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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간 (5)
장주익 2012년 12월 04일 (화) 01:48:33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주재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마지막 헬기가 떠나면서 베트남전은 끝났습니다. 1960년 시작하여 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4명의 대통령 재임중에 미군은 55만3천여 명이 파병되어 58,200여 명이 전사했다고합니다.

부상한 퇴역군인(Jun Scruggs)이 중심이 되어 베트남참전기념비를 세우기로 하고 1979년 4월, 비 영리법인인 Vietnam Veterans Memorial Fund (VVMF)를 설립하고는 모금운동을 벌여 840만 달러(약90억원)를 모금하게 됩니다.

미 의회로부터 워싱턴내 링컨기념관 옆 대지 약 5에이커(12,000평방미터)의 사용승인을 얻은 후 VVMF는 1980년 12월, 5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베트남참전기념비의 설계안을 공모합니다.
1981년 3월까지 1,441개의 설계안이 답지하였고 심사위원들은 최종심사에서 설계안 번호 “1026번” 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됩니다.

   
당선된 설계안은 단순하다면 단순합니다. 하늘에서 보면 양옆으로 넓게 벌어진 역 V자 형태의 두 개의 검은 대리석 벽뿐입