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에 멍든 일본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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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에 멍든 일본정치

황경춘

2012년 09월 03일 (월) 03:51:17

독도와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의 분쟁이 커지면서, 편협한 애국심을 부추기는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속 보이는 발언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금년 가을에 중의원 총선거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 정국에서 한국에 대한 상식을 벗어난 강성 발언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입니다.

여론조사에서 한때 60%대의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한 시점에서 당 대표 경선을 한 달 앞두고 국회의 답변에서 또는 기자회견에서 목청을 돋우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실지로 국정에 참여하지도 않는 지방 정치인까지가 다음 선거를 노리고 유권자를 현혹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일본 정치에서의 포퓰리즘의 폐단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준비하기 전의 1930년대 초반 잠깐 자유를 즐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즈음 외국에서 들어온 유행을 좇고 라디오에서 대중가요를 즐겨 들으며 영화나 신파연극 배우들 뒤를 따라다니는 천박한 서민들, 특히 부녀자들을 약간 비하해 ‘미 짱, 하 짱’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전후 1960년대에 들어서 일본 경제의 발전이 시작되고 이와 함께 찾아온 구미의 난숙한 자유 민주주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번에는 ‘미ㆍ하 족(族)’이라고 줄여 불리게 된 이 집단은 대부분이 한 표를 가진 무서운 유권자의 집단으로 등장했습니다. 사회 각 분야의 여론 형성에 무시 못할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전국구와 비례대표 제도가 도입되면서 일본 정계에는 이 ‘미ㆍ하 족’의 도움으로 많은 연예인이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물론 스포츠 스타나 다른 분야의 저명인사도 비례대표 제도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개중에는 인기만으로 선출됐다가 무능 등 이유로 불명예 퇴출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전통있는 다카라즈카(宝塚）소녀 가극단 출신으로 5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여 인기 절정에 있던 미모의 오기 치카게(扇千景)는 1977년 43세의 나이로 전국구에서 참의원 의원에 당선한 뒤 6년 임기의 참의원에 다섯 번 당선하여, 여러 장관 자리를 거친 뒤 예능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참의원 의장에까지 뽑혔습니다. 그는 ‘오기’라는 예명을 은퇴할 때까지 사용했습니다.

대동아전쟁 중 리샹란(李香蘭, Li Xianglan)이란 중국 이름으로, 중국대륙에서 영화와 가요계서 활약한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는 전후 귀국하여 예능인으로 대단한 인기를 얻은 뒤 역시 여당의 강청으로 전국구로 참의원에 진출하여 18년 동안 정치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예능계 출신 국회의원이 여럿 있었습니다만, 일본의 ‘미ㆍ하 족’ 같은 정치력을 가진 아줌마 집단 현상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좋은 예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郞)입니다. 그는 무소속으로 있으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일본 수도의 4년 임기 수장(首長)으로 14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많은 일본 지식인이 그의 독선적이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인품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는 선거의 달인입니다.

배우와 가수로 인기 절정에 있다가 암으로 5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동생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郞)에 대한 동정표와, 소위 ‘청춘소설(靑春小說)’의 작가로 유명했던 본인에 대한 ‘미ㆍ하 족’지지자의 도움으로 그는 당시의 여당 자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이 된 뒤에도, 선거에서는 승승장구하였습니다.

이러한 ‘미ㆍ하 족’의 표를 얻는 데에 포퓰리즘이 위력을 발휘해 온 것이 일본정치의 특징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행복이 제일’당수와 지금 일본정계의 혹성(惑星)적 존재인 하시모토 토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입니다.

고이즈미와 오자와는 대중에 영합하는 독특한 선거구호로 총선에서 대승하여 이른바 ‘고이즈미 칠드런’‘오자와 걸스’라 불리는 신인 국회의원을 많이 당선시켜 유명했습니다. 이제 그 뒤를 이어 하시모토 시장이 총리 꿈을 꾸며 ‘하시모토 보이스’를 규합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아닌 그가 만든 지방정당 ‘유신의 회’가 다음 총선에서 제3당이 될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야단입니다.

젊은 변호사로서보다 TV 토크쇼의 탤런트로서 더욱 인기가 있던 하시모토는 그의 나이 39세였던 4년 전 오사카 부지사(府知事)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함으로써, 일약 전국적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임기 도중인 작년 12월에는 오사카 시장 선거에 뛰어들어 현직을 물리치고 거뜬히 당선해 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물론 오사카 시(市)는 오사카 부(府) 안에 있는 하부 행정기구입니다. 말하자면 경기도 지사를 그만두고 수원 시장이 된 셈이지요. 지사의 행정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시장을 축출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의 개혁 의도에 찬동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보다도 보수색이 짙고 말을 자주 바꾸는 그의 인품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엉뚱하게도 아직 국회에 진출하지도 못한 ‘유신 회’당수인 그가 한일 간의 뜨거운 감자인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했다는 증거를 대라고 했습니다. 노다 총리의 비슷한 발언에 앞서, 그는 과거에 일본정부가 한 간접적 사과 발언까지를 문제 삼고 증거를 대라고 악을 썼습니다. 마치 흉악범을 두둔하는 돈에 눈 먼 변호사처럼 굴었습니다.

이 모든 게 다음 중의원 선거를 염두에 둔 포퓰리스트 발언입니다. 그는 처음 선거 때,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 질문에 “2만% 없다”라는 말을 후보등록 직전까지 하여 나중에 비난을 받았고 비슷한 말 바꾸기를 자주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 모든 게 포퓰리즘을 무기로 하는 정치인의 특성임을 유권자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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