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관참육장(五關斬六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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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관참육장(五關斬六將)

김창식

2012년 09월 26일 (수) 00:23:51

지난 7월 24일자 칼럼 '탐낭취물(探囊取物)-장비' 편에 이어 관공(關公) 운장(雲長)을 조명합니다. 삼국지의 뭇 무장 중 최고 스타로 신의 반열에 오른 관우가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은 동탁군의 맹장 화웅과의 싸움이었죠. 당시는 최고 실세인 동탁 대 원소를 중심으로 한 제후 연합 팀 간에 패권을 다투는 시기였습니다. 화웅은 동탁의 '페르소나(Persona)'로서 위엄이 대단했지만, 일개 마궁수(분대장 급) 출신인 관우의 한 칼질에 고혼이 됩니다.

관우가 결정적으로 무명을 떨친 계기는 안량‧문추와의 드잡이질이었어요. 안량‧문추가 누구던가요? 삼국지를 통틀어 최정상급의 무인입니다. 오죽하면 안량과 맞짱 뜨려고 겁 없이 나섰던 조조 휘하 맹장인 '도끼살인마' 서황마저 패퇴했을까요. 관우는 무서운 2인조를 '소매로 코 풀듯' 연이어 간단히 제압합니다. 적을 경시하고 거들먹거리던 안량‧문추로서는 임자를 못 알아본 허무한 죽음이었어요.

조조에 귀속한 후 여러 차례 공을 세워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던 관우는 의형 유현덕이 하북의 원소에게 의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유비의 두 부인을 모시고 탈출합니다. 관우의 신위는 오관을 지키는 여섯 장수를 주살하는 이른바 '오관육참장(五關六斬將)'의 고사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관우의 일기(一騎) 탈출과 이를 저지하려는 여섯 장수의 충돌은 관우의 충절과 의기, 용맹을 일층 빛나게 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벤트입니다.

조조는 사고무친한 관우를 잡아두기 위해 온갖 향응을 베풀고 술수를 동원합니다. 한수정후(漢壽停侯) 벼슬을 하사하고 비단과 금은보화가 담긴 사과 궤짝도 여러 개 전달합니다. 그러나 관우는 들통날 염려가 없는 재물과 보화를 열어보지도 않고 일련번호를 매겨 창고에 고스란히 보관합니다. 나중에 다시 돌려보내려고요. 원, 사람도 고지식하긴!

조조가 관우의 환심을 사려고 던진 추파의 백미는 '적토마(赤兎馬)' 사건입니다. 하루에 천 리를 간다는 명마이지만 주인(원래는 여포)을 잘못 만나 재능을 썩히고 있던 적토마를 조조가 관우에게 선사한 것이죠. 관우는 거듭되는 청에 마지못해 접수하면서도 형(유비)에게 빨리 달려갈 수 있음을 기꺼워합니다. 조조로서는 죽 쏟고, 데이고, 소문난 격이니 분통이야 어찌 다 말하리오? 나중 적토마는 관우를 태우고 으스대며 수많은 전공을 세우다 주인이 분사한 후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 죽으니, 그 충성심이 '말보다 못한' 뭇 후인들을 부끄럽게 하는군요.

충절, 의기, 용맹스러움과 이에 걸맞은 전공…. 중국인들의 관우에 대한 존경은 절대적입니다. 관우를 모신 사당은 '관제묘(關帝廟)'입니다. 관우를 사랑하는 모임도 있을 법하군요. '관사모'라나요! 나관중도 관우만은 이름을 들먹이지 않고 반드시 '관공(關公)'이라고 칭합니다. 관우의 사람됨이 가장 감명 깊게 다가오는 대목을 살펴봅니다. 관우가 죽임을 당한 후 떠돌던 혼령이 적토마를 타고 아들 관평, 부장 주창과 함께 옥천산(玉泉山) 암자에 나타나 고향 후배인 보정(普淨) 스님에게 목숨을 돌려줄 것을 강청합니다.

"내 목을 내놓아라."
"장군은 어찌하여 명계(冥界)에 들지 못하고 소승을 찾으시오?"
"중원통일의 큰 뜻을 품은 본좌(本座)가 방심하여 쥐새끼 같은 여몽의 잔꾀에 속아 개죽음을 당했으니 스님은 내 목숨을 돌려주시오."
"군후께서는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목숨을 돌려보내라 하심은 심히 형평을 잃은 처사올시다. 그러면 장군에게 죽임을 당한 안량과 문추, 오관의 여섯 장수는 누구에게 목숨을 청해야 하겠습니까?"

이에 관우의 혼령은 머리를 숙여 생각에 잠기더니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수하를 대동하여 밤하늘의 어둠속으로 홀연히 사라집니다. 관우처럼 명성과 실력이 함께 하고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흔쾌히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관우가 한갓 무부가 아니라 논리와 감성을 소유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인격체임을 이 일화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관우와 이미지가 겹치는 서양 사람이 있습니다. 중세 에스파냐의 카스티야 왕국을 무어인의 침입으로부터 격퇴한 국민적 영웅 '엘 시드(El Cid)'입니다. 그의 본명은 '로드리고 데 비바르(비바르의 로드리고)'이지만, 무어인들마저 흠모하고 숭앙하여 적장인 그를 엘 시드, 즉 '용기를 알고 자비를 베푸는 주군(主君)'으로 높여 부른 것이지요. 진짜 사나이가 새삼 그리워지는 요즈음입니다. 솔직하고 당당하며 거침이 없으면서도 남의 고충을 헤아리는 멋진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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