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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초한 아픔
신아연 2012년 09월 19일 (수) 01:26:49
약 한 달 새 연달아 세 번 치과에 갔습니다. 치료 받는 데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자초한 아픔’은 제게 성숙을 가져왔습니다.

“ 마취를 하고 할까요? 그냥 할까요? "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사랑니 뺄 때, 스케일링할 때 말고는 치료로는 처음 찾은 치과인데 얼마나 아플지, 견딜만할지의 판단을 제게 맡기다니요. 하지만‘범생 기질’은 이럴 때도 작동하나 봅니다. 어른이 물으면 얼른 대답해야 하니까요.

“그냥 할게요.”

의사는 의외라는 듯, 그냥 물어 본 건데, 괜히 물었다는 듯 약간 망설이더니 “ 정말 괜찮겠어요? …그럼 그럴까요?" 했습니다.

‘뭘 알아서? 마취하겠다고 할 걸. 난 이제 죽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이렇게 해서 저는 발치할 건 아니었지만 유태인 고문 전력을 가진 괴한으로부터 마취없이 (고문이니까) 생니를 뽑히는 영화 <마라톤 맨>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말이 그렇달 뿐 실은 견딜만 하니까 의사도 마취를 할 건지 말 건지 타진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꼭 의례적인 물음이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취를 선택할 거라는 일련의 생각이 불안과 함께 빠르게 스쳐갔습니다.

이가 뽑히는 '마라톤 녀'가 될 것도 아닐 바에야 반쯤은 결기로, 나머지 반은 얼결에 시작된 마취없는 치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셋째 날 절반의 치료는 결국 마취제에 의지했으나 그간의 고통에 대해서는 상세히 기술하지 않겠습니다.

흔한 말로 그 고통이 일생 ‘트라우마’로 남는다 할지라도 삶의 요긴한 에너지로 여투어 두기에 이보다 더 선연하고 샤프한 경험은 없을 테니까요.

배를 곯아 보지 않았고, 무수리처럼 건강했으며 기억에 남을 사고를 당한 적도 없었으니 몸이 고생하고 감내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지혜나 겸손, 미덕을 쌓을 기회가 없었던 저로서는 주로 편식을 하고 있었다고 할까요?

비록 내 잘못, 내 실수로 초래했을 망정 마음고생은 그럭저럭 해 본 터수라 깨어짐, 죄의식, 자존심 상하는 따위의, 정신적 고통을 통한 성장은 어느 정도 맛보았던 것에 비한다면 말입니다.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는 그것이 아픔을 동반하느냐 안 하느냐에 있다고 한다면 제 아픔의 연유는 대부분 정신적 고통이었으니 음식으로 치면 편식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사실 육체적 고통이 갖는 집중성, 직접성, 구체성, 선명성은 대부분의 정신 고통을 능가합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자와 안 간 남자, 갔다 와도 방위였던 남자, 애를 낳아본 여자와 안 낳아본 여자, 낳아도 자연분만한 여자와 제왕절개한 여자의 차이는 우스갯 소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몸이 기억하는 시련만큼, 육체적 고통의 정점만큼 ‘사람을 만드는' 확실한 것이 없기에 아이들에게도 말로 하다 안 될땐 매를 들게 되는 게 아닐까요.

‘마취없는 치과’를 다녀온 후 치아관리에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마다 아팠던 치료 기억이 떠오르며 정신이 바싹 드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말그대로 '치떨리는' 고생을 해 봤기 때문에 ‘ 마취 주사 한 대면 둔탁하고 불편한 느낌 정도에 얼마든지 치료받을 수 있으니까 까짓 거 망가지면 또 가면 되지.'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시기심이나 인색한 마음이 들때, 공연한 욕심이 솟을 때 , 자족보다는 불평불만하게 될 때 몇 달 전에 앓았던 지독한 감기, 한 해 전 혹독했던 이석증을 생각하면 마음이 바로 가라앉습니다. 몸만 나으면 다 감사할 것 같았던, 몸만 안 아프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며 진저리치던 그때 그 순간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는 부처님 말씀은 제 경험상으로도 진리입니다.

허기지다는 것을 느끼기 무섭게 배를 채우고, ‘덥다, 춥다’는 기껏해야 냉난방 장치 가동을 위한 정보일 뿐, 한 그릇 밥의 절실함, 극한의 더위와 추위를 생명의 위협으로 느껴본 적이 저는 없습니다. 자동차 안의 안온함 속에 있는 한 아무리 느껴보려고 해도 차창 밖의 현실은 비현실일 수밖에 없듯이요. 어쩌면 인류는 육체적 고통의 완화, 그것의 궁극적 제거를 위해 가열찬 노력을 기울이며 물리적 고통이라는 일체의 현실을 비현실화시키고 있는지 모릅니다.
마취제의 발명은 정말이지 전인류의 육의 구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쯤은 육체적 아픔을 날것으로 겪어볼 일입니다. 일평생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도 감사했던 사도 바울처럼, 아픈 것도 축복이니 진통제 없이 견뎌냈던 두통, 치통, 생리통을 종종 떠올려 볼 일입니다. 생에 대한 오만과 망상을 줄이고 겸손과 한계를 깨닫는 계기를 자주 만들 일입니다. 그러한 경험은 손에 쏙 들어오는 주머니 난로의 매작지근한 온기를 닮은 조촐한 행복감을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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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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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220.XXX.XXX.168)
가슴을 절개한다든지 어마어마한 수술 끝에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환자의자를 타고 나오는 환자들을 봅니다. 생명이란 대단하기도 하고 살아있다는 것이 모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통 다음에 성숙한다고는 하지만 그 결과를 위해서 고통을 부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삶에는 그 고통이 숨어있기에 우리는 그것과 마주쳐야하는 힘과 인내 또한 주어져 있다 봅니다. 그래서 아픔,고통에 쉽게 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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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0 07: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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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60.XXX.XXX.96)
신아연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로 인한 고통에서도 심오한 각성을 느끼시는 선생님의 지혜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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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9 17: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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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60.XXX.XXX.96)
저도 지난 3개월 55년을 잘 지탱해준 치아가 말썽을 일으키면서 3주전 급기야 어금니 발치를 해서 지금도 임프란트 대기 상태로 허전한 상태입니다. 마취발치였기에 신선생님같은 고통은 없었지만 가능한 발치 않고 신경치료로 해결해 보려는 과정에서 수면장애 고통등 이루 말할수 없었기에 그 고통 이해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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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9 17: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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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60.XXX.XXX.96)
공감이 가는 글, 감사합니다.

또 다시 육체의 간사함이 밉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도 실망스럽고,또 거기로 돌아가는 반복에 대해 항복하는 생활.

좀 더 저항하면서 살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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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9 17: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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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60.XXX.XXX.96)
와, 대단한 건강비법입니다. 소금의 유용함이란 정말 놀랍습니다. 게다가 인내천님께서 실천하시는 건강 관리법은 정말 '저돌적'이네요.^^ 영육 정신 모두 강한 분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저도 소금 애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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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0 22: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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