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소품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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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소품 산문

김창식

2012년 06월 07일 (목) 02:06:07

20세기 초엽의 작가지만 카프카(Franz Kafka, 1883.7.3 ~ 1924.6.3)의 작품은 지금 읽어도 그 현시성(現時性)으로 해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저 유명한 벌레인간 그레고르 잠자가 나오는 '변신', 고독의 3부작으로 일컫는 장편 '소송'‧ '성'‧ '실종자(아메리카)'와 '판결', '시골의사' 같은 중‧단편은 널리 알려져 있지요. 독자들에게 친숙하지는 않으나 카프카의 소품 산문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우선 '산초 판자에 대한 진실(Die Wahrheit über Sancho Pansa)'을 살펴보도록 하죠.

* 산초 판자에 대한 진실

-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자랑한 적은 없는 산초 판자는, 세월 가면서, 저녁 시간 밤 시간들에 기사소설 도적소설들 한 무더기를 곁에 둠으로써 후에 그가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준 그 악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 데 성공하였는데, 그 악마가 그 다음부터는 그침 없이 미친 짓, 그러나 정해진 대상, 바로 산초 판자였을 대상이 없음으로 해서 아무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은 미친 짓만 골라 하게 하는 식으로였다. 자유인인 산초 판자는 태연하게, 어쩌면 얼마만큼은 책임감에서 돈키호테를 번번이 따라갔으며 거기서 유익하고도 큰 재미를 맛보았다, 그의 생애 끝까지. ㅡ

'산초 판자에 관한 진실'에서는 관계의 역전을 일깨우는 섬뜩한 관점이 개진돼 있습니다. 기사 돈키호테는 하인인 산초 판자가 계획적으로 분리한 '악의적 개체(Doppelgänger)'인 것처럼 보이는군요. 돈키호테가 '아무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은 미친 짓'을 하도록 안배해놓은 산초 판자의 '페르소나(Persona)'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내비친 것이죠. 몇 줄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자유와 구속의 보완 또는 길항(拮抗) 관계, 외연을 무한대로 넓히면 창조주인 신과 인간관계의 숙명을 짚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상의 당혹'은 또 어떤가요? 한 사람(A)이 다른 사람(B)을 만나러 약속 지점으로 출발하지만, B는 B대로 A를 만나러 그곳으로 향하느라 엇갈립니다. 약속장소까지의 거리는 채 10분이 안 걸리기도, 때로 10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지요. 두 사람은 헛되이 약속 지점을 왕복합니다.나중엔 조우하고도 서로 몰라봅니다. 심지어 B가 집 대문 앞에서 A를 만나 약속을 상기시키지만 A는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서둘러 작별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의 풍경이 전혀 이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요? 그보다 정작 만나야 할 사람은 방기(放棄)한 채 다른 사람을 만나려 바삐 쏘다니는 것은 아닌지.

그로테스크한 산문 '튀기'에서는 '고양이'이자 '양'인 동물이 주인공입니다. 원래 양에 가까웠지만 커 갈수록 고양이를 닮아가는 이 동물은 창턱에 내린 햇볕 속에서는 몸을 동그랗게 오그린 채 골골거리고, 풀밭에선 정신없이 내닫습니다. 또 고양이들 앞에서는 도망치고 양 떼에는 섞이지 않는군요. '야옹'소리는 못 내지만 쥐는 싫어합니다. 닭장 곁에서 몇 시간이고 매복할 수 있지만 닭을 잡아 죽이지는 못하지요. 결정적으로 이 괴상한 동물은 '고양이'면서도 '양'이라는 것으로 충분치 않아 '개'가 되려 한다는 것인데….

그 밖에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 에서는 박차와 고삐뿐 아니라 '말 모가지'와 '말 대가리'도 없는 말을 타고 내닫는 인디언이 나오고, '황제의 전갈'에서는 황제의 비밀스런 메시지를 소지한 사자가 종내 성을 떠나지 못한 채 내궁(內宮)을 맴돕니다. '돌연한 출발'에는 집을 떠나려는 주인과 하인의 대화가 소개됩니다. 이상한 것은 주인은 목적지가 어딘지를 모르는데 남아 있게 될 하인은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성 싶다는 것이지요. 주인에겐 아무려면 떠나는 것 자체가 목적인 모양입니다.

카프카의 산문들은 턱없이 짧은 글임에도 한 편 한 편이 여러 층위로 읽히는 복합구조인 데다 상징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의 소품 산문들은 이미지의 굴절과 연상의 파괴, 반전과 이를 뒤집는 또 다른 반전이 특징입니다. 놀랍게도 26편의 산문 한 편 한 편이 모두 그렇군요. 민낯의 문체는 건조하며 호흡은 가파릅니다. 때로 단문들이 콤마나 세미콜론으로 길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묘한 여운이 오래도록 지속되거든요. 왜 그런 것일까요?

카프카의 글들이 순환구조를 이루되 '낯선 일상성(日常性)', 그러니까 지금, 이곳, 여기, 우리의 모습, 우리가 몸담고 있는 닫힌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존재의 숙명적인 불안과 무근저성(無根底性)을 함축적으로 은유하는 때문입니다. 출구가 봉쇄된 '중첩된 미로(迷路)'에 갇힌 수인(囚人)들의 운명이 이러할까요. 독자들은 글을 읽어나가지만 '항상',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출발지입니다. 카프카의 글에는 '엔딩 크레디트'가 없습니다. 방황과 도돌이표만이 있을 뿐.

*「변신‧시골의사(1998 민음사, 전영애 역)」에서 인용.

김윤옥 (110.XXX.XXX.229)

수필은 타 문학 장르 보다 깊은 사유의 세계를 담는다고 생각합니다.
詩나 소설에서도 작가의 사상이나 이념을 드러낼 수 있지만 수필은 직접 작가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 줄 수 있어서 읽는이게 더 큰 감동을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프카의 산문이 김작가의 문학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주었을 듯 합니다.
폭넓은 독서를 통해서 좋은 글쓰기를 넓혀가는 김창식님을 응원 하는 일로도 즐거운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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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8 23: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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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do (219.XXX.XXX.231)

김윤옥 선생님의 수필론에 십분 공감합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무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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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9 19: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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