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추방에 앞장선 공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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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추방에 앞장선 공공기관

방석순

2012년 07월 04일 (수) 01:24:09

‘쿨 맵시’로 실천하는 여름철 녹색 생활 -
무더위에 반소매, (넥)타이 없는 복장으로 전기 사용, 자원 낭비도 줄이고 자연도 보호하며 시원하게 여름을 나자는 환경부의 홍보 문구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쿨(cool)하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으니 이해할 만도 합니다.

운전하면서 스마트폰도 걸고, DMB도 보고, (그러다 보면 사고도 나고)…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은 스마트(smart)하지 않다, 운전 중에는!” -
이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국토해양부의 홍보 동영상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쯤 되면 교통안전을 위한 홍보물이 아니라 영어교육을 위한 교재가 아닌가 의심스러워집니다.

어느 때부터인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공기관의 용어에, 또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홍보물에 외국어가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로드 맵(road map)’이라는 말이 이 고약한 모반의 시발점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집권세력에 가담한, 소위 의식이 깨어 있다는 진보 성향의 386세대들이 청와대, 정부 부처 여기저기서 입만 열면 “로드 맵이 어쩌고 …” 읊어댔습니다. 새 권력을 시위라도 하려는 듯. 마침내는 각급 관공서, 공기업들이 마치 외국어 사용에, 아니 우리말 추방에 경쟁을 벌이는 듯한 양상입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언론입니다. 그에 대한 비판은커녕 앵무새처럼 따라 옮기고, 한술 더 떠 국적불명의 괴상한 신조어들을 만들어내는 데 앞을 다투었습니다.

한때 럭키금성, 선경으로 잘 알려졌던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LG, SK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세계시장을 겨냥한 나름대로의 전략이려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SK, LG처럼 영어식 이름이 아니어서 세계시장을 개척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가 삼성, 현대입니다. 두 기업은 기술과 서비스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며, 그 이름값(브랜드가치)이 이젠 세계 어느 기업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사기업이 아닌 공기업 가운데 'SH공사'라는 것도 있습니다. 1989년 서울 시민의 주거 안정과 환경 개선을 목표로 택지개발, 주택건설, 도시정비 등의 사업을 추진하도록 서울시가 세운 지방공기업입니다. 출범 취지, 사업 영역 어디로 보나 외국과는 별 상관이 없지만 간판만은 ‘Seoul Housing'의 머리글자를 모아 영어로 달아놓았습니다. 그래야만 시대에 앞서가는 느낌이 드는 모양입니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장기임대 주택사업을 벌이면서 ‘shift’라는 외래 용어를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주택을 ‘사는 것[所有]’이 아닌 ‘사는 곳[住居]’으로 그 개념을 바꾼다는 의미랍니다. 요즘 같은 글로벌시대에 남보다 한 걸음 앞서나간 것이라 여기며 뿌듯해하고 있을 겁니다. 마곡 도시개발사업에는 ‘지식과 창의의 미래도시’를 지향한다며 ‘Future City’, 은평 뉴타운에는 ‘Dream Life’, 그 밖에 여러 곳의 사업에 ‘Upgrade Life’, ‘Integrity Life’ 등등 영어 문구를 동원해 홍보하고 있습니다. 보나마나 더 많은 손님을 낚기 위한 미끼거나 밑밥이겠지만 그것도 영어라야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전국 규모로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있습니다. 국민 주거생활의 향상 및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정부가 투자한 공기업입니다. 이곳 역시 토지주택공사라는 이름보다는 LH공사로 행세하기를 좋아합니다. 홈페이지에는 LH라는 워드마크(word mark)가 Land&Housing, Life&Human, Love&Happiness의 뜻을 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내 농업인들의 생산, 유통, 신용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농업협동조합도 이젠 그냥 ‘농협’이 아닙니다. 꼭 영문자를 앞에 붙여 ‘NH농협’이라고 합니다. 벌이는 사업은 분명 국내 농민들과 관계된 일이지만 ‘커뮤니케이션 브랜드(communication brand)’라며 농협의 ‘NH’를 따 붙이고, 거기에 Nature&Human, New Hope, New Happiness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정부 부처를 포함한 공공기관들 사이에 혹시 영어 이름을 붙이지 않거나 외국어를 활용하지 않으면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고, (경영)평가에서도 나쁜 점수를 받게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쓰는 말과 글에는 그 사람들의 얼과 넋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말 우리글에는 우리의 얼과 넋이 담겨 있습니다. 세계를 흔들고 주름잡으며 융성했던 수많은 족속, 나라들 가운데 원래의 제 말과 제 글을 그대로 간직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숱한 외침과 환란 속에서도 우리는 용케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삶의 터전을 지켜냈습니다. 세계 10위권의 교역 대국 이전에 문화민족으로서 가장 큰 자랑거리라 하겠습니다.

