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만의 런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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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만의 런던 올림픽

방석순

2012년 07월 26일 (목) 00:29:35

“바다의 왕자 마린 보이…” 아침상을 보면서 아내가 콧노래를 섞어가며 흥얼거립니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신명이 없어요?” 툭하면 핀잔을 주던 아내입니다. 지난 월드컵 때는 어디선가 ‘붉은 악마’ 응원단의 빨간 티셔츠를 사다 입고선 우리 팀 경기가 중계되는 날마다 혼자 흥을 돋우었습니다. 이번엔 올림픽 차례입니다.

곧 런던 올림픽이 개막됩니다. 며칠 전부터 이 시대 스포츠의 우상이라고 할 수영 스타 박태환의 믿음직한 훈련 모습이 되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피겨 스타 김연아에 이어 국민 여동생이 된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의 깜찍한 연기도 보입니다. 또 우리 대표선수단 본진이 산뜻한 단복을 맵시 있게 차려입고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 교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는 광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총 22개 종목 374명으로 구성된 우리 대표선수단의 목표는 ‘10-10’, 10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 종합성적 10위 이내에 드는 것이라 합니다. 충분히 가능한 목표로 여겨집니다.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는 올림픽 금메달 순위 10위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메달 종목도 복싱, 레슬링, 유도, 역도 등 체급경기에서 양궁, 사격, 탁구, 배드민턴, 핸드볼, 하키, 체조, 펜싱, 수영으로까지 그 폭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국운 상승’, 국력의 신장과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경기는 육상 남자 단거리 경주일 것입니다. 특히 100m와 200m 세계최고기록을 가졌으며 베이징 올림픽 3관왕인 우사인 볼트(26), 한때 그의 연습상대였지만 지난해 대구 세계선수권대회 100m에서 당당히 우승하고 최근 대표 선발전에서도 볼트를 앞지른 신성 요한 블레이크(22), 두 자메이카 탄환들이 벌일 라이벌 대결이 흥미롭습니다.

스페인 축구의 올림픽 도전도 볼 만합니다. 스페인은 2008년 유럽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2년 유럽선수권, 세계청소년선수권 등 세계 각급 대회를 싹쓸이했습니다. 그야말로 ‘무적’의 위용입니다. 과연 올림픽 축구까지 제패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눈과 귀를 잡아끌 관심사는 역시 우리 선수들의 경기일 것입니다. 특히 올림픽 2연속 우승을 노리는 박태환(23)의 수영 자유형 400m 레이스가 기다려집니다. 올 시즌 이 종목에서는 중국의 쑨양(孫楊, 21)이 3분42초31의 최고기록을 보였습니다. 박태환보다 1초91 앞선 것입니다. 그래서 쑨양의 우승을 점치는 해외 언론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박태환은 베이징 올림픽은 물론 두 차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 종목 1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큰 승부에 강한 ‘마린 보이’ 박태환의 역영, 198cm로 박태환보다 무려 15cm나 더 큰 신예 쑨양의 추격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모읍니다.

여 검사(劍士) 남현희(21)의 설욕전도 기대됩니다. 4년 전 베이징에서는 여자 플뢰레 결승전 마지막 4초를 남기고 점수를 잃어 다 잡았던 금메달을 이탈리아의 베테랑 발렌티나 베잘리(38)에게 빼앗겼습니다. 남현희는 이번 대회서 반드시 되갚으리라 다짐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믿음직한 황금 종목으로 통하던 양궁 경기도 이젠 만만치 않게 됐습니다. 해외에 진출해 있는 우리 코치들의 선진 기술 지도로 세계 각국 선수들의 기량이 눈부시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정상을 지키려는 우리 선수들과 이에 도전하는 외국 선수들 사이에 숨 막히는 접전이 벌어질 참입니다.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각 종목 경기가 펼쳐질 런던은 사실 우리 스포츠의 올림픽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올림픽에 관심을 가져온 이라면 누구나 ‘런던’이라는 도시에 특별한 감회를 느낄 것입니다. 세계대전으로 두 차례나 대회가 무산된 후 12년 만에 다시 평화를 기원하는 올림픽 성화가 1948년 영국 런던에서 타올랐습니다. 아직 나라를 제대로 세우기도 전이었지만 우리는 64년 전 그 대회에 67명의 대표선수단을 파견했었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후 처음 참가하는 올림픽. 5월 10일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8월 15일에야 정부가 수립되었으니 우리 선수단은 그보다 보름이나 앞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KOREA’라는 이름으로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을 행진한 것입니다. 현지 선수단은 물론 훨씬 나중 국내에 전달된 현장의 흑백 보도사진만 보고서도 많은 사람들이 감격했던 장면입니다. 선수단 기수로 태극기를 들고 개막식에 입장했던 손기정 선생은 그때의 감격을 평생 잊을 수 없노라고 되뇌곤 했었습니다.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했으나 시상대에서조차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그의 감회는 참으로 남달랐을 것입니다.

