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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은 이제 그만!
박상도 2012년 06월 15일 (금) 00:35:51
1981년에 개봉한 ‘불의 전차’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Rain and Tears’로 유명한 아프로디테스차일드(Aphrodite’s Child)의 반젤리스(Vangelis)가 영화음악을 만들어서 더욱 유명해진 이 영화는 영국과 미국에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며 반드시 봐야 할 명화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이후에 수많은 스포츠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영국 육상 선수인 에릭 리델과 헤럴드 에이브러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에릭 리델이 출전한 400미터 결승전 장면입니다. ‘신께서 나를 목적을 갖고 만드셨다고 믿어요. 그분은 제게 빠른 발을 주셨지요. 저는 뛰고 있을 때 그분의 기쁨이 느껴집니다.’ 라는 독백과 함께 에릭 리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합니다.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를 슬로건으로 내건 올림픽 정신에는 인간이 추구하는 순수한 스포츠 정신이 녹아 있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수한 욕망에는 상대를 무조건 이기고 싶어하는 과도한 경쟁심도 자리잡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금전상의 이익을 미리 계산하는 잔머리를 굴릴 틈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스포츠의 성과와 이를 통해 돈을 버는 일을 효율적으로 연결시켜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수들은 광고와 이벤트 출연과 출판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과 데니스 로드맨이 경기가 끝난 후 라커룸에서 나눴다는 대화입니다.
“여어 , 데니스~ 이번에 자서전 냈다며?’
“응, 매니저가 책을 낸다고 하더니 나왔나 보구먼.. 이봐 마이클, 내 자서전 읽어 봤나?”
“아니, 아직 내 것도 읽지 못했는데…”

물론 우스개 소리로 누군가가 지어냈을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세태를 풍자하는 이야기로 많은 공감을 얻었던 알화입니다. 스포츠가 스포츠로 끝나지 않고 수많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는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은 아마추어 스포츠의 최고봉인 올림픽에서도 노출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수년 전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는 올림픽의 상업화를 우려하는 기사를 통해 ‘기업들은 올림픽을 제품 홍보의 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매스미디어는 올림픽 경기를 상업적 이윤을 얻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서로가 돈을 벌기 위한 궁리를 하면서 올림픽 중계권료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랩니다. 또한 기업들이 부담하는 협찬 광고 역시 엄청난 금액으로 올랐습니다. 이렇게 막대한 자본으로 치러지는 올림픽에서 스타 선수들의 몸값 역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습니다.

육상 100미터와 수영과 체조 등 이른바 인기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들은 올림픽 기간동안 일약 스포츠 스타로 발돋움하면서 막대한 부수입을 얻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이런 영광을 누리는 반면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쉽게 잊힌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예고에서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이는 아바(ABBA)의 노래 ‘The winner takes it all’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That's her destiny

승자가 모든 걸
독차지하고
패자는 승자 곁에
초라하게 남게 되죠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에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것은 광고나 기타 부수입뿐만이 아닙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메달리스트들의 연금 규정을 봐도 올림픽 은메달은 금메달이 얻는 점수의 3분의 1이고 동메달은 4분의 1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니 올림픽에서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면 ‘루저(loser)’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금메달에 대한 욕심 때문에 비정상적인 플레이를 하는 장면을 많이 목격하게됩니다. 유도나 레슬링에서 점수가 앞서고 있는 선수가 시간을 끄는 경우는 늘상 봐왔던 경우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모습을 보는 관중들의 태도입니다. 우리나라 선수가 앞서고 있을땐,

“그래!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텨”
라고 외칩니다. 반대로 우리 선수가 지고 있을 땐 상대 선수를 향해
“저런 치사한 놈, 시간만 끌고 있네”
라며 비난을 합니다.

우리 선수가 이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적인 정서에 치우쳐 무조건 이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국가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선수들에게도 큰 부담이 됩니다.

시드니 올림픽 사격 부문에서 은메달을 딴 강초현 선수는 금메달을 놓친 것을 엄마가 실망할까봐 위로를 하고 엄마는 딸이 상처받을까봐 염려했다고 합니다. 아틀랜타 올림픽에서는 모 선수가 금메달을 놓치자 우는 모습이 외신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금메달에만 몰두하는 한국 스포츠 문화의 낙후성을 비판하면서 말입니다.

스포츠 중계를 하는 캐스터와 해설자들도 “우리 선수 아깝게 금메달을 따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종합순위가 좀 내려 갈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올림픽에서 종합 순위를 매기는 기준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이미 많은 선진국들은 전체 메달의 획득 갯수로 순위를 매기고 있습니다.우리가 순위를 매기는 방식에 의하면 금메달 하나만 획득한 나라가 금메달은 없고 은메달과 동메달 수십 개를 획득한 나라보다 순위가 높습니다. 은메달은 백개를 따도 금메달 한 개 따는 것만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달랑 금메달 한 개만 있는 나라가 금메달은 없이 은메달만 수십 개를 획득한 나라보다 스포츠 강국일까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일은 메달의 색깔과 상관없이 대단한 일입니다. 메달의 색깔과 상관없이 축하받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매달의 색깔에만 너무 치중했던 것입니다. 올림픽 중계를 하는 방송의 태도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 없이 ‘우리 선수 잠시후 금메달에 도전’이라는 안내 자막을 TV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확실한 흥행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집니다.

우리나라가 보다 성숙한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시급히 바꿀 것이 있다면 종합 순위를 매기는 기존의 방식을 바꾸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중계를 할 때도 “김철수 선수 우리 나라에 메달 한개를 더 추가했습니다” 라며 메달의 색깔과 상관 없이 축하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승전에서 패한 후 미안해하는 선수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아도 됩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는 금메달만큼 행복해할 것이며 은메달을 딴 선수는 은메달만큼, 동메달을 딴 선수는 또 그만큼 행복해하며 올림픽을 추억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메달을 따지 못했더라도 그 영광스런 장소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살 수 있게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지나친 상업주의에 선수들이 희생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금메달을 딴 후 CF와 각종 이벤트로 수십 수백억원을 벌어 들이면서 ‘돈 방석에 앉은 스포츠 스타’를 보게되면 그 선수가 스포츠로 달성한 업적이 돈으로 환산되어 평가되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이번 런던 올림픽은,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에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쿠베르탱이 말한 올림픽 강령을 실천하는 올림픽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올 여름 온 국민이 밤을 새워가며 우리 선수들을 응원할 것입니다. 메달 색깔과 관계 없이 열심히 응원해주는 국민들과 메달 색깔과 상관 없이 시상식에서 환하게 웃는 우리 선수들을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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