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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인민재판
이승훈 2012년 06월 19일 (화) 00:30:29
요즘 인터넷 세상은 ‘지하철 컵라면녀’ 이야기로 떠들썩합니다. 누군가 인터넷 세상에 올린 사진에는 십대로 보이는 두 여성이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데 이 둘 중 하나는 컵라면을 먹고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올라온 사진은 SNS를 타고 급속도로 확산됐고 이제 언론에까지 보도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사진이 인터넷을 돌아다닌 지는 꽤 오래되었고 그 대상도 무척 많았습니다. 지하철에 강아지를 데리고 탔다가 강아지가 싼 똥을 치우지 않고 내렸던 개똥녀, 도서관에서 어머니뻘 되는 분에게 막말을 했던 도서관 막말녀, 고속버스가 늦게 도착했다며 버스 회사 직원을 무릎 꿇고 사과하게 만들었다는 무릎녀, 만취한 상태에서 택시 기사에게 막말을 했던 택시 막말녀, 식당의 종업원이 임신한 손님을 폭행했던 임산부 폭행녀 등등.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사회적으로 봤을 때 지탄거리가 될 만한 일을 했거나 했다고 오해 받았다는 점과 그 사진이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인신공격을 당하고 신상정보가 공개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입니다.

사회적인 지탄거리인 행위가 여러 사람에게 공론화되고 그 과정을 통해 공중도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은 일견 좋은 일 같지만 실상 이 안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선 모든 범죄는 법정에서 가려져야 하는 죄형 법정주의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죄형 법정주의는 어떤 범죄자라도 공정한 재판을 통해 그들의 상황과 사정을 따진 후 범죄 여부를 판결 받을 권리를 인정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네티즌들에 의한 인민재판의 경우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그때그때 감정에 치우친 판단과 그에 따른 처벌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고속버스가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로 고속버스 회사 직원에게 무릎까지 꿇고 사과하도록 만들었다는 무릎녀의 경우 그 실상은 그녀의 항의를 중단시키기 위해 그 직원이 자발적으로 그런 형식의 사과를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네티즌들의 착각이나 실수임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인터넷 상에 자신의 사진과 신상이 돌아다닌 피해자의 상처에는 어떤 보상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초반 피해자의 부도덕성을 한 목소리로 비난할 때와는 다르게 뒤늦게 밝혀진 사건의 실상은 이미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져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설령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처벌 받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권한도 자격도 갖추지 못한 네티즌들에 의해 인신공격과 신상 공개를 당하는 것은 분명한 인권 유린입니다.

중국 작가 위화가 쓴 ‘허삼관 매혈기’에 나오는 허삼관의 아내는 젊은 시절 이웃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문화 혁명 시기 그녀는 ‘몸을 팔았다.’라며 사건을 왜곡한 게시물에 의해 인민재판에 기소를 당했습니다. 변명 한마디 할 기회도 얻지 못한 허삼관의 아내는 군중 앞에 끌려가 온갖 수모를 당합니다.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한 것입니다. 현재의 네티즌들에 의한 인민재판 역시 사건의 진위조차 무시하고 처벌자를 찾아 징치하는 데만 열을 올리던 문화혁명 시기의 홍위병을 보는 듯하여 무척 위험해 보입니다.

다음으로, 살아가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분쟁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기보다는 네티즌의 힘을 이용해 해결하려는 세태가 만연하게 됩니다.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운다거나 공공장소에서 너무 심한 애정행각을 하는 것은 분명 공중도덕을 어기는 행위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담배를 꺼주기를 부탁하거나 과도한 애정행각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식의 이성적으로 해결을 시도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었을 때는 법적인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민주 시민의 기본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최근의 세태는 몰래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것으로 해결을 하도록 부추기는 듯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행위나 사진을 공공장소에 게시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범죄라는 것에는 누구도 인식이 없어 보입니다. 이는 더 나아가 분쟁이 생겼을 때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하기보다는 네티즌의 힘을 이용하는 법을 잘 아는 이가 이기는 세태로 나갈 수도 있어 보여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자신도 언제 어디서 인민재판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무심코 길에 버린 쓰레기 하나, 새치기 한 번 같은 가벼운 경범죄 뿐 아니라 술 한 잔 걸친 후 귀가 길에 부른 노래 한마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가벼운 토닥거림 같은 범죄가 아닌 행위까지 언제 어떻게 가공되어 인터넷 세상에 오르고 이를 통해 인신공격을 당할지 모릅니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 당하며 불안감을 느끼고 일상을 보내야 하는 모습은 표현과 의견 개진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인터넷 공간의 장점임을 생각한다면 큰 아이러니입니다.

조지 오웰은 '1984년'을 통해서 빅 브라더에 의해 행동과 사상, 심지어 생각하는 것까지 통제 받는 세상을 그렸습니다. 언제 어디서 휴대폰 카메라나 CCTV에 촬영돼 신상 공개와 인신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현재 우리의 모습도 이런 세태가 좀 더 심해진다면 빅 브라더에 의해 통제 당하는 1984년 속의 세상과 별 차이 없어질 듯하여 우려스럽습니다.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한림대학교 임플란트외과학 석사.
단국대학교 치의학 박사과정 재학 중.
현재 서울시 관악구 중앙동 이수백 치과에 근무하며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외래교수를 맡고 있음.
2010년 인터넷신문에 '치과에서 바라 본 세상'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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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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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11.XXX.XXX.129)
이승훈 칼럼니스트께서 쓰신 이번 글에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요즈음 한국에서의 인터넷 파워는 무서운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인터넷의 독성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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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09: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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