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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이유
박상도 2012년 11월 16일 (금) 00:31:47
이 땅에서 자식을 대학에 보낸 학부모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그 동안에 겪은 우여곡절을 책으로 쓰면 열 두 권은 족히 나온다.”라는 말입니다. 그 우여곡절에 우리 사회가 멍들어 가고 있습니다.

올해 4년제 대학의 입학전형이 모두 3,100여 가지라고 합니다. 단국대가 52가지로 가장 많고 중앙대는 46개이며 건국대나 명지대 상명대도 40개가 넘습니다. 전형 이름도 각양각색입니다. 알바트로스 인재전형, 다빈치형 인재전형, 네오 르네상스전형, 참사랑 인재전형 등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학생을 어떻게 뽑겠다는 건지 감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전형마다 수능과 학생부, 면접, 논술 등의 반영비율이 모두 다릅니다. 특히 수시모집의 19%를 뽑는 입학사정관제는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경력서류까지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대학 입학의 전형은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런데 수능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뽑는 정시모집은 갈수록 줄고 수시모집으로 학생들을 더 많이 뽑고 있습니다. 문제는 수시모집은 학생들의 스펙이 중요한 평가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펙을 만드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강남 학부모 사이에선 서울대에 수시전형으로 입학하기 위해서는 AP과목을 적어도 세 개는 이수해야 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AP는 Advanced Placement의 약자로 미국에서 고등학생들이 대학 수준의 과목을 이수하면서 받는 학점을 말합니다. 정규 고등학교 교과 과정보다 어려워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이 AP과목을 이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만 인정하는 AP학점을 왜 국내 대학에서 수시모집의 평가에 적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더구나 AP과목은 영어로 진행되고 시험도 영어로 치르기 때문에 국내 일반고등학교에서는 정규수업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결국 강남의 학원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과목당 수백만 원의 수강료를 감당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진행하는 각종 캠프에 참가하는 데에도 역시 수백만 원의 참가비가 필요합니다. 모의 유엔대회에 참가하는 데에는 참가비만 20~30만 원이 듭니다. 양복도 필요합니다. 토플만 해도 시험 한번 보는데 170달러가 듭니다. 영어로 하는 디베이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전문 학원에서 기본적인 방법을 배워야 하고 팀을 구성해야 합니다. 한번 디베이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십만 원이 필요한데 상을 받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스펙에 자랑스럽게 한 줄 쓰기 위해서는 수상실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을 받을 때까지는 비싼 학원비를 감당해야 합니다. 봉사활동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남들 다 하는 양로원 봉사나 보육원 봉사는 입학 전형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외로 봉사활동을 갑니다.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강남에는 200만 원 짜리 입시컨설팅이 있다고 합니다. 업체 홈페이지는 모의고사 성적분석, 학생부 성적 분석, 동기부여, 학습계획표 설정, 학습전략 수립, 입학사정관 전형 대비 자기소개서 점검 및 방향제시 등 대입 전반을 아우르는 모든 부분을 관리 감독해 준다고 씌어있습니다. 문제는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으면 적어도 낭패를 보는 일은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입시에서 성공할 확률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대학 다닐 때 들었던 송 복 교수님의 강의가 생각납니다.
‘사회의 급변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계층 간의 이동이 현격히 줄어듭니다. 그 이유는 교육에 있습니다. 급속한 성장을 한 후 안정기에 접어든 사회에서 계층간의 이동은 교육을 통해 이루지게 되는데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돈 많은 사람들의 자녀가 더 유리한 입장이 됩니다. 우월한 교육여건이 우수한 학생을 만들고 이들이 소위 명문 학교에 들어가 고급 교육의 기회를 독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사회에 나가면 좋은 직업을 갖게 될 것이고 이렇게 계층이 재생산될 것입니다.’

사회 계층론의 대가였던 교수님은 25년 전에 이미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예측하셨던 것입니다.

이 같은 현실을 알고 있는 수험생 부모들은 등골이 휘어지거나 이미 부러졌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학원사업자가 벌어들인 돈이 12조가 넘었다고 합니다. 이 중 입시와 관련된 학원의 수입이 70퍼센트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에듀푸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스펙뿐만 아니라 선행학습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한 반의 절반 이상의 학생이 선행학습을 합니다. 학교 수업에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즐거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학생도 선생님도 서로가 맥이 빠지는 노릇입니다. 선행학습 역시 돈이 필요합니다.

1990년대 중반에 ‘시찌다 교육’이라는 유아 교육 프로그램을 방송에서 고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고발 내용은 ‘이제 갓 두 돌 정도 지난 아이들에게 단어를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욕심일 뿐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말도 안 되게 비싼 학원비 역시 질타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 달에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영어 유치원이 넘쳐납니다. 그 당시 제가 했던 프로그램은 시대의 흐름을 잘못 짚은 것이었나 봅니다. 마음이 씁쓸해 집니다.

