 경우에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방관해도 곤란하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잘 된다는 환상 속에 안주해도 안 된다.

정부의 응분의 역할 없이 민간의 「자유시장」에서 자유방임에 따라 경제의 활성화, 사회의 안정화, 문화의 고급화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작은 정부」의 모델은 英美에는 합당할지 모르나 한국과 같은 나라의 좋은 모델이 될 수는 없다. 한미 FTA를 비롯해서 FTA의 협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국한테는 유리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수출입이 증가하여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늘겠지만 경제의 양극화, 사회의 쇠퇴, 문화의 內燃은 가중될 것이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경제구조의 균형화, 사회심리의 안정화 및 문화의 고급화이며, 이것을 위해서는 지혜와 사명감과 능력을 갖춘 정부가 응분의 역할을 해야 한다. FTA에 매달린다고 외국이 이런 것들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큰 정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介入하여 시장의 기능을 代替하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이 그 順機能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적 제도적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경제 . 사회 . 문화에서 절제와 조화와 균형 회복해야

정부는 앞으로 경제운영과 문화정책을 포함하여, 모든 政策基調를 보다 人本主義 (humanism), 즉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견지에서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GDP 성장률을 비롯한 물량중심의 사고를 탈피하여 불행한 사람을 量産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고치는데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행동을 통해 밝혀야 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고용의 증대이며, 이것을 위해 인력수급의 균형을 가지고 오는 보다 확실한 프로그램을 세워야 한다. 단순히 케인즈식인 총수요의 조절로 완전고용을 확보하려 할 것이 아니라, 인력수급에 관한 정부의 비전을 민간에 공개함으로써, 민간으로 하여금 수요와 공급의 구조적인 mismatch를 자발적으로 줄이도록 해야 한다. 이 인력계획에 따라 교육정책, 노동정책, 사회정책 등이 조절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나 사회·문화의 향상을 위해서나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교육산업은 量的으로는 擴大되었으나, 질적으로는 대표적인 부실산업 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한국사람들은 교육문제의 중심은 대학입시 문제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육문제의 핵심은 교육내용의 不實에 있다. 不實한 교육을 가지고 좋은 문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교육은 가정교육이다. 幼兒時代의 부모 교육 및 유치원 교육, 사람의 잘 되느냐의 여부가 그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 언젠가 미국에서 「인생에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이름을 가진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사회가 복잡하다고는 하나, 사회에 나온 저자가 알고 보니 "Thank you", " I am sorry" 등의 말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의 물건을 무단히 쓰지 말 것, 화장실 사용 후엔 수세를 할 것 등, 유치원에서 습성화된 이런 것만 알고 실천하면, 성공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책이었다. 이러한 discipline이 자연스럽게 습성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幼年期의 바른 교육이다. 이것이 습성화되지 않은 아이는 영영 discipline 없는 일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 사회의 기본적인 discipline도 없는, 끝없는 내부파열에 시달리는 사회를 만들어낸다.

경제 발전, 사회·문화의 향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John Locke는 1693년에 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 이라는 幼兒교육에 관한 名著를 썼는데, 이 책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기 위해서는 고통을 이겨낼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다. 글공부를 시키는 방법은 몸과 마음의 단련에 비하면 덜 중요하기 때문에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소 논의를 하는데 그치고 있다.

