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올림픽 드라마를 기대하며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허영섭 동서남북

감동의 올림픽 드라마를 기대하며

허영섭

2012년 07월 27일 (금) 04:59:57

한여름의 열대야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엊저녁은 모처럼 흥분을 만끽한 밤이었습니다. 우리 올림픽 축구팀이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멕시코 팀을 맞아 결전을 벌인 것입니다. 선수들의 발끝에서 공이 움직일 때마다 시청자들의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시종 우세를 점하고도 끝내 골과 연결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우리 팀으로서는 이번 런던올림픽을 통틀어 첫 번째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대구와 인천, 광주를 포함한 대도시 곳곳에서는 밤 늦도록 단체 응원전도 펼쳐졌습니다. 여수엑스포장에서도 박수소리와 함께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터져나왔습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자발적으로 응원단에 합류하여 선수들과 한마음을 이룬 것입니다. 경기가 벌어진 영국 뉴캐슬 세인트 제임스파크 경기장에서도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목소리는 우렁차게 울려퍼졌습니다.

이번 멕시코와의 축구 대결은 1948년의 제14회 런던올림픽을 다시 떠올리게 만듭니다. 우리 대표단이 태극기를 앞세워 ‘KOREA’라는 이름으로 올림픽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그때의 얘깁니다. 그리고 축구 종목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상대가 바로 멕시코였습니다. 당시 강호로 꼽히던 멕시코였지만 최성곤의 선취골과 정국진, 배종호, 정남식 선수 등의 활약으로 우리 팀은 5대3으로 감격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올림픽 참가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출전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후원권 복권을 발행해야 했고, 런던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선박과 기차, 비행기를 갈아타며 20일 동안 여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국민적 성원은 뜨거웠습니다. 7개 종목에 출전한 67명의 선수단이 첫 출전답지 않게 늠름한 모습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던 것도 그러한 후원에 보답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올림픽은 베를린올림픽(1936년)에 이어 12년 만에 열린 것이었기에 더욱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2회(1940년), 13회(1944년) 올림픽이 연달아 취소됐기 때문입니다.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전범국이란 이유로 아예 초청국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우리로서는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을 실감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입장식에서 기수를 맡은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당시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고도 그 기쁨을 일본에 돌려야 했던 사실을 우리 선수단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라를 잃은 식민지 백성의 설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태극 마크를 가슴에 붙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습니다. 선수들은 경기에 임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줄곧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겁니다.

그때 출전한 선수들 가운데서도 베를린올림픽에 일본 선수의 자격으로 참가했던 선수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축구팀의 김용식 선수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타계하기까지 우리 축구계의 대부로 불려졌던 그는 베를린올림픽 당시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주인공이었습니다. 농구 경기에 출전했던 장이진 선수도 베를린올림픽에서 일본 선수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엄연한 한국 선수로 뛰게 됐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모든 점에서 미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축구팀은 멕시코를 물리치고 2차전에서 스웨덴과 맞닥뜨렸으나 무려 12대0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지금껏 해외 원정경기에서의 최대 실점으로 꼽히는 경기였습니다. 당시 스웨덴이 축구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할 만큼 실력이 막강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우리 선수들이 너무 위축됐던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당시 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따낸 김성집 선수는 누구보다 감격을 느꼈던 경우였습니다. 한국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라는 사실 때문만이 아닙니다. 베를린올림픽 선발전에 뽑히고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탈락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목에 걸고 태극기가 게양되는 것을 바라보며 “이게 조국의 기쁨이구나”라며 한없이 울먹였다는 얘기는 지금 들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복싱 플라이급에 나섰던 한수안 선수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잘 싸우고도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결승전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편파 판정만 아니었다면 올림픽 첫 도전에서부터 적어도 은메달 정도는, 더 나아가 금메달까지도 내다볼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지요. 신생국 선수의 비애였습니다.

당시 우리는 종합순위에서 32위에 그쳤습니다. 참가국이 모두 59개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랑할 만한 성적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실력을 갈고 닦으면 우리도 국제무대에서 어깨를 겨루며 싸울 수 있다는 가능성 만큼은 충분히 확인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개최하게 되었고 종합순위에서 4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주최국의 프리미엄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냥 만들어진 기록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월드컵 축구대회와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치렀고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개최하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스포츠 분야에서도 명실공히 세계적인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번 런던올림픽의 선수단 참가 규모도 374명으로 크게 늘었고, 종합성적에 있어서도 3회 연속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 자만하다가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국제무대에서 선두국들과 계속 나란히 자리를 유지하려면 땀방울을 흘리며 계속 연마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비단 스포츠 분야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수출 실적을 포함한 경제가 그렇고 기술개발과 문화 분야가 모두 그렇습니다. 엊저녁 멕시코와의 축구경기를 관람하면서 64년 전의 우리 모습을 문득 떠올리게 된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드디어 올림픽의 개막일이 다가왔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그동안 닦아온 체력과 기량으로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룸으로써 끝없는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지기를 기대합니다. 국민들도 목청껏 힘찬 응원을 보낼 것입니다. “대~한민국, 짝짜~짜짝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