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타인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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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타인 원정대

김창식

2012년 12월 03일 (월) 00:34:42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 시리즈에 나오는 호빗족 원정대의 규모와 환상성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어렸을 적 작은 원정대를 꾸려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클레멘타인 원정대'. 넓고 넓은 바닷가 오막살이에 산다는 이국 소녀 클레멘타인을 찾아보기로 의기투합한 동아리였죠. 다음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재구성해본 내용입니다.

- '클레멘타인 원정대'는 모두 다섯이었다. 큰 도시에서 전학 온 아이와 고아인 철웅‧철민이 형제, 우리 모두가 좋아했던 여자아이, 그리고 나. 원래는 '전과지도서'에서 본 주라기 공룡인 디노사우르스의 알을 찾기로 한 여행이었다. 우리들끼리 이런 말들이 오갔다. "공룡 알이 정말 있을까?" "있다고 해도 문제다. 솔찮히 클 테니까." "알은 알이다. 제까짓 게 커 봤자지." "언제 적 알이냐? 공룡 발자국이라면 또 몰라도." 내가 끼어들었다. 실은 전부터 품어왔던 생각을 내비친 것이다. "어떻든 가보자. 오가는 길에 클레멘타인도 찾아보고."

길을 떠나고부터 왠지 우리는 공룡 알이나 발자국보다 이국 소녀 클레멘타인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금발머리 어린 소녀를 찾으려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일이 결국 그렇게 된 셈이었다. 누군가 노래를 선창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그러자 우리 모두가 합창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우리 일행의 일차 목적지는 '향림사(香林寺)' 너머였다. 절 뒤쪽에 넓은 솔밭이 펼쳐져 있는데 솔밭이 끝나는 지점에 바다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향림사까지는 비교적 쉬운 일정이었다. 반나절도 못돼 도착했다. 전에 소풍 때 와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솔밭을 지나자 바다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큰 산이 가로막은 것이다. 어린 나이에는 무엇이든 크고 높게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산자락에 잠깐 멈추어 섰지만 그렇다고 그쯤에서 그만둘 순 없었다. 누군가 어른이 된 것처럼 말했다. "산이 있으면 바다도 있기 마련이다!"

일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얼추 점심때가 지났는지 배가 고파왔다. 어른들께 알리지 않고 떠난 길이었으니 변변한 먹을거리가 있을 턱이 없었다. 우리는 비탈진 공지에 모여 앉았다. 각자 요령껏 준비해온 별사탕, '오꼬시', 건빵, 풀빵 같은 간식을 나누어 먹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옻나무에 스쳤는지 몸을 긁적이는 아이도 있었고, 누군가는 벌에 쏘였는지 눈두덩이 부어올랐다. 그 판국에 일행 중 유일한 여자아이가 물이 마시고 싶다고 울먹였다.

우리 모두 그 여자아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환심을 사고 싶긴 했지만 서로를 쳐다볼 뿐 여자아이와 얼굴을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리더 격인 도시에서 전학 온 아이는 먼 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나는 딴전을 피며 새삼스럽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때 평소 주눅들어하던 고아 형제 중 맏이인 철웅이가 나섰다. "내가 물을 떠오겠다." 아우인 철민이는 자기보다 체구가 작은 형을 근심스레 쳐다보았다. 밤송이머리 모양의 철웅이는 싱긋 웃어 보이더니 수통을 찰랑거리며 떠나갔다.

금방 온다던 철웅이는 한참이 됐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우리는 슬슬 걱정이 들었다. 둘씩 짝을 지어 흩어져 찾아보되 소리쳐 부르면 돌아오기로 했다. 배고픔도 목마름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렇다 해도 건성으로 주변만 빙빙 돌았을 것이다. 사실 멀리 갈 수도 없었다. 길을 잃고 헤매다 잘못되면 안 되니까. 산허리에 반쯤 그늘이 덮일 무렵 우리는 산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클레멘타인이고 공룡 알이고 간에 오직 철웅이의 안위에 대한 근심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자아이가 걱정스레 말했다. "공룡 알이니 클레멘타인이니 찾아 나선 것이 잘못이었다." 내가 면박을 주었다. "니는 뭐 잘났다고. 이제 와서 그런 거 따지게 됐냐?" 누군가 걱정스레 덧붙였다. "그런데 철웅이는 어떻게 됐을까?" 다른 누군가 말을 이어받았다. "짐승이 물어 갔을 거야." 또 다른 누군가 참견했다. 도시 아이였던 것 같다. "재수 없는 소리 말아라. 별로 깊은 산도 아닌데. 따지고 보면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잖아." 그러면서도 그도 걱정은 어쩔 수 없는 듯 덧붙였다. "어떻든 돌아가서 어른들에게 이야기하자." 철웅이 동생 철민이는 시종 말이 없었다.

걱정거리를 가득 안고 마을이 보이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웠다. 마을 어귀로부터 한 떼의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어른들 손에는 몽둥이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갈퀴며 쇠스랑을 든 사람도 있었다. 무리로부터 한 아이가 뛰쳐나왔다. 허리춤에 수통이 달랑거렸다. 철웅이! 우리 모두는 철웅이와 반갑게 손을 맞잡으며 공연히 얼굴이 붉어졌다. 횃불에 비친 철웅이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그가 자랑스레 말했다. "나는 바다를 보았다!" 물을 찾아 헤매다 산굽이를 돌아 나오니 정말 바다가 있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클레멘타인처럼 생긴 금발머리 아이를 먼발치서 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

커 가면서 그때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클레멘타인을 찾으러 떠났다가 불발로 끝나고 오히려 철웅이를 잃을 뻔한 모험여행에 대해서죠. 당시에도 미심쩍긴 했지만, 철웅이가 바다와 이국 소녀를 보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것이에요. 흔히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랑 심리로 그런 말을 했을 법합니다. 그렇더라도 철웅이와 나를 포함한 나머지 다른 아이들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망설였고 철웅이는 떠났으며, 우리는 주위를 맴돌았고 그는 앞으로 나아갔어요. 결국 돌아온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김윤옥 (114.XXX.XXX.159)

아무래도 김창식님은 꿈을 많이 꾸는 것 같습니다.
꿈에서 높은데서 떨어지면 키가 쑥 자란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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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8 20: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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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XXX.XXX.33)

하긴 요새도 자주 꿈을 꿉니다만...근데 악몽이어서요.
김윤옥 선생님은 어떠신지요? 궁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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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9 19:5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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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114.XXX.XXX.159)

저도 나이를 잊은 채 가끔 높은데서 떨어지는 꿈도 꾸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유년의 꿈 여전히 꿀 수 있는 이 감성(?) 이 고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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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18: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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