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보다 무서운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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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보다 무서운 세금

김홍묵

2012년 07월 13일 (금) 00:28:08

밀라노의 두오모(Duomo) 대성당. 광장을 중심으로 스칼라 극장(Theatro alla Scala)과 마주하고 있는 두오모 성당은 엄청난 규모의 대리석 건축물의 위용에다, 성인상을 떠받치는 135개의 첨탑, 그리고 섬세하고 사실적인 2,245개의 조각상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합니다. 1386년 공사를 시작해서 500년 만에 완공된 이 성당은 한마디로 르네상스 문화의 정수입니다.

북부 이탈리아의 섬유ㆍ공업도시이자 세계 대중패션을 리드하는 밀라노를 두 번째 찾았을 때 적잖이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한국 상설오페라단 김일규 단장이 안내한 밀라노 고성(古城)이 너무 쇠락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잡초가 무성하고 바닥 돌은 깨지고 성곽조차 꾀죄죄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자 “세금을 더 거두겠다는 시장 후보는 절대 당선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호텔 방안의 독특한 옷걸이 디자인, 옷가게들의 맵시 있는 전시 솜씨, 연고 축구팀의 승리를 자축하면서 차량을 타고 도심을 질주하며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G7 국가의 힘을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탈리아가 지금은 국가 부도 위기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영토를 넓힐 때마다 무상 밀배급 대상을 늘리고, 콜로세움의 검투나 마르스 광장의 전차경주로 시민을 열광시킨 로마제국의 영광은 까마득한 전설로만 남게 되는 건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모든 재산과 생산물을 국가가 소유하되, 무상으로 식량을 배급하고 질병치료와 자녀교육을 책임지는 ‘세금 없는 나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밥 굶을 걱정 없고, 헐벗을 일도 없고, 아프면 무료진료 받고, 사교육에 매달릴 필요도 없고, 직장 못 구해 안달할 일도 없고…. 그런 ‘지상낙원’의 나라 북한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세금. 국가가 세입조달을 목적으로 국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돈입니다. 죽음과 세금은 피할 도리가 없다고 했지요. 걷는 쪽에선 ‘과세의 기술은 가능한 한 아무런 잡음 없이 최대량의 깃털을 오리에게서 뜯어내는 것’(루이 14세의 프랑스 재무담당관 콜베르)이 목적이고, 내는 쪽에선 ‘모든 빚 중에서 가장 갚기 싫은 것’(19세기 미국 사상가 에머슨)이 세금입니다.

그 세금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 중의 하나로 몽테스키외(1689~1755. 프랑스 사상가)의 이론을 들 수 있습니다. “입헌국가에서의 자유란 중세(重稅)에 대한 보상이요, 전제국가에서의 자유에 상응하는 것은 가벼운 세금이다”는 정의입니다.

국리민복(國利民福), 세금을 거두는 가장 큰 명분입니다. 바로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한 것입니다. 국방ㆍ교육ㆍ치산치수ㆍ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다 완전 고용과 쾌적한 의식주 확보, 질병자 실업자 노인 및 모자(母子)의 사회보장, 연금 등에 의한 최소한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국민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복지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것은 오래전의 일입니다. 특히 선거전에서는 민심의 향방을 가르는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영유아보육비 보조에다 틀니도 공짜로 해주고, 신혼부부의 집값은 저리로 빌려주고, 서민주택을 늘리고, 새길 뚫고 다리도 놓고….

문제는 돈입니다. 재원 마련 대책도 없이 사탕발림 공약으로 주민에게 영합하려는 주택사업 경기장 도로 교량 주차장 관광열차 경전철 리조트 박물관 등 각종 건설 사업을 벌여 놓고는 적자에 쩔쩔매는 지방자치단체가 수두룩합니다. 게다가 호화 청사를 짓고 선심성 행사를 벌이면서, 이미 완공된 시설은 이용자가 없어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빚더미 인천시는 올 4월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공무원 급여(복리후생비 20억 원)를 체불했습니다. 강원도 태백시의 태백관광개발공사 직원 150여 명은 올 들어 몇 달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콘도 스키장 골프장을 갖춘 오투리조트 사업비 등 빚이 2,060억 원으로 올 예산 2,450억 원에 육박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 할 판입니다.

81억 원을 들여 지은 경기도 용인시 상현근린공원 지하주차장(199대 규모)은 하루 평균 이용 차량이 2대 정도라고 합니다. 200억 원이 든 태백의 고생대 자연사박물관엔 하루 유료 관람객이 77명, 대구시가 4년 전 495억 원을 들여 지은 대구사격장도 매년 2억~4억 원씩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시비(市費) 2,370억 원으로 지난해 건설한 경기도 화성종합운동장은 연간 운영비가 25억 원이나 되는데 9개월간 축구경기를 딱 한 번 치렀다고 합니다.

말이 ‘자치’이지 지방자치제 실시 20년이 넘은 우리나라 자치단체들은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도 못 주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38개 시ㆍ군이 교부금 없이는 급여조차 지급할 수 없는데 복지비용은 늘어나 파탄지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런 판에 국회와 정부가 생색을 낸 0~2세 무상보육 정책은 50%를 부담해야 하는 자치단체의 예산고갈로 시행 반 년도 안 돼 중단되는 시ㆍ군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민간자본으로 건설한 공공시설 체육시설 도로 교량 등도 결국 적자보전의 책임은 국민과 주민이 떠안게 됩니다. 국채나 지방채를 발행하더라도 그 빚은 세금으로 메꿔야 합니다. 그래서 세금 무서운 줄 모르고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듯. 세금을 낭비하는 정치인 위정자 공직자는 탈세범보다 훨씬 큰 죄악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많기도 한 선거, 그때마다 쏟아내는 복지공약. 그런 당근에 현혹되어 단체장을 잘못 뽑았더라도 세금이 많이 드는 공약 사업만은 합리적으로 검토 판단할 방안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주민투표의 활성화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그럴듯하게 허둥지둥 만든 공약을 시행 전에 검증하면 자치단체의 살림을 거덜내는 일은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착수한 사업은 공정과 성과를 계속 점검하는 체크시스템도 보강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