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엘리트(2)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김홍묵 촌철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2)

김홍묵

2012년 11월 19일 (월) 00:32:48

# 한겨울의 대정전(black out).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암흑세계가 겨울 문턱을 엄습하고 있습니다. 원전부품 공급 업체 8곳이 지난 10년 동안 해외 검증기관의 품질보증서를 위조해 237개 품목 7,682개 제품(8억2,000만 원 상당)을 원자력발전소에 공급한 사실이 드러난 때문입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이들 짝퉁 부품이 집중 사용된 영광원전 5,6호기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9월 관련 업계의 제보를 받고 자체조사를 벌여 사실을 확인하고, 문제가 된 부품이 일부 설치된 영광 3,4호기와 울진 3호기에 대해서도 운전을 하면서 부품 교체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2003년 이후 부품 고장 등으로 원전 발전이 정지된 것은 평균 한 해 5~6건, 올 들어 원전 가동이 중단된 경우도 9차례에 이릅니다. 그런데도 장관이나 사장의 거취는 요지부동입니다. 북한의 핵 위협보다 더 큰 재앙을 부를 수도 있는데도….

# 대구 동구청은 1962년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한 도동(道洞) 측백나무 숲의 나무 세 그루를 지난 9월 잘라버렸습니다. 숲 뒤쪽 향산(香山) 중턱에 자리한 구로정(九老亭)이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숲은 100여 미터 높이의 바위산에 뿌리를 내린 측백나무 1,000여 그루로, 산 아래쪽의 불로천과 어우러져 사철 푸르른 의연한 모습을 수백 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 초기 이곳 출신의 대학자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대구 10경 중의 하나로 꼽기도 했습니다.

측백나무는 중국에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대구 이외에 충북 단양(62호)과 경북 영양(114호) 안동(252호)에 측백나무 숲 천연기념물이 있습니다. 옛부터 신선이 되는 나무로 알려져 사당 묘지 절간 등에 심어 온 귀한 나무로, 한방에서는 소염 해독이나 고혈압 불면증 신경쇠약 치료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의 허가도 없이 나무를 자른 동구청 관계자는 ‘가지치기’라고 변명했지만, 행여 약재로 쓰려고 만용을 부린 건 아니겠지요.

# 1년 내내 아기 울음소리를 못 듣는 산골 마을이 허다합니다. 인구가 줄어 애태우고 있는 경남 하동, 전북 진안, 충북 괴산과 강원 양구 등 4개 군 공무원들은 위장전입 권장을 일삼아 해왔다고 합니다. 인구가 한 명 늘면 중앙정부의 교부금이 100만 원 정도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줄면 선거구가 통폐합 되고 자치단체의 행정조직이 축소되는 등 불이익이 생겨, 이를 막으려는 안간힘인 듯합니다.

4개 군이 위장전입시킨 사람 수는 4,000여 명. 대부분이 객지에 사는 향우회 회원이거나 공무원의 친인척들이라고 합니다. 이들 위장전입자 중 75%는 전입 3~5개월 뒤 원래 주소지로 다시 옮겼으며, 진안군의 경우 지난해 늘어난 431명 중 306명(71%)은 실제 거주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병역기피나 위장전입의 경력이 있어야만 고위 공직에 오를 수 있는 세상이니….

# 사장 나이 만 1세, 월 소득 190만 원, 건강보험료 월 5만1,000원. 올 7월 기준 건보료를 내는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 사업장 대표는 모두 156명으로 대부분 부모나 친인척과 공동대표로 등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1세와 2세가 각 1명, 3세 2몀, 4세 3명이며 초등학교 입학 전인 6세 이하도 14명(9%)이나 됐습니다. 복수 대표 등록은 누진세율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지만 불법은 아니랍니다.

또 국내 상위 1%에 해당하는 부자가 지난해 자녀 등에게 재산을 증여한 액수가 13조 원에 이르렀습니다. 전체 증여 재산의 41.1%에 이릅니다. 상위 1%에 드는 1,274명이 물려받은 재산은 13조4,454억 원, 세금은 1조5,712억 원으로, 한 사람당 평균 105억 원의 재산을 받아 12억3,300만 원의 증여세를 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1대 99의 불균형은 ‘이미 일어난 미래’라고 치부해도 될지….

