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너무 겁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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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너무 겁주지 마세요

이성낙

2012년 10월 15일 (월) 01:00:33

에피소드 1)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스팔트 도로에서 세슘-137(이하 세슘) 방사선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서울 시내는 물론 전국 방방곡곡에 깔린 게 아스팔트이고, 맨땅을 밟으며 성장하지 않은 ‘아스팔트족’들은 지난 수십 년간 ‘피폭’을 받아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도 항간에 퍼져 있습니다. 게다가 더욱 당혹스러운 사실은 아스팔트 도로가 이젠 피할 수 없는 생활환경의 일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앞으로도 오랜 세월을 ‘피폭’의 위험에서 계속 살아야 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과잉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울시장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내뿜는’ 방사선에 관리 기준(1mSv) 이상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주민에 대한 역학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아스팔트에서는 어떤 방사선 수치가 검출되었는지, 또 왜 월계동에서만 높은 수치의 방사선이 검출되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월계동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향후 50년간 피폭에 의한 인체 영향을 추적 관찰하겠답니다. 이런 발표는 마치 아스팔트에 뭔가 암을 유발하는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처럼 들려 우리를 더욱 겁나게 합니다. 시장이 시민을 안심시키기는커녕 애매한 조사를 지시함으로써 불안감을 조성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정녕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문득 금년 5월 미국에서 발간하는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커피 관련 논문이 떠오릅니다. 연구자는 미국국립암연구소 소속 프리드먼(N. Freedman) 박사입니다. 박사는 약 40만 명을 13년간 추적 관찰하면서 커피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흡연 여부, 과음 여부, 붉은 육류 섭취량 및 운동량과 같은 개인적 변수 때문에 분석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습니다. 월계동 피검자의 경우에도 흡연, 생활 습관, 사업, 가족 관계 및 스트레스 등 흔히 알려진 다양한 암(癌) 유발 요소와 아스팔트 피폭에 의한 암 발생과의 연관성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요인들도 앞으로 50년간 추적 관찰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특히 이런 조치가 정치 포퓰리즘의 한 예를 보는 것 같아 심히 걱정됩니다. 장기간에 걸친 학술적 역학 연구는 조용한 가운데 전문가 팀이 진행할 사항이지 정치적 접근 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에피소드 2)
며칠 전 “후쿠시마 원전에서 250킬로미터 떨어진 도쿄 앞바다인 도쿄 만 해저 진흙에서도 기준치인 8,000Bq베크렐(Becquerel)을 훨씬 넘는 27,000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되었다”라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비록 식품이기는 하지만 뉴질랜드산 분유에서 안전 기준치(370Bq/kg)의 1/1,000에 불과한 0.37(Bq/kg)이 검출되었다고 야단인데 말입니다. 염려하는 사람들은 식품에서는 극미량도 검출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방사선이 극미량 검출되는 것보다는 전혀 없는 것이 좋겠지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생활권이나 우주 공간에도 세슘 방사선은 존재합니다. 우리가 장거리 비행을 할 때에도 극미량이지만 ‘세슘 방사선의 피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합니다.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에 묻어 있는 방사선이 비나 눈과 함께 지상에 내려오니 극미량이지만 모든 식품(커피 0.48, 녹차 0.72, 잣 0.65)에서 세슘이 검출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생활권에서 세슘 방사선이 전무(全無)하길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따라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발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에피소드 3)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 목적으로 다양한 약을 처방하기 마련입니다. 의사는 환자가 고생하는 질병을 고치는 데 필요한 약이나 시술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종종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필자는 “이 약을, 이 시술 방법을 내 가족, 즉 내 사랑하는 어린 손자에게 또는 노약한 가족에게도 똑같이 처방할 것인가?”라고 속으로 자문자답한 다음 그 결과에 따라 치료 방향을 설정합니다. 그리고 환자에게 담당 의사로서 필자의 생각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전달하면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곤 합니다. 이러한 ‘치료 지침’을 필자는 오랫동안 후배 제자들과 함께 나눠왔습니다. 비교적 설득력 있는 논리적 접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극미량의 세슘 방사선 검출로 뉴질랜드산 분유가 이목을 끌었을 때, 필자는 가족으로부터 친족 유아에게 그 분유를 계속 먹여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시 필자는 위의 ‘치료 지침’과 같은 맥락에서 거리낌 없이 뉴질랜드산 분유를 계속 먹여도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뉴질랜드산 분유에서 검출된 세슘의 양이 안전 기준치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인 0.37Bq/kg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슘은 특성상 대부분이 소변으로 배설되고 유아의 경우 어른보다 빨리 배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방사선이 전혀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안전 기준치의 설정이지 검출 여부가 아닙니다. 식약청 같은 전담 기구가 제시하는 ‘안전 기준치’라는 게 있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리고 검출기기 및 방법의 첨단화에 따라 기준치가 강화되는 것은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방사선의 경우 검출 여부 자체를 유해성 여부와 쉽게 결부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분유 관련 논쟁에서 필자는 담당 전담 부서가 너무 조용하고 수동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적극적인 해명이나 입장 표명 없이 방관하는 자세는 시민에게 불안감만 더해주고, ‘겁쟁이 행정’의 본보기로 지탄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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