신생 대한민국의 첫 올림픽 참가는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우리는 스포츠 세계에서도 완전한 독립국가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전경무(田耕武, 1900~1947) 씨가 런던 올림픽 한 해 전인 1947년 5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참가 승인을 받아내기 위해 미 군용기 편으로 스톡홀름 IOC 총회로 떠나다가 비행기 추락으로 숨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임정(臨政) 구미(歐美)위원이던 이원순(李元淳, 1890~1993) 씨가 곧바로 고인을 대신해 스톡홀름으로 날아가 어렵게 IOC의 승인을 얻어냈습니다. 미국에서 일제의 식민통치를 규탄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던 이들에게 올림픽 참가는 또 하나의 건국 운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부 구성조차 안 된 나라에서는 67명의 대표선수단을 파견하는 비용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습니다. 12월엔 올림픽 참가 경비 조달을 위한 ‘올림픽후원권’이 발매되었습니다. 국민의 뜨거운 성의가 모여 후원권 1백여 만장이 팔렸고, 수익금 8만여 달러로 선수단 출전 경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48년 6월 18일 대표선수단 출정을 격려하는 시민 환송대회가 지금은 사라지고 만 서울운동장에서 열렸습니다. 출절 전날 밤에는 덕수궁 광장에서 서울보건부인회 주최로 환송 모성(母性)대회도 열렸습니다. 21일 선수단은 마침내 열차로 서울을 출발해 부산에서는 배편으로 후쿠오카로, 다시 기차로 요코하마로 이동했습니다. 선수단이 상하이, 홍콩, 방콕, 콜카타, 뭄바이, 바그다드, 카이로, 로마, 암스테르담을 거쳐 대회 장소 런던에 집결한 것이 7월 11일. 그러니까 21일 간 9개국을 여행한 셈입니다.

그런 고난의 여정 때문에, 또 세계 스포츠에 대한 정보의 부재로 우리 선수단은 런던에서도 상상치 못했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축구팀은 현지 예상을 뒤엎고 첫 상대 멕시코를 5-3으로 물리쳤습니다. 대회 우승팀이 된 다음 상대 스웨덴에는 12-0으로 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두 경기 스코어가 모두 경이롭기만 합니다. 마라톤에서는 섭씨 30도를 훨씬 웃도는 무더위 속에 최윤칠이 30km 지점을 넘어서까지 선두를 달리다가 다리에 경련이 일어 기권하고 말았습니다. 고달픈 여정이 그의 체력을 소진시킨 탓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역도의 김성집이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획득, 올림피아드에 처음 태극기를 올리는 쾌거를 보였습니다. 복싱의 한수안도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한국은 동메달 2개, 그리고 참가한 종목에서 두루 선전하는 값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왜 스포츠인가? 왜 올림픽인가? 모든 게 어렵던 시절 헐벗고 굶주려도 올림픽과 스포츠를 향해 정진했던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독립된 나라의 존재를, 깨어 있는 민족의 꿋꿋한 기상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戰勝)의 방울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일제 치하에서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룬 손기정과 남승룡, 그들의 승전보에 감격의 송축시를 썼던 심훈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도 같은 이유로 아직 나라 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남수단 등 몇몇 신생국 선수들이 오륜기를 들고 출전합니다.

두 번째 런던 땅을 밟은 우리 올림픽 대표선수단은 보기에도 당당했습니다. 그 규모나 쌓아온 기량, 지원 등 모든 면에서 64년 전과는 천양지차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스포츠가 세계 무대에 우뚝 설 수 있도록 그 바탕을 갈고 닦은 선배들의 희생과 노력을 우리 젊은 대표선수들이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스포츠 강국답게 더 이상 메달 색깔에 연연하지 않는, 보다 의연한 모습을 보여 주면 좋겠습니다. 가진 기량을 힘껏 발휘하고 최선을 다하되 그 과정에서는 정정당당하고 그 결과에는 흔쾌히 승복하는 멋진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하장춘 (58.XXX.XXX.140)

신생 대한민국이 탄생하기 한 달 전 미군정 하의 독립적인 올림픽 참가에 눈물겨운 일도 많았군요. IOC에의 가입승인을 얻기 위해 올림픽 한해 전에 그 어렵던 항공 사정을 뚫고 구미위원부 대표로 있던 이원순옹이 스위스로 날아가 가입을 해내는 어려운 일도 해결하였고요. 참가에 드는 비용 마련을 위하여 후원회를 열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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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7 07: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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