# 1억 원을 주면 에콰도르 남자와 위장결혼해 시민권도 따낼 수 있는 나라. 인천지검은 지난 6일 중남미와 아프리카 유럽 지역 8개 나라의 위조 여권이나 시민권을 받아 자녀를 국내 외국인학교에 부정 입학시킨 학부모 47명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대부분 재벌가의 며느리거나 기업의 대표 혹은 임원, 의사 변호사인 이들은 브로커에게 4,000만 ~1억5,000만 원을 주고 위조 여권을 만들거나, 남편과 거짓 이혼한 뒤 외국인 남자와 위장결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국립대 학장, 자치단체장, 청와대 비서관, 식약청 원장, 한국은행 부총재보, 기상청 조정관, 기획재정부 서기관, 헌법재판소 과장, 행정안전부 기획관, 외교통상부 국장···. 외국 영주권을 얻어 국적을 포기하면서 자녀의 군복무를 면제받게 한 4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들의 직책입니다. 더러는 본인이 일시적으로 영주권을 받아 병역을 면제받은 뒤 국적을 회복해 공직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살 수는 있어도 사람을 만들 수는 없다는데….

# 서울의 24개 구청이 내년도 보육 예산 편성을 전면 거부했습니다. 정부가 늘린 보육 예산 부담도 버거운데,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공약한 무상 보육 확대로 재정이 파탄 날 지경이라며 반기를 든 것입니다. 무상 보육은 자치단체의 복지사업 중 부담이 가장 큰 데다, 지방 보육 예산이 8년 사이에 8배나 늘어났습니다. 지난 13일의 이 선언에는 민주통합당 구청장19명, 새누리당 구청장 5명이 참여했습니다. 강남구만 빠졌습니다.

이런 지경인데도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대선 후보들은 화려한 복지 공약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선 무상 보육에만 연 7조~8조 원이 듭니다. 이밖에 기초노령연금 확대(3조~4조 원), 반값등록금(2조~5조 원), 고교 무상교육(2조원), 의료비 상한제(8조 원 이상), 12세 미만 양육수당(6조 5,000억 원) 등 재원 마련 대책도 없는 당근을 뿌리고 있습니다. 부자는 절세, 탈세, 해외 자금 도피에 줄달음하는 판에 결국 없는 사람의 고혈을 빠는 정치쇄신을 하자는 건지….

# 기업 비리 수사를 맡은 부장검사가 거액의 돈을 받았다가 들통이 났습니다. 서울고검의 김광준 검사(부장검사급)는 유진그룹 회장의 동생이자 계열사 대표로부터 6억 원, 3조 원대 다단계 사기를 저지른 뒤 중국으로 도주한 조희팔의 측근에게서 2억 4,000만 원과 중소기업 등에서 모두 1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차명계좌로 받아 관리하다 덜미를 잡혔습니다. 이 사건은 먼저 사건을 인지한 경찰이 수사하자 검찰이 특임검사를 내세워 사건을 가로채는 바람에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과연 법집행을 의사(검찰)가 간호사(경찰)보다 공정하게 할지….

# 사회정의 구현의 최고봉을 자임하는 판사도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지난 달 22일 서울동부지법 유모 부장판사(45)는 사기 및 사문서 위조 사건의 증인 서모 씨(66,여)에 대한 심문 과정에서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망언을 했습니다. 유 판사는 증인이 모호한 대답을 반복하고 진술 내용을 자주 뒤집기도 해 혼잣말을 내뱉었다는데 재판장석의 마이크가 켜져 있어 서씨도 이 말을 들은 것입니다. 대법원은 유 판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 징계하기로 했습니다.

“입은 터져서 아직도 계속 말이 나와요?” “당신이 알지 내가 알아?” “당신이 사기꾼이야” “IQ가 거의 0 수준이군. 초등학교는 나온 건가?” “이혼했는데 무슨 말을 해. 그냥 가만히 있어” “20년간 맞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요.” 지난해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수집한 판사의 막말 사례들입니다. 그래서 대법원의 판결마저도 “인정머리 없는 판결” “측은한 억류”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대법에서 징역 1년형 확정 받은 뒤)라는 염치없는 반발이 나오지나 않았는지….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