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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행복
김영환 2006년 12월 29일 (금) 00:00:00
올해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간 논란을 거듭하던 10만원권 지폐 발행문제가 국회재경위 소위의 주도로 세밑에는 마치 기정사실로 되는 것 같아 씁쓸해집니다. 10만원권을 발행하자고 내세우는 이유는 우리 경제규모가 커졌고 몇 번 쓰이지 않는 10만원권 정액수표 발행비용이 4,000억원이나 되어 낭비가 크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일본근대화의 정신적인 지주인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 초상이 들어간 일본은행권 1만 엔은 우리 돈으로 약 8만원입니다. 그걸 단순 비교하여 우리 화폐의 최고액이 너무 낮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4조6,000억 달러로 8,000억 달러인 우리나라의 6배 수준입니다. 미국은 100달러가 발권 최고액권입니다. 2005년 미국의 GDP는 12조 달러가 넘어 우리나라의 15배 정도입니다.(이상 미국 CIA추정) 그런데 우리 나라가 왜 10만원권을 만들려고 서두르는지요.

고액권 발행의 이유로는 경제규모와 함께 지불과 결제수단이 여의치 않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자정부라는 자랑과 함께 인터넷 정보통신 최강국의 하나로서 온라인 결제가 보편화되어 종합부동산세나 부가가치세 같은 국세도 온라인으로 받고 있습니다. 소득공제, 영수증 복권 등 국세청의 줄기찬 계몽으로 신용카드 사용도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고액권 발행에 앞서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온라인 결제를 더욱 활성화하고 카드를 거부하는 업소들이 사라지도록 힘 쏟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소득 탈루에 편리하라고 현금거래에 더욱 편리한 고액권을 찍습니까.

고액권이 발행되면 봉급자들은 돈의 매수가 줄어들어 씀씀이가 더욱 헤퍼진다고 주부들이나 남편들이나 모두 불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시장물가는 올라가기가 더욱 쉽고 그러면 임금인상 압력이 가중되고 기업은 경쟁력이 약화될 것입니다.

외국의 사례를 하나 들어볼까 합니다. 1990년대 초의 유럽체재 시절입니다. 팩스용 감열지를 사러 차를 몰고 사무용품 도매 전문점에 갔습니다. 본래 개인수표를 지불하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수표를 잊고 갖고 가지 않아 500 프랑 짜리 3장을 주었습니다. 당시 환율로 약 20만원이었습니다. 점원은 필자가 500 프랑 짜리 현금이 가득한 큰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것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별일이다' 생각하고 점포를 나와 집으로 돌아와 지상 4층인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멈추었는데 경찰차가 아파트로 따라 들어왔습니다. 경관은 신분증을 보자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통상적인 순찰이라고 둘러댔습니다. 속으로 사무용품점의 점원이 신고했구나하고 직감했습니다. 이처럼 상관행이 현금 관리의 문제 등으로 인해 현금수취를 꺼리다보니 탈세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핀란드에서는 노점상들도 신용카드를 받는 걸 텔레비전에서 보았습니다. 대도시 중심에서는 시행할 만하지 않습니까.

김영삼 전 대통령의 큰 업적의 하나로 필자는 금융실명제를 꼽고 싶습니다. 금융실명제는 논란이 있었지만 비밀계좌를 원천봉쇄하고 금융계좌 추적을 통하여 많은 부정사건의 적발을 쉽게 만들어 투명사회를 만드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10만원권 고액권 발행은 우리가 그토록 근절하기 위해 노력해온 부패 단절의 실명제 정신과는 반대 쪽에서 GDP의 30%나 된다는 지하경제를 활성화할 우려가 커집니다. 10만원권 발행에 제대로 된 본격적인 국민 여론조사는 실시했습니까. 만약 고액권 발행이 꼭 필요하다면 2만원권부터 고려해야지 웬 10만원권부터 찍나요? 이것 하나부터 숫자 불감증에 단단히 걸린 우리나라 공직자들의 정신 상태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사안입니다. 1만원권과 10만원권의 차이는 1,000%. 1,000% 인상이 뉘 집 아기 이름입니까. 10만원권은 위조지페범들의 좋은 표적이 되겠지요. 그래서 미국에서도 20달러짜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된다고 합니다.

고액권, 만일 뇌물을 걸터듬는 썩은 공직자라면 속으로 좋아하겠죠. 부피는 10분의 1로 줄고 액수는 10배로 늘어나는 것이죠. 그러니 은행에 다소의 수표 인쇄 값이 들더라도 현행화폐의 액면을 유지하는 게 부패 방지에 좋다고 봅니다. 이 나라에 부패 걱정이 없다면 부패를 막을 국가청렴위원회가 왜 대통령 직속기구로 필요하겠습니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6일 발표한 '사회적 자본실태 종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 모든 집단 가운데 국회 정당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낮았습니다. 조사에서 국민의 70%는 '공직자의 절반은 부패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공적기관중 신뢰도가 가장 낮게 나타난 국회가 먼저 10만원권을 찍자고 나서는 것부터 이상한 일입니다. 일본에서는 단돈 100만엔의 정치자금을 받은 국회의원이 구속되어 결국 의원직을 상실한 10수년 전의 사례도 있습니다.

고액권 발행은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깨끗해졌을 때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폭등 광풍이 불고 서민경제가 실업과 미증유의 불황에 허덕이는 우울한 세밑에 국회와 경제 당국이 서두를 일이 불요불급한 10만원권 발행입니까. 이러다간 연예인들이 1만원을 소중히 여기면서 1주일을 살아가는 방법을 전해주는 인기 텔리비전 리얼리티 쇼 '만원의 행복'마저 물가앙등으로 인해 언젠가는 '10만원의 행복'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만원의 행복'을 깨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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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11.XXX.XXX.2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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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6 20: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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