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피임약, 일명 사후 피임약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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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2012년 07월 16일 (월) 01:00:56

근래 의사의 처방권과 무관할 수 없는 진료 약품의 재분류 과정에서 불거진 응급 피임약 문제를 놓고 의사 단체와 약사 단체, 의사 단체와 시민 단체 간의 ‘투쟁적 말다툼’ 양상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이런 추한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편으론 민망스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언론에 발표한 약품 재분류 방침을 시민 단체의 도움을 등에 업은 채 밀어붙이고 있으며, 아마도 그런 방향으로 여론과 정책을 끌고 가리라 예상됩니다. 여기서 각기 다른 의사 단체나 약사 단체의 주장을 다시금 갑론을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걱정이 많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이는 비단 물리학의 기본 개념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용하는 모든 치료 약물, 특히 효능이 뛰어난 약물일수록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 약물을 처방할 때는 반드시 그 작용과 부작용에 대해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합니다. 간혹 환자에게 “제가 처방하는 약은 부작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의사가 있기는 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의사는 실제로 예상되는 부작용이 정말 없다고 확신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결코 정확한 설명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 의사는 아마도 약의 기본 개념조차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는 어쨌든 틀림없는 과실 행위입니다. 이 세상에 효능만 있고 부작용은 없는 약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보건복지부 산하 식약청이 수천 종의 치료 약품을 전문 의약품(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품)과 일반 의약품(환자가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약품)으로 새롭게 분류해 발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약품이 첨예한 논쟁의 불씨를 제공했는데, 모두가 피임 관련 약품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의사의 처방이 필요했던 사전(事前)피임약(여성의 생리 주기에 맞추어 복용하는 피임약)은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되었고, 새롭게 개발되어 아직까지 비교적 생소한 이른바 응급피임약(일명 사후(事後)피임약)은 일반 의약품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에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이 두 가지 피임 약제를 환자의 건강을 지키는 차원에서 의사의 관리 및 처방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피임약의 본질은 호르몬제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약사들은 생리 주기형 사전피임약은 잘 알려진 약품이니 당연히 일반 약품으로 분류해야 하고, 응급피임약은 ‘사후’ 72시간 이내에 투약해야 피임 효과가 있으므로 접근성이 좋은 약국에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견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젊은 여성이 ‘사후’에 피임 목적으로 약을 복용하면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사안事案’의 특성상 한 번의 에피소드로 끝나기보다는 사후 피임약 사용이 ‘자유로워져’ 반복 복용하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 보고서(연세대보건대학원, 2011)에 의하면 피임을 실천하고 있는 비교적 젊은 여성층(15~29세)에서 먹는 피임약을 피임방법으로 선택한 비율이 10%가 넘는다니 더욱 염려스럽습니다.

생명 윤리적 또는 성(性) 도덕적 문제를 넘어 피임약 복용이 젊은 여성에게 미칠 건강상의 영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응급피임약’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사후피임’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호르몬을 평균보다 10~15배 많이 한꺼번에 투입해야 확실한 ‘응급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여성 체내 호르몬 시스템에 교란을 일으키는 가히 충격적인 요법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기에 그에 따른 부작용의 누적 효과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 단계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신약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미 행정 저지선을 넘은 것 같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응급 피임약에 대한 광범위한 계몽과 철저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우리 젊은 여성의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 하겠습니다.

바로 얼마 전 미국피부과학회 공식 기관지 <Dermatology Daily>(2012. 06. 25)에 실린 “많은 미국 학교에서는 의사의 지시 없는 자외선 차단제의 사용을 금한다(Many US Schools Don't Allow Sunscreens Without A Doctor's Note)”는 내용의 보도가 눈길을 끕니다. 이미 생활화된 화장품류에 속하는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는 데도 의사의 지시를 요하는 미국 교육청의 행정을 지나친 관료적·소인배적 조치로 여길 것인지 또는 우리나라의 이번 응급 피임약 경우처럼 ‘관대한’ 조치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너무 헷갈립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모르면서 소신만 강하면 정말 무서운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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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피임’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호르몬을 평균보다 10~15배 많이 한꺼번에 투입해야 확실한 ‘응급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여성 체내 호르몬 시스템에 교란을 일으키는 가히 충격적인 요법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고 싸우는 것인지, 국민의 건강이 보건 정책의 최우선 기준이 돼야 하는 게 아닌지, 그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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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6 21: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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