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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레슬링
유능화 2012년 09월 11일 (화) 01:37:12
제 병원에서 약 500m 되는 곳에 성 베드로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지적 장애나 지체 부자유 학생들만 가르치는 특수학교입니다. 제가 그곳 교의(校醫)이기는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특별히 그곳 학생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봄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전까진 내가 창상 봉합술도 안 하는 줄 알고 사고환자가 생기면 무조건 멀리 떨어진 병원까지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타박상은 물론 상처를 꿰매야 되는 환자들도 종종 보내옵니다.

문제는 학생들이 정상아가 아니라 아무리 말을 해도 막무가내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교생 실습 나온 여자 대학생의 팔목에 학생이 상처를 내서 봉합수술을 하게 되었답니다. 실습생은 마른하늘에 벼락 맞은 꼴이 된 것입니다. 느닷없이 밀치는 바람에 생긴 상처를 봉합하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 그 후 봉합 부위에 이상감각이 생겨 혹시 신경계통에 탈이 난 것은 아닌지 해서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다시 진찰을 받으러 다녔던 모양입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양호 선생님은 어쩔 줄을 모르고 얼굴색이 파랗게 질리는 것이 퍽이나 안쓰럽습니다.

한 번은 한 학생이 동급생을 물어서 팔에 상처가 났습니다. 양호 선생님은 다친 학생의 부모가 아주 예민한 분이라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학생의 부모만 특별히 예민한 것이 아니고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전체 학부모가 다 예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어뜯긴 상처를 소독하고 파상풍 주사를 놓고 양호 선생님을 안심시켰습니다.

지난 6월 어느 날에는 한 학생이 입술이 찢어져 왔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봉합을 하면 되는데 환자가 지적 장애인이어서 국부마취에 따른 통증을 잘 참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고통에 따른 몸부림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아는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양호 선생님이 또다시 얼굴이 파래지며 부모님이 워낙 예민한 분이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제 병원에서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난처해진 저는 할 수 없이 제안을 했습니다. 최소한 3명의 도우미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양호 선생님이 부랴부랴 선생님 두 분을 모셔왔습니다. 운전기사 한 분과 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입술 봉합을 했습니다. 네 명의 어른이 학생 한 사람을 상대로 레슬링을 한 것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레슬링 사건(?)이 생기고 언젠가 칼럼에서도 소개했었던 김종례 교장선생님이 병원에 들르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부임한 곳이 성 베드로 학교이기에 학교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애정이 많으신 분입니다. 과거 성 베드로 학교에서도 학부모들이 교육비를 부담하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사고가 나도 학부모들이 오히려 선생님들께 미안하다며 자녀들을 탓하는 것이 예사였는데 모든 것이 무상으로 바뀐 요즈음에는 학교에서 사고만 나면 무조건 학교 책임이고 학생을 잘못 지도한 선생 책임이라고 몰아붙인답니다. 비싼 학비를 내고 다닐 때는 학교에 대하여 고분고분하더니만 학비를 안 내고 다니는 요즈음은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어 선생 노릇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하십니다. 공짜 의식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변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십니다. 제가 4년 전 처음 교의 임명장을 받으러 갔을 때 느낀 것과는 판이해진 상황입니다.

방학을 누구보다도 반기는 분들이 성 베드로학교 선생님들입니다. 왜냐하면 방학기간에는 학생 보호 책임이 전적으로 부모한테 있으니까요. 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과 제발 레슬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고만 터지면 안절부절못하고 얼굴이 파래지는 양호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데 가능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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