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논란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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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논란공화국이다

임철순

2012년 06월 12일 (화) 00:35:50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 피곤하고 힘든 일입니다.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분배, 합리적 승복의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에서 반칙과 편법을 일삼는 자들 때문에 시달리고 부대끼다 보면 저절로 한국에서 살아가기가 싫어지게 마련입니다. 배곯고 굶주리며 살아온 한국인들의 표정은 이미 헝그리(hungry)에서 앵그리(angry)로 바뀐 지 오랩니다. 많은 이들이 나라와 사회에 대해, 그리고 남들에 대해 늘 화가 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정하지 못한 것도 힘든 터에 요즘은 벌어지는 일마다 승부도 종료도 없는 논란에 휘말리곤 하니 더욱 더 대한민국살이가 피곤해지는 것입니다. 나와 직접 관계가 없는 일인데도 논란의 시말을 알고 있지 못하면 이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는 데 불편해지고, 싸움을 하는 두 진영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입장을 정하지 않으면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고 대접받지 못하며 출세에도 지장이 있습니다. 어느 편도 들고 싶지 않은 중간적 존재는 점차 쓸모없는 인간이 돼가고 있는 게 요즘 한국사회입니다. 어떻게든 어느 한 쪽에 서야 합니다. 논란거리가 돼버린 숱한 현안마다 서로 맞서는 두 진영 중에서 어느 쪽이 옳은지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 돼버릴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에 대해서 그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악된 사실을 바탕으로 해당 현안과 그 현안의 맥락과 문법을 합당하게 해독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두 가지가 다 어렵습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알기도 어렵지만 건전하고 보편타당한 상식을 바탕으로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공론을 조성하고 확립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렵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언론임을 자처하는 각종 미디어가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못하는) 것입니다. 아예 보도를 하지 않는 경우는 다른 문제이지만, 불충분하게 보도하거나 고착된 한쪽 시각으로 편집하거나 왜곡해서 보도하는 경우 뉴스 수신자들은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이용자가 적극적이고 극성스러운 우리나라의 SNS 등 각종 소통수단은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보도를 확대 재생산하는 부작용을 빚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넷 댓글이나 신상 털기 등으로 엉뚱한 피해를 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많이 보았지 않습니까? 개를 차에 매달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죽게 했다는 ‘악마 에쿠스’ 논란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자고나면 새로운 논란거리가 생깁니다. 통합진보당의 당내 선거 부정으로 촉발된 의원 사퇴문제는 종북, 이념논란으로 번져 한 달도 넘게 여야 및 시민단체의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사생도들의 사열을 받았다는 논란이 거셉니다. 지난 8일 육사에서 열린 ‘발전기금 200억원 달성’ 기념행사에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5공 핵심 인사들과 함께 참석해 생도들의 화랑의식(퍼레이드)을 참관하고 생도들의 경례에 거수경례로 답한 장면이 보도되면서 번진 논란입니다.

여당의 색깔론 공격을 받아온 야당은 이 문제를 계기로 총반격에 나서고 있는 양상입니다.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의 책임자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인물을 육사가 VIP로 예우한 것은 국가와 군의 정체성을 스스로 저버린 일이며 ‘국가기강 문란 행위, 5·18 광주항쟁에 대한 부정, 전두환 5공 세력의 복권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에 대한 육사의 이런 예우는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06년 4월 28일 육사 창설 6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생도들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같은 날 ‘육사발전기금 창립 10주년 및 기금 모금액 100억원 달성’ 행사에도 참석해 화랑의식 참관, 시설 견학, 만찬 등을 하고 갔습니다.

그동안 죽 그래왔으니 더 나쁘다고 비난해야 옳은지, 아니면 그동안 그래 온 걸 왜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문제 삼느냐는 반론이 합리적인지 판단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를 편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매주 금요일 열리는 화랑의식은 일반인들도 참석하는 공개 행사라는 점, 생도들의 거수경례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의례가 아니었다는 점은 감안돼야 할 것입니다. 요컨대 그가 사열을 했다는 말은 지나칩니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에도 공식 초청을 받아 참석하고 있습니다. 정치권 인사들은 일만 생기면 그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던 사람이 그 말보다 전에 한 일이긴 하지만 육사 발전기금 1,000만원(?)을 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늘 그렇게 남들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며 ‘살인마’라고 증오와 공격의 대상이 돼 있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면 그날도 혼자서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았겠지만, 원래 으스대고 폼 잡기 좋아하는 사람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그가 한번 떴다 하면 30명 가까운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대거 수행을 합니다. 무슨 돈으로 그들을 휘어잡았는지 몰라도 노태우 전 대통령과 판이한 그 보스 기질이 사내답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우스운 것은 그를 두둔하고 나선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을 4·11 총선 직전 공개 지지한 소설가 이외수 씨에 대한 공격입니다. 한 의원은 방송 뉴스프로그램에 출연해 “전 전 대통령만 경례를 하거나 박수를 친 게 아니다”라는 요지로 옹호했습니다. 그리고 “5·16은 쿠데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시간이 흐른 이후에는 그것이 결론적으로 구국의, 국익의 혁명일 수 있다.”는 말을 해 화를 자초했습니다.