무한 경쟁시대에 자기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이 과열 교육을 부추깁니다. ‘같이 잘 사는 사회’라는 구호는 허울만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같이 잘 살기’전에 ‘너부터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식들을 남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게 이것 저것 마구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욕심이 과해지면 옳지 못한 행동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내신 역시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수행평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학교마다 수행평가의 비율이 다릅니다. 어떤 학교는 수행평가의 비중이 50%나 된다고 합니다. 수행평가 점수는 선생님의 재량입니다. 학교마다 학부모 운영위원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부모가 운영위원이 되는 경우는 못 보았습니다. 아홉 명의 선생님이 양심적으로 평가를 해도 한 명의 선생님이 공정하게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학생이 받는 불이익은 상당히 커집니다. 왜냐하면 수시 전형의 경우 최상위 학생들끼리의 경쟁이기 때문에 단 몇 점의 점수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대학교 교수 자리가 몇 억이라는 얘기가 들립니다. 영화 ‘도가니’를 보면 장애인 학교 교사 자리에도 ‘다섯 장’이 필요한 것으로 나옵니다. 매관매직으로 나라가 썩어가던 시기에 탐관오리들이 돈 주고 산 벼슬자리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해, 본전에 고리 이자까지 쳐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먹었듯이 비슷한 일이 교육계에도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겁니다. 과거 선생님의 차별과 멸시를 피하기 위한 소극적 촌지가 아닌 스펙과 성적을 위한 적극적 촌지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의 직원 자녀들에게 정규직 채용 시 가산점을 준 사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평균 연봉 9600만원의 귀족 노조다운 자식 사랑이었습니다. 사람은 쥐꼬리만한 특권이라도 대물림 하려는 욕심이 있나 봅니다. 그러니 더 높은 자리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내 돈 내가 써가면서 내 자식 스펙 만들어주는데 당신이 상관할 일은 아니잖아?’라고 말한다면 살짝 할 말이 없어지는 듯 합니다만 적어도 우리는 자랄 때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 압니다.

학생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미래의 기둥입니다. 우리가 늙어서 힘이 없어지면 그들이 열심히 일해서 우릴 먹여 살려야 합니다. 우리 세대가 떳떳하게 그들에게 의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앞선 세대를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존경 받을 자격이 있을까요? 지금의 입시제도는 불공정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우리의 자녀인 학생들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바꾸지 않고 있는 어른들을 존경해 달라고 말할 염치가 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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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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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 (14.XXX.XXX.156)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유한 환경 속에서 넉넉하게 돈으로 공부했다고 끝까지 용 노릇은 못하더군요 .
대학 수능제도가 수 없이 바뀌어 문제가 있어도 역시 어려운 환경속을 묵묵히 이겨나가는 젊은이가 인생 말로엔 분명 용의 머리가 된 자격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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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4 20:15:40
0 0
안덕주 (112.XXX.XXX.74)
사교육의 자세한 내막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선행교육, 사교육이 나라의 국력신장에 도움 됨이 없는 내부마찰 같은 손실일진대 무조건 못하게 법제화 하면 안되겠는지 싶습니다. 선행교육, 사교육이 있어서 더 좋은 학생이 대학에 가고, 학생의 자질이 더 우수해지는 것이 아니며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매년 적정 숫자의 대학 입학생이 있으면 그 뿐이기 때문입니다. 법제화조치 하고 대학숫자를 우리나라의 수요에 맞게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들은 이야기입니다마는 독일에서 한 초등학교의 한국인 부모가 아이들을 예습을 시켰다고 주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선생님은 담임 반의 30 여명 학생에 대하여 수년간 관찰을 해서 상급학교 진학지도를 해야 하는데 학생이 예습을 해와서 다른 학생보다 이해력이 빠른 것처럼 알게 한다면 관찰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졸업시에 이 학생은 실엽계로, 이 학생은 대학으로 추천을 하면 거의 모든 부모가 그 선생님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대학 진학율은 30% 정도라고 합니다. 직업중에 학원 선생님 만큼 비생산적인 직업이 없다고 봅니다. 거기서는 새로운 지식이 창출 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원선생님들도 내가 뭐 하는 사람인가 반성하고 다른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직업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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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4 16:56:28
0 0
utopco (117.XXX.XXX.181)
이 분을 국회로 보내고 이 뜻이 촛불처럼 옆으로 번져 국가의 뼈대를 바꾸는 일을 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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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7 1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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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60.XXX.XXX.96)
가슴이 답답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글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사고 팔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라고라?, 개가 물어간지 벌써 오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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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6 08:38:49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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