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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자영업자
신아연 2012년 11월 06일 (화) 01:02:11
남편이 자기 사업을 시작한 후 주변 사람들도 자연히 ‘장사꾼’으로 물갈이가 되었습니다. 20년 간 함께 했던 그 많은 ‘월급쟁이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제는 앞도 뒤도 옆도 위도 아래도 온통 ‘사장님 세상’에서 남편은 다시금 물정을 익히고 있습니다. ‘세상 물정’이 아닌 ‘정글 물정’을 말입니다.

남편은 결코 녹록지 않고 만만치 않은, 우리 시대의 키워드이자 스티그마의 지경에 이른 이른바 ‘50대 자영업자’인 것입니다.

눈여기며 다니지 않아도 상가마다 대로변마다 문을 닫는 가게들이 속출하는 게 너무 잘 보입니다. 한 집이 문을 닫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옆 가게가 폐점 세일에 들어가고, 며칠 후 그 옆집은 아무 사인도 없이 덜컥 장사를 그만둡니다. 한 밤 자고 나면 하나씩 사라지는 점포들을 볼 때마다 폐업을 결정하기까지 피를 말렸을 주인의 심정을 헤아리게 됩니다. 버틸 때까지 버텼으나 더는 어쩌지 못한 자괴감과 함께 한숨어린 불멸의 밤이 숱하게 있었겠기에 말입니다.

그렇게 황량히 비어버린 ‘그 집 앞’을 얼마간 지나다니다, 무작정 불로 날아든 불나방처럼, 휘황한 집어등에 유인된 오징어처럼 덜컥 새 입주자가 들어선 것을 보게 됩니다. 분명히 망해 나갔음에도, 사람 심리란 게 다른 사람은 다 안 돼도 나는 될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배운 도둑질이라 울며 겨자 먹기식인지 여하튼 점포는 하나 둘 다시 메워집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멀쩡한 실내를 뜯었다 붙였다, 좌판을 접었다 펼쳤다를 반복합니다. 보는 사람조차 심란한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팔고 나간 집이 되돌아와 간판을 다시 올릴 때도 있습니다. ‘닭집-카페- 다시 그 닭집’ 이런 식으로 어지럽습니다. 그 와중에 임대업자도 편편치는 않겠지만 그대로 죽어나는 것은 소매업자요, 자영업자입니다.

소매상의 죽음은 당연히 대기업의 거대한 ‘빨판’ 탓입니다. 어디에 ‘꽂혔다’하면 강한 흡착력으로 지역 경제, 동네 상권을 훑듯이 쫙쫙 빨아들이면서 순식간에 숨통을 끊어 놓는 것입니다.

라이트급도 못 되는 소매상들이 지역마다 들어서는 슈퍼 헤비급 대형 쇼핑센터에 나가떨어지는 것은 바람 앞에 촛불 꺼지는 것보다 더 허망합니다. 혹자는 대형 유통업계에 치이는 동네 상권을 팬티 한 장 달랑 걸친 맨몸뚱이로 시베리아 벌판에 선 형국이라고 비유합니다. 물맷돌 없이 골리앗을 마주한 다윗 신세라는 거지요.

시거든 떫지나 말든지 임대료라도 좀 만만하면 뛰든가 움치든가 어떻게 좀 운신을 해보겠지만 건물주들은 살인적 임대료로 악명 높은 대형 유통업체의 못된 것만 배웠습니다. 그네들은 봉건시대의 작은 영주, 큰 영주들의 현대판 버전일 따름입니다.

그러니 ‘큰 영주들'의 등쌀이라고 견딜 만할 리가 있겠습니까. ‘아가리’에 들어 온 먹이를 멋대로 요리하는 것은 승자독식권을 가진 자의 당연한 권리니까요. 시내 중심가가 아니라도 일단 대형 쇼핑센터에 들어간 순간부터 부부가 들러붙어 온종일 뼈 빠지게 일한 수입이라야 ‘입에 풀칠하는 정도’이고 좀 더 버는 사람이라면 ‘밥술이나 먹는 정도’라고 표현합니다.