그러자 그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고, 그를 지지한 이외수 씨에게도 책임있는 답변과 태도를 요구하는 트윗 불똥이 튀었습니다. 가장 새누리당스러운 분을 지지했으니 뭐라고 한번 말씀 좀 해 보라는 뜻일 것입니다. 원래 야당 편, 자기들 편이라고 믿었던 '소통의 대가', '소통의 대통령'이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 데 대해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이 많겠지요. 이에 대해 이외수 씨는 트위터를 통해 “또 곤계란들이 몰려들어 개드립 한 줄을 자살폭탄처럼 투척하고 벽돌 한 방에 사라져 버리는 애국열사 놀이를 시작했군요.”라고 비꼬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분들도 많겠지만, 상황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입니다.

전 전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좀 애매하게 내 생각을 밝혔지만, 내 판단이 100%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현장에서 그 모습을 보았거나 그 일에 관련된 사실을 좀 더 안다면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있습니다. 논란으로 날이 가고 해가 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나쁜 것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매도하고 공격해 말살·배제하려 하고, 자신과 생각이 같아야 된다고 강요하고, 무슨 일에 대해서든 “대체 네 입장이 뭐냐, 정체를 밝혀라.”고 윽박지르고 이실직고를 압박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사회는 발전할 수 없고 더불어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옥 (121.XXX.XXX.16)

잘읽었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계속 좋은 글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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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04: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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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임 (121.XXX.XXX.16)

민주당에서 하도 FTA를 반대하길래 (참고로 저는 FTA 때문에 정말 곤란지경에 처한 축산인입니다), "근데 솔직히 한미FTA는 지난정권에서 시작한게 아닌가요? 뭔가 앞뒤가 안 맞아요." 했더니 무슨소리냐..내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앞에서는 아무소리못하고 집에 와서 지금까지 계속 억울하네요."우리가 남이가..." 뭐 그런 생각이었던것 같은데 남도 옳은것은 옳은거고 내편도 그른것은 그르다고 해야하는건데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궁시렁거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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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5 22: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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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일 (121.XXX.XXX.16)

참 많이 절제되고 옳은 말씀 ,,, 잘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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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5 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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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환 (121.XXX.XXX.16)

지당한말씀이십니다ㅡ늘,좋은글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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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 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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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 (121.XXX.XXX.16)

한국에는 논란만 있고 결론이 없습니다. 문제를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한다음 컨센스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저가는 집요한 논리 추구가 없으니까 불합리한 논란거리가 논란으로 남아있고 문제해결 자체는 미결상태로 "park" 되어 다음 논란으로 진행합니다. 정말 이해할수 없는 시끄럽기만한 세상 입니다. 통합진보당은 분명히 친북.종북단체인데 이를 국회에 들여보낸다면 무엇때문에 그많은 국방비를 감내해야 하며 병역의무를 치루어야 하는지 - 이런 근본문제에 이르는 모든 함의를 고려해야 하는것 아닙니까. 민주주의 독일에서 나찌당원이 의회에 진출할수 있습니까. 여러원인가운데 우리미디어의 낮은 수준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답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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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 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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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121.XXX.XXX.16)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좀 어려운 문제지만, 이 사회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색깔을 밝히지 않고 침묵하고 있으면 기회주의자로 매도되기도 하여 무슨 말을 할까 골라야 하고...정말 피곤한 세상인가봐요. 그냥 언제 한번 명태나 잡읍시다.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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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 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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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121.XXX.XXX.16)

맞습니다. 다들 왜 그러는지요. 원... 부모님이, 아내가, 자식들이 다 내 생각과 같고 그래서 다 내 편 입디까? 이런 사회를 살면서 왜들 그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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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2 16: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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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효 박 (121.XXX.XXX.16)

정말 모처럼 시원하게 가슴에 확하고 와 닿는 글을 읽어봅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 주시고 또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들을
잘 알려 주시니 또한 감사 드립니다.

아니 그보다도 뭔가 비슷하게 느끼곤 있지만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하지 못하고 또 정확히 표현을 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정리해 주시고, 또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니 머리가 맑아지고 시원해 집니다.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글을 주신 고문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개판공화국, 난장판공화국, 아니면 미친공화국이라고 쓰고 싶으셨지요? 아닌가요? 차마 최고위 언론인께서 이런 용어를 쓰실수가 없기에... 미루어 짐작을 해 봅니다.

감사드리며
박현효 드림.
2012.6.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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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2 16: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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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110.XXX.XXX.229)

최근들어 이념적 편가르기가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사회환경을 조장하는 저의에 적개심마저 듭니다.
옳은 말을 하면 빨갱이라고 덮어씌우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도 역겹습니다.
통합진보당의 당내부정은 그동안 기존정당과 차별화 할 수 있다고 믿은 젊은 정당에서 벌인 부정이어서 더욱 실망스러웠는데 엉뚱하게 이념논쟁으로 방향을 트는 새누리당에 더 큰 실망을 하게합니다.
수십 년 울궈먹은 색갈논쟁은 이제 털어내야합니다.
더 성숙한, 더 국민을 염려하는 진정한 어른다운 정당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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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2 13: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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