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의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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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속임수

김창식

2012년 06월 29일 (금) 00:15:14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영화를 보기 전 가슴이 뛰었습니다. SF 영화의 정전(正典․Canon)에 오른 '블레이드 러너', '에이리언1', 그리고 '블랙호크 다운', '글래디에이터'로 세상을 놀라게 한 감독의 최신작이어서요. 영화를 보고 나니 하찮은 속임수에 휘말린 느낌입니다. 낚싯줄에 꿰인 물고기 모양새로 뒷맛이 씁쓸하다니까요.

먼 미래인 2085년, 인간이 외계인의 DNA 조작을 통해 탄생한 생명체임을 시사하는 좌표가 메소포타미아 등 문명 유적지에서 속속 발견됩니다. 우주선 프로메테우스호는 인류 기원의 비밀을 밝히려는 탐사여행에 나서지요. 2년여에 걸친 여행 끝에 낯선 행성에 도착한 탐험대는 피라미드처럼 생긴 구조물을 발견합니다. 여기까지의 흐름은 SF 최고 걸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토리라인과 흡사하군요.

피라미드 내부에 진입한 탐사대는 인간의 모습을 한 석상을 보고 경악하지요. 또한 고대 인류를 설계한 것으로 추정되는 외계의 '엔지니어들(창조주)'이 괴 생명체에 의해 살해되었음도 알게 됩니다. 인류 기원의 수수께끼(외계의 창조주가 왜 인간을 설계했고 또 파멸시키려 하는지?)를 밝혀줄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채 탐사대 역시 괴 생명체의 위협으로 절체절명의 위험에 처합니다. 탐사대 중 유일한 생존자인 여 박사 쇼(누이 라파즈)는 비밀을 풀기 위해 또 다른 미지의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영화는 적지 않은 허점을 노출합니다. 이야기와 이야기를 잇는 연결고리가 느슨한 데다 곳곳에 이해되지 않은 장치가 매복해 있어 해독 불능이에요. 이를테면, 프롤로그에서 외계의 거인이 왜 정체불명의 점액성 물질을 섭취하고 폭포에 뛰어들어 자살하는지, 휴머노이드 데이비스(마이클 파스벤더)가 무슨 이유로 에이리언 인자를 반입해 위험을 자초하는지, 깨어난 최후의 외계인이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살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이지요. 에이리언 시리즈의 여전사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대신하리라 기대를 모은 비커스(샤를리즈 테론)의 역할은 존재감이 없습니다. 그녀의 캐릭터를 통째로 들어내도 영화의 흐름엔 전혀 지장이 없거든요.

영화에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성찰도 없고, 화면 구성도 독창적이지 않습니다. 구조물 내부 탐사 장면, 몸통이 잘린 로봇이 인간을 돕는 설정, 에이리언이 자라는 인큐베이터 클러스터, 인간의 몸을 숙주로 기생한 괴 생명체가 배를 뚫고 나오는 장면 등은 전작 에이리언 시리즈의 동어반복이군요. 영화 제작자들은 개봉 전 방송 인터뷰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에이리언 시리즈와는 상관없는 전혀 다른 영화"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천만에, 영화는 에이리언의 짝퉁이에요. 그것도 조잡한 프리퀄. 심지어 영화 마지막엔 친절하게도 후대 에이리언과 똑같이 생긴 원조 괴물이 "까꿍(우습지 않거든)!" 등장해 관객의 실소를 자아낸다니까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에이리언'을 어설프게 접합한 B급 SF영화 '프로메테우스'는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일대 오점을 남길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문명)을 전해주어 인간의 진화를 가능케 했습니다. 어쩌면 진화의 시작과 함께 종국적으로는 파멸을 환기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속임수까지 가르쳐준 것은 아닐 거예요.

*사족: 외계인이 인간의 조상임을 암시하는 피라미드의 석상은 UFC 격투기 선수인 '미친 개' 퀸튼 잭슨을 모델로 한 듯. 그를 빼닮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