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 도사’들이 제철을 만났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점집들 문턱이 닳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정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면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 가운데 과연 어느 쪽에 붙어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겠지요. 현역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은 물론 교수, 기업인 등 고객도 다양하다고 합니다. 본인이 아니라도 부인들이 나서서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다니며 점괘를 알아본다는 얘깁니다.

특별히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누가 최후에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것인지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연못 아래 숨어 있던 잠룡(潛龍)들이 현룡(見龍)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가운데 하늘로 날아오를 비룡(飛龍)은 오직 한 사람뿐입니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가 3파전을 이루는 가운데 심상정·이정희·강지원·이건개 씨 등이 출마선언을 함으로써 이합집산과 야권 단일화에 따른 변수도 예상됩니다.

과거에도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족집게 도사들이 등장하곤 했었지요. 항간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당선을 정확히 알아맞혔고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4강 신화’의 기적이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예견했다는 신묘한 능력의 역술가들이 소문으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국가적으로 중대사를 맞을 때마다 은연중에 도선국사나 무학대사처럼 남다른 예지능력을 지닌 인물의 도움을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신력을 유지해야 하는 신문, 방송에서조차 역술인들의 전망을 소개하며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습은 별로 유쾌하지 않습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식의 내용입니다만, 심심풀이로 읽고 지나가는 ‘오늘의 운세’와는 또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하긴,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요즘에도 결혼이나 취직을 앞두고 점괘를 보거나 부적을 지니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풍조입니다.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회장이 직접 관상을 보았다는 대기업도 없지 않습니다.

심지어 역대 대통령이나 후보들 가운데서도 대선을 앞두고 부모 묘소를 이장하거나 이사를 했던 경우가 더러 있었으니까요. 그때마다 풍수를 따라 옮긴 것이라는 소문이 유력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선거 캠프도 명당자리를 따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 전두환 대통령에 이어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을 연달아 배출한 민정당의 관훈동 당사가 그렇고 김대중 대통령의 캠프가 차려졌던 여의도 대하빌딩 자리도 나름대로 명당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현재 박근혜 캠프가 진을 쳤는데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명당 여부가 다시 판가름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러한 얘기의 대부분은 여기저기 말을 퍼뜨리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에 의해 꾸며지고 부풀려졌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명당이나 관상, 사주에 따라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라면 애초에 선거를 치를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늘로부터의 계시나 신탁은 아득한 신화시대에나 가능했던 설화입니다. 정말로 천기누설의 경지에 이른 도사님들에게는 가소롭게 들릴지 몰라도 서너 명의 후보가 출마한 경우라면 일반인들도 대략 20~30%의 적중률은 보이기 마련입니다.

사지선다형으로 출제된 시험문제에서 연필을 굴려 답을 썼을 때의 확률이 대체로 그 정도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연달아 서너 문제를 틀리는 경우도 있겠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당선을 계속 맞혔다고 해서 그렇게 비중을 둘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요즘 나도는 얘기들을 살펴보아도 올해가 흑룡(黑龍)의 해이므로 어떻다든지, 이름에 무슨 글자가 들어가는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느니 하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역술가에 따라서는 “운세를 타고날 순 있지만 운명까지 결정되진 않는다”며 완곡하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설사 하늘의 귀띔으로 당선자를 알아맞혔다 칩시다. 그렇지만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명예스럽지 못하게 임기를 마쳤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임기 중에 자식이나 형님을 감옥에 보내야 했고 측근들의 비리와 전횡으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야 했습니다. 위장전입자나 탈세 의혹자를 요직에 앉힘으로써 스스로 정부의 권위를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이제야말로 마지막까지 박수를 받으며 물러날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하고, 역설적이게도 그런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예지력과 신통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고 했습니다. 민주사회의 선거에서는 어차피 민심을 얻는 후보가 당선되는 법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4천만 명을 약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유권자 가운데서 가장 많은 표를 얻는 후보가 곤룡포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제대로 된 공약과 확고한 쇄신 의지로 신뢰감을 심어줘야 합니다. 청렴 의식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후보 자신만이 아니라 일가친척이나 앞으로 중책을 맡게 될 선거 캠프의 핵심 인사들에게도 똑같이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을 잘 살도록 하겠다는 다짐이지만 단순한 공약(公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날림 공약을 남발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그야말로 빈껍데기의 공약(空約)만 남기도 합니다. 선거때마다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을 어떻게 올리겠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대체로 부도수표로 종지부를 찍기가 일쑤였습니다. 뒤늦게 그것이 공약이 아닌 하나의 비전이었다는 민망스런 변명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러고도 경제가 나름대로 굴러간다는 게 신통할 뿐입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자기가 내건 공약을 충실히 지키면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철저히 단속할 수 있는 그런 후보를 내다보고 선택해야 합니다. 누가 당선되는지만을 놓고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저마다 이 시대, 이 나라의 구세주임을 내세우고 있으나 결국 이무기로 땅바닥에 떨어질 사이비 메시야들은 걸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역술가들에게 맡겨놓을 일이 아니라 유권자 전체가 책임을 지고 냉철하게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