   
동양에 있어서도 아이들의 교육의 핵심은 좋은 습관을 기르는데 있다는 것이 『小學』에 잘 천명되어 있다. 아이들이 익혀야 할 것은 우선 집안을 청소하고 남과의 응대와 진퇴를 확실하게 하며,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벗과 친하게 지내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영국과 중국의 차이는 있지만, 유아교육이 discipline 에 익숙한 좋은 습관을 기르는데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의 일각에서 높은 수준의 문화를 달성하고 경제경쟁에 있어서도 중국과 일본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글과 漢字를 병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글전용을 가지고는 우리의 경제와 문화는 중국과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본다. 글자란 사상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마치 빈약한 도구상자를 가진 목수가 좋은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빈약한 언어를 가지고는 좋은 문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한글을 존중하지 말자는 주장은 아니다. 한글 전용을 고수하는 문화 國粹主義를 가지고는 높은 수준의 문화를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서양나라에선 한자 없이 잘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론할지 모른다. 이것은 하나를 알고 둘을 모르는 반론이다. 서양에는 漢字는 없었지만, 라틴語라는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어가 있었다. 漢字語못지 않게 簡潔하고 含意와 隱喩가 풍부한 라틴語의 정수는 모두 지금의 서양 現代語에 승계되었다. 로마의 국가조직과 운영, 법제, 행정 등의 운영은 로마의 후신인 화란,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에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나라들은 라틴語를 버리지 않았느냐고 반론 할지도 모른다. 서양나라들이 라틴어를 버린 것이 아니다. 나라에 따라서 다르지만, 死語가 된 라틴어를 포기하는데 천년이 걸렸다. 이제 근대화가 완성돼서 그것이 사어임을 인정할 때까지 학교에서 라틴어 교육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수 천 년 쓰던 한자를 해방 반세기도 못되어 하루아침에 버린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의 한글은 지금 서양의 현대어와는 다르다. 그것은 그 본질에 있어 일본의 가나(假名)와 같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發音을 하기 위한 글자, 단적으로 말하면 發音記號이며, 그것의 활용은 한자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한글은 한국의 口語를 나타내기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학문을 하기에는 語彙가 너무나 빈약하다. 서양의 학문을 傳受하고 理解하고 活用하는데에도 한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自國의 語彙가 빈약한 나라의 국민은, 그것이 풍부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일본의 明治維新도 漢字의 造語力을 활용하여 그 많은 서양의 문물을 모두 일본어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당시,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양학문이나 문물의 번역어는 대부분 일본인이 만들어냈다. 일본인이 만들어낸 漢字로 된 飜譯語는 일본말인가 외국말인가. 일본인 중 한 사람도 이것을 외국말로 생각한 사람은 없다. 중국인들도 일본인이 만들어낸 한자로 된 번역어를 대부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인이 번역한 어휘라고 해서 일본어로 여기거나 기분 상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이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일본이 만들어낸 번역어의 거의 전부를 그대로 쓰고 지금도 일본인이 번역한 새로운 단어를 그대로 쓰면서도 한자 자체는 폐기한다. 이것을 하는 심정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일본인을 속 좁은 사람들이라고 본다. 그러나 語文에 관한 한, 일본인의 안목은 넓다. 일국의 문화가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대한 문화사적인 안목도 없이, 오직 國粹主義의 울타리 속에 앉아서 내 글자가 천하제일이라고 우긴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사람들의 ‘정서’를 알고 있다. 漢字倂用을 당장 시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한국인은 중국도 모르고 일본도 모르면서, 현실에 안주할 것이기 때문에, 대책은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자를 가르치기를 선택하는 학교에는 그것을 허용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여기에도 경쟁이 필요하다. 한자를 가르치는 학교의 아이들이 한글전용을 하는 학교의 아이들보다 인문, 사회 및 자연에 뒤진다면, 그 때는 한자를 가르치는 학교에 지원하는 학생은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저급학교에 있어서도 학생들의 선택여지를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다.

필요한 것은 첫째, 인간중심의 사고, 둘째, discipline

일반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문화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교육을 바로 잡는 일이다. Webster 사전에는, 문화란 교육을 통해서 知的 道德 的 수준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했고, Oxford 사전은 문화란 訓練(train)을 통해 사람들의 지식, 기호, 행동을 높임으로써 개선된다고 했다. 문화의 향상은 오직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학문에 있어서도 discipline이 필요하다. 사실 英語에서 학문이라는 말을 discipline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아도 이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정부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공장에서, 좀더 discipline이 있었더라면, IMF도 안 맞았을 것이고, 한미 FTA의 압력도 안 받았을 것이고, 끊임없는 문화의 內燃 내지 內部破裂도 없을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그의 『도덕 감정론』에서, 나라에는 두 가지 요소, 즉 자혜(benevolence)와 법질서 (justice)가 필요한데, 자혜가 없는 경우 나라는 삭막하기는 하나 망하지는 않지만, 설사 자혜가 있어도 법질서가 없다면 나라는 존속할 수 없다고 했다. 똑같은 말을 마키아벨리도 했다. 정의가 없어도 질서 있는 나라에 살고 싶은가, 정의는 있어도 질서 없는 나라에 살고 싶은가의 선택을 하란다면 그는 전자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나는 한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兩者擇一이 아니라, 첫째, 인간중심의 사고, 그리고 둘째, discipline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양자가 계속 소홀히 된다면 경제발전도 지속할 수 없고, 문화의 성숙도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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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