세계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외래 문물에 미처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그 변화의 전파 역시 눈부십니다. 그럴수록 우리말을 지키고 새롭게 가꾸는 노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해부터 학자, 문인 등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로 ‘말다듬기위원회’를 구성해 우리 사회에 원형대로 돌아다니는 외국어들을 순화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스펙(spec)’을 ‘공인자격’으로, ‘벤치 마킹(bench marking)’을 ‘본따르기’로, ‘팔로어(follower)’를 ‘딸림벗’으로 고쳐 놓았습니다. 물론 어색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민간에서는 오히려 더 일찍 그런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모바일 폰(mobile phone)’은 ‘휴대전화’나 ‘손전화’, '스마트폰(smart phone)'은 ‘똑똑전화’나 ‘맵시전화’로 쓰자, ‘캠프파이어(campfire)'는 ’모닥불놀이‘, ‘롤 모델(role model)’은 ‘본보기’라 고쳐 써야 옳다며 우리말 가꾸기에 힘써온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느 것이든 처음엔 어색할지 몰라도 자주 입에 올리고 귀에 익으면 머리에서도 거부감이 없어진다는 주장입니다. 백번 옳은 말입니다.

이런 마당에 국가 기관들이 앞장서 우리말을 버리고 외국어를 남발하다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김동환 (58.XXX.XXX.73)

모처럼 저의 생각과 꼭 일치하는 글을 보아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영어의 남용에 대해 특히 공공기관에서 솔선하는 데 대해 하도 갑갑하여 한번은 대통령께 탄원서도 보내 보았으나 문체부에 이첩되어 앞으로 나의 의견을 참고하여 잘하겠다는 실무자의 답만 받아 본 적도 있읍니다. 정말 조직적으로 꾸준히 이런 운동을 해나갈 방법이 없을까요? 매일 매일 신문을 보면 정말 열불이 납니다. 좋은 생각있으시면 따로 연락 한 번 수시면 고맙겠습니다. 정말 이런 사회적 행태는 고쳐져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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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5 21: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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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58.XXX.XXX.73)

평소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적지 않다는 데 큰 위안을 얻습니다.
물론 공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깊은 뜻이 없이 시류에 따르다 그렇게 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우리말, 우리글을 가지고도 터무니없는 외국어를 빌어다 쓰는 건 역시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격려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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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5 21: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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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58.XXX.XXX.73)

선생님의 글 감사합니다. 항상 느끼고 분노하고 있던 이름들입니다.
농협이 NH, 주택공사 LH 웃기는 영어식 어색한 이름들입니다. 삼성 현대도 좋고, 일본 미쓰비시, 후지, 히다치 모두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관에서 주도하는 표어도 외래어야만 고급스러운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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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5 21: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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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화 (58.XXX.XXX.73)

우리말은 촌스럽고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걱정하시는 선생님의 심정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말과 글은 현실 따라 변하는 것이라지만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이 그렇게 쓰기로 약속하여 쓰고 있는 기호이고 신호입니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현상이 생김에 따라 바꾸거나 새로운 말이나 표현이 필요하면 구성원들 간의 심의와 동의 과정을 거치는 등 신중히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바꾸고 제멋대로 만들어 내 혼동을 주고 특히 국적도 확실하지 않은 외국어나 비슷한 표현을 앞 다퉈서 쓰는 일은 대단히 잘 못된 풍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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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5 21: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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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봉 (58.XXX.XXX.73)

저도 공무원이지만 우리말을 쓰지 않고 함부로 외국어를 쓰는 공공기관들에 짜증이 납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적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국무회의 자료에는 한국어만을 쓰도록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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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5 21: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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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ypen (211.XXX.XXX.73)

교과부가 수우미양가 대신 abcde로 한다네요. 수우미양가로 하면서도 상대평가를 얼마든지 가미할 수 있을텐데. 아니 그 안에 상대평가 요소가 다 포함돼 있지요. 나라교육을 책임진 교과부가 이 모양이니 더 말해서 무얼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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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5 10: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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