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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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에 박수를

오마리

2012년 09월 21일 (금) 05:24:23

나는 어려서부터 무섭거나 잔인한 영화 드라마는 아예 관람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 작품의 수준이나 배우의 연기, 명성에 관계없이 무조건 공포를 불러오는 영상물은 피하는 편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게 될 때는 대체로 귀를 막고 눈을 감는 장면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화 ‘피에타’를 보기로 결정했던 이유는 그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 최고의 작품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작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 영화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로 불리는 김기덕 감독을 알고 싶었습니다. 보편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고 가난했던 소년기에 공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며 열등감에 싸여 살아온 그가 누구인지, 그랬던 그가 무일푼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길거리의 초상화가로 연명하며 영화에 입문을 하였고, 나이 오십에 세계가 인정해주는 영화제의 최우수상을 받게 만든 그의 작품의 원천인 삶과 예술에 대한 철학 또한 알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어떻게 1억5천만 원이란 적은 제작비-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한국 드라마 대형사극에 들어가는 비용과 비교한다면-로 그런 수상작을 만들 수 있었을까, 보수를 받지 않고 촬영을 수락한 두 명의 주연 배우들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영화관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위대한 작품 ‘피에타’는 로마 바티칸 시 안에 전시되어 있는 중세의 조각상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시신을 끌어안고 비통해 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모성, 그 원초적인 사랑을 그린 것으로 바티칸에서 보았던 ‘피에타'를 생각하며 그 느낌으로 영화관을 찾았던 나는 충격에 잠겼습니다. 이 영화 ’피에타‘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으며 왜 이 영화가 외국 영화들을 제치고 영화제 심사위원들에게 강한 어필을 했는지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내가 언젠가 보았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보다 이번 수상작 ‘피에타’는 사람들이 쉽게 근접하고 즐기기에는 더욱 처절했습니다. 그러나 나 같은 비전문인에게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주 강렬하고 정확하게 들어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버려진 주인공 청년에 대한 미움보다 차라리 고통과 좌절, 그리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슬픔에 가슴을 쓰라리게 하는 장면들이 훌륭한 영상기법, 촬영기술, 각본으로 빛났습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가 어디에 서 있는가? 어두운 뒷골목의 버려진 인생들, 인간쓰레기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그 불행이 그들에게만 책임이 있는가? 아니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도 공범이라는 것을 자성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숨을 죽이고, 눈을 손으로 가리고 귀를 막았던 때도 많았지만 어쨌든 지루하지 않게 한숨을 쉬며 본 영화는 돈, 자본과 사람의 관계였습니다. 시작부터 종료까지 인간의 사랑이 부재(不在)하는 물질만능의 세상은 지옥이란 것을 시사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영화감독 김기덕이 아닌 한 사람 김기덕으로 또 한 번 매우 감동한 것은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순수한 모습에서였습니다. 김기덕의 생활을 조명한 어느 TV프로그램에 비친 그의 일상에 의하면, 그는 서울 근교, 드문드문 인가가 있는 황량한 동네, 황토 빛깔의 흙더미라고 볼 수밖에 없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위치한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지붕과 비바람을 막는 벽이 있을 뿐 그 집은 주택이라 불릴 수 없는, 집이 아닌 집입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마루 아닌 마루 앞 입구에는 우물이 있고 그 우물을 모터가 달린 수도꼭지로 연결하여 음식물을 씻거나 빨래 청소를 합니다. 전기는 자가발전 시스템, 그가 스스로 설치했다는 태양열 에너지 판이 곧 날아갈 것 같은 앞 지붕 처마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불을 켜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가 찍은 영화들을 편집합니다.

그의 주변에는 극히 생활에 필요한 살림살이뿐이며 한 칸 방으로 보이는 방 안으로 들어가면 추위를 막기 위해 방안에 캠핑할 때 쓰이는 텐트를 치고 그 안에 침구를 놓고 생활합니다. 그 텐트 안에서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상 편집을 합니다. 비누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물로만 세탁하는 빨래방법,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여 간단히 식사를 준비하는 그에게 어느 언론사의 기자가 물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으냐고. 그러자 그가 대답한 말은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자연에 가깝게 또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법이 아니겠느냐. 더 무엇이 필요하냐.”였습니다.

물론 흥행에 성공하지 않는 작품만 만들어 온 그의 열정과 외고집이 그를 경제적으로 어렵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보다는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그의 내면과 외모, 겉차림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그는 가장 자연친화적인 사람이 아닌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물론 가난하게 살아야만 진정한 예술인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모습에서, 그가 살아온 지난 삶에서 나는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생전에 오직 한 점의 그림만 팔려 극한 빈곤에 시달렸던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고흐의 두 평도 되지 않던 작고 초라한 방 앞에 서서 눈물을 흘렸던 나를 기억했습니다.

불우한 과거를 긍정적으로 승화하고 오직 외골수로 달려온 김기덕 감독의 집념, 성실함과 정직함이 결국 그에게 인간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자본주의 병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그의 영화를 시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영관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흥행성이 없고 오락요소가 없는 그의 영화, 위안보다는 외면하고 싶은 잔인한 진실을 관객에게 호소하는 그의 영화가 대기업이 대다수 차지하고 있는 영화 유통사업계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향하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 그리고 예술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시민들의 참여나 제도적 방법은 없는지요?

나는 이 글을 쓰며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유쾌한 오락물도 좋지만 불편하더라도 예술성이 있는 영화를 관람하는 인구가 늘어났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김기덕 감독도 고통스럽게 살아온 삶과의 이별을 함으로써 그 아픔을 극복하길 바랍니다. 또한 비주류뿐이 아닌 주류의 세계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도 기구하고 절절한 사연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표현하지 못하는 그들의 삶을 그의 탁월한 표현 방법과 영상 감각으로 계속 훌륭한 작품을 많이 제작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와 함께 개런티도 받지 않고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에 대한 찬사와 관심입니다. 특히 내겐 초면이었던 청년배우, 그의 뛰어난 연기에 대해서는 어느 일간지나 방송에서도 언급이 없었고 주간지나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김기덕 감독과 훌륭한 연기를 하였던 여주인공에게 가려 그의 이름 석자와 연기에 대한 평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내 마음을 아프게 할 만큼 힘든 배역을 잘 소화해 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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