물으나 마나 매출의 대부분을 ‘영주’에게 빼앗겼기 때문이지요. 장사가 좀 될라치면 냉큼 임대료를 올려 그 이상을 거둬가 버리니 착취당하기는 어차피 마찬가지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물정 모르고 계약서에 사인 한 번 잘못하면 8년 번 돈을 8개월 만에 날리고 맨 몸뚱이로 나오는 곳, 1년 만에 집 한 채 값 물어주고 손 터는 데가 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워낙 세가 비싸니 장사가 안되면 속된 말로 ‘찍’소리 한 번 못내고 한 방에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일단 사람들이 모인다는 이유로 대형 쇼핑센터로 들어오려는 '소작인들'이 줄을 섰다니, '지주들'은 ‘마름’을 통해 고전하고 있는 점포를 눈여겨보았다가 센터 이미지 망친다는구실을 들어 하루아침에 쫓아내 버리고 그 자리를 딴 사람에게 줘버리는 횡포를 일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정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먹고 먹히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시드니 한가운데, ‘배냇 백인’ 동네에서 프랑스 식당을 차린 남편은 차라리 ‘정글의 허’를 더듬어 찔렀다고 해야 할까요. 아님 무식해서 용감했다 할까요.

지금도 '수업료'를 치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분야에서 잔뼈를 굳힌 ‘9단들'이 득시글거리는 살벌하고 치열한 현장을 경험없는 ‘50대 자영업자’로서 늠름하게 헤쳐나가며 새로운 생계 수단으로 다져가고 있는 자체가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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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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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220.XXX.XXX.128)
동네 입구에 테이블이 4개가 있는 파스타 집을 한 번씩 갑니다. 가격도, 맛도 좋다는 평입니다. 그 집 주인은 권리금이 없고 월 임대료가 싼 곳에 간판을 걸고 음식 맛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지금은 나름대로 여유를 갖고 영업을 잘 하고 있습니다. 이런 집은 마음만 먹으면 식자재를 좋은 것으로 하고 음식 솜씨만 내면 장사는 잘 되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큰돈은 벌수가 없을 것입니다. 일본에 갈 때면 꼭 찾는 카레 집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곳인데 3대 째 하고 있는 집입니다. 주인 이야기가 시간 여유 갖고 사는 것이 영업점을 크게 늘리는 것 보다 더 중요 하다는 말을 했습니다.(일본은 이런 작은 음식점이 참도 많습니다.) 시장이란 누가 보호해줄 수도 없고 그저 각박하고 치열한 전투 같은 것 같습니다. 행운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 을 수도 없고, 딱한 것이 자유 경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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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17: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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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60.XXX.XXX.96)
말씀하신 그런 곳은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생하기 힘든 구조라고 봅니다. 전시대의 향수이자 낭만이 어려있는 음식점들이지요. 손님과 주인 사이에 마음이 닿는, 진정한 정이 흐르는 그런 공간이었을 것 같네요. 요즘은 식당도 자본화되어 2호점, 3호점 식으로 늘려가는 추세라 손님을 마음으로 대하기는 참 힘듭니다. 좋은 재료, 규격화된 서비스는 당연 따라가지만요. 하지만 셰프들은 스스로에게 자부심이 대단하지요. 열정이 있습니다. 저희 가게에 셰프 중 하나는 부모님 모두 교수입니다. 한국인 교수 부모로서는 자식 요리사 만들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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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19: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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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60.XXX.XXX.96)
씩씩하게 일하는 님의 남편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부디 좋은 글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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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06: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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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걸 (60.XXX.XXX.96)
현대판 봉건영주와 마름과 소작인~ 벼랑에서 선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틔여주는 따뜻한 정책, 소작인도 머슴도 더불어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수 있는 정책이 이번 대통령선거를 통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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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06: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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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철 (60.XXX.XXX.96)
50대 자영업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잘 '버티고' 계시다니. 항상 옆에서 응원하시겠지요. 그런데 세상은 시드니나 서울이나 똑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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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06: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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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식 (60.XXX.XXX.96)
늘 느끼는 거지만 신 선생님 글은 손으로 빚은 인절미처럼


담백하면서도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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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14: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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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60.XXX.XXX.96)
호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 말기 병폐현상이 세계 어디나 같지 않겠습니까. 인내천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저를 대신하여 글을 쓰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속이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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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18: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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