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내 말 안 듣더니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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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2012년 08월 07일 (화) 08:15:57

어느 모임에서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아무개도 잘 지내느냐고 묻자 “그 사람 내 말을 안 듣더니 죽었어요”라는 조금은 생뚱맞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내심 지인의 사망 소식을 듣는 것 자체도 당혹스러운데, 그 내용이 범상치 않아 “무슨 말을 안 들었기에?” 하고 조심스레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계속 숨을 쉬라고 했는데, 내 말을 듣지 않았어요”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원래 독설가로 이름난 분의 말이라 그런지 당시에도 꽤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기억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그 독설적인 “내 말을 안 듣더니…”라는 말이 새삼 자주 떠오릅니다.

88서울올림픽 때 일입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과 환자와의 소통이 독일어로밖에 안 되니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어 급히 찾아갔습니다. 환자는 당시 서독의 올림픽 팀을 인솔하고 서울에 온 정계 VIP였는데, 소변에 피가 많이 섞여 나오는 혈뇨(血尿)가 문제였습니다. 환자가 피를 많이 흘린 것도 심각했지만 방광암 수술을 받은 것이 재발해 생긴 후유증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주 생소한 ‘외지 병원’에 홀로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얼굴이 많이 창백했습니다. 우선 독일에 있는 그의 주치의와 전화로 정확한 병력(病歷)에 대해 의견을 나눈 다음, 응급 지혈 조치를 하고 독일로 신속히 이송함으로써 상황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 환자는 자신의 근무지이자 당시 독일의 수도인 본Bonn에 소재한 대학병원이 아니라, 그곳에서 약 30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군(郡) 단위 고향의 종합병원에 있는 주치의에게 가겠다고 했습니다. 필자가 본 대학병원에 있는 동료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는데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이 일은 환자와 주치의, 주치의와 환자 사이의 믿음과 신뢰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에피소드로서 지금까지 필자의 기억에 작은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의료 환경은 어떻습니까? 환자 주변 사람들의 ‘훈수’가 도를 넘고, 환자 자신이나 가족도 ‘귀가 얇아’ 치료하는 데 부정적 혼선을 초래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이는 국내 의료 환경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도시에서는 물론 각 지방에서 KTX를 타고 서울 소재 대형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며 진단 의견서를 수집하는 등 이른바 독자적인 ‘확률 진단용’ 병원 쇼핑(hospital shopping)이 성행하는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반성할 대목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L.A.에는 우리말 언론 매체도 있어 생활하기가 여간 편리한 게 아닙니다. 가끔은 외국에 있다는 생각을 잊을 정도입니다. 특히 현지 TV나 신문 지면에 나오는 다양한 가전 기구, 각종 가구, 자동차 등의 광고는 그곳의 생활 방식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정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심심치 않게 TV에서 당혹스러운 장면을 접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60~70대 남자와 여자가 화면에 나와 무슨 약초 뿌리로 조제한 제품을 먹은 후 지난 5~10년 동안 복용한 당뇨병 약과 고혈압 약 또는 고지혈증 약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특허를 받았다고 광고합니다. 특히 미국식약청FDA의 허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특허’는 상표 등록, 제조 공정의 특허일 것입니다. 또한 이는 치료 약품에서 말하는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인증 또는 특허와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일 겁니다. 유사 약품류를 홍보하면서 ‘특허’ 운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만행위를 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양 의학의 시각에서 볼 때 위와 같은 의료 관련 광고는 황당하기에 앞서 소름이 끼치고 매우 걱정스러운 상황입니다. ‘유사 약품’은 결코 약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런 광고에 현혹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유사 의약품’을 소총(小銃)에 비교한다면, 병·의원에서 처방하는 당뇨병, 고혈압 및 고지혈증 치료제나 다양한 항생제는 미사일에 버금가는 최첨단 과학의 산물입니다. 이런 식의 광고는 고대사와 현대사를 혼동하는 우리 사회의 양상과 일면 궤를 같이하는 것 같아 허탈하기까지 합니다.

병원에서는 사이비 약품을 정품 치료제와 혼동해 복용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응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치료 과정에서 비전문인이 던지는 이런저런 훈수는 “환자가 숨을 계속 쉬라는 말을 안 들어서 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독설과 맥을 같이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의사와 환자, 환자와 의사 사이에 올바른 신뢰가 두텁게 쌓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가져봅니다.

김윤옥 (110.XXX.XXX.229)

가끔 주변에서 모모로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니는 사람을 봅니다.
나는 유명한 의사보다 성심을 다해 환자의 고통을 염려하는 의사가 좋은의사라고 믿습니다.
누구누구의 소개로 찾아가야 잘 봐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의사는 기본적으로 어떤 환자든지 성심을 다해 진료한다고 믿습니다.
아는 사람이라고 잘봐주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는 사람이라서 긴장하고 실수 할 수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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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4 00: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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