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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해안 산책로의 추한 가로등
안진의 2012년 06월 19일 (화) 00:26:12
송곳 바위, 거북 바위, 코끼리 바위, 버섯 바위, 독수리 바위, 버섯 바위, 칼 바위, 매 바위, 곰 바위, 코쟁이 바위, 인면 바위 등등. 기암괴석들이 다양한 이름을 갖습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숨어 있는 그림을 찾고 퍼즐을 맞추듯, 이 산 저 산의 봉우리며 암석들을 살펴봅니다. 독특한 지형에서 이름과 같은 모습을 찾을 때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그렇게 울릉도엘 다녀왔습니다. 울릉도의 첫 행선지로 만난 통구미의 거북 바위를 보는 순간부터, 해파가 얼마나 신기한 모양들을 조각해내는지 기대감이 넘쳐났습니다. 뜨거운 용암이 물과 만나 빠르게 식으면서 수축하고, 수축에 의해 암석의 표면이 갈라지며 돌기둥 형태를 띠는 주상절리(柱狀節理)는 쭉쭉 늘어져 국수바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태하의 황토굴을 보는 순간, 화가인 저로서는 그림의 재료로 쓰이는 석간주(石間硃) 임을 확인하고 적잖이 흥분이 되었습니다. 석간주라는 것은 바위틈의 붉은 색 안료로 주홍빛의 주토(朱土)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광물성 안료 산지가 부족해 대개 안료를 수입해서 썼었는데, 울릉도가 귀한 석간주의 토산지라는 사실을 확인하니 기분은 한층 들뜨게 되었습니다.

   
 
   

바다 위에 놓인 긴 보도교를 건너 관음도에 올라서자 푸른 바다와 세찬 바람을 벗 삼아 낮게 자라나는 야생화 군락지도 호기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관음도에서 바라보는 죽도, 삼선암의 풍경도 아름답고, 행남등대 산책로의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땅채송화, 섬기린초, 갯메꽃, 해국 등을 바라보며 눈도 마음도 호사를 누렸습니다.

봉래폭포를 오르던 길 천연 에어컨이라 불리는 풍혈(風穴) 또한 인상적입니다. 풍혈이란 바윗덩어리들 사이사이로 구멍이 있어 여름에는 공기가 축냉된 지층을 통과하면서 냉각되고, 겨울에는 반대로 축열된 지층을 통과하면서 공기가 가열되는 원리입니다. 더울 때 찬바람을, 추울 때 따뜻한 바람을 만날 수 있다니 이것 또한 지질이 만들어 주는 오묘한 선물입니다.

개척민들이 섬말나리의 뿌리를 캐 먹으며 살아서 나리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울릉도 유일의 평지인 나리분지는 해안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원시림이었습니다. 실제로 나리꽃이 가득 폈을 때 다시금 찾고 싶은 아늑한 곳이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섬 전체가 화산체이다 보니 해안의 대부분은 절벽이고 이 절벽을 따라 걷는 해안 산책로가 장관입니다.

저동항과 도동항의 해안 산책로에는 현무암의 철 성분이 녹아 나와 포도송이 모양을 하는 독특한 모양의 지질이 신기하고, 타포니라 불리는 벌집모양의 구멍, 베개모양을 이루는 베개 용암, 퇴적물들이 물고기 비늘과 같은 형태로 배열된 비늘 구조 그리고 다양한 해식동굴이 자리하여 신비감을 주는 곳입니다. 해안 산책로는 한마디로 지질공원입니다.

해안 산책로는 선착장과 바로 연결되다 보니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사랑받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즐거웠던 울릉도의 자연탐사가 그만 이 해안산책로를 따라 걷다 실망스러워졌습니다. 그건 세계지질공원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제주도처럼, 그에 버금가는 자연유산을 갖는 울릉도가 제대로 보호되고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먼저 좁은 해안로를 따라가다 보면, TV에 출연한 곳이라는 안내판과 음식의 메뉴판이 산책로 곳곳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무공해를 느끼고 싶은 자연 경관 안의 난전이 보기 좋을 리가 없습니다. 항구 주변에 지어지는 건축물과 간판들의 경우는 산과 바다가 이루는 자연 경관 색채와는 무관하게 여러 가지 튀는 색깔들이 난립해 있습니다. 건축색채는 자연 안에 묻히는 배경이 되어야지 그것이 주가 되어서 시각적 충돌과 색으로 인한 피로도를 발생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더욱 눈에 거슬리는 것은 해안 산책로에 세워진 가로등입니다. 그곳의 지질 하나하나가 예술이고 중요한 경관자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말뚝을 박듯 박아 놓은 긴 가로등은 배선공사 후 허연 시멘트로 대충 마감되어 흉물스런 모습을 그대로 내놓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산책로 조성이 제대로 계획되고 지면이나 난간을 이용한 경관조명이 세워졌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조명 따로 길 따로 그러다 보니 멋진 절벽에 마치 낙서를 해 놓은 듯, 가로등이 시멘트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길이 좁아서라면 적어도 절벽의 암질이나 토질과 비슷한 재료들을 시멘트에 섞어 제대로 미장하여 덮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흉물스런 모습만큼은 감췄어야 했습니다.

개발해서는 안 되는 절대 보호가 필요한 자연이 있고, 안전, 교육 등의 요구로 일부의 훼손을 감내하고 개발해야 하는 자연이 있습니다. 앞으로 울릉도가 해상관광자원의 보고로서 이에 따른 적절한 보호와 계획성을 갖춘 최소한의 개발로, 울릉도만의 개성과 격조 높은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자연 색채와 조화되는 인공 환경 색채 범위를 분석하고 이에 따른 색채가이드 라인을 도출하여 울릉도만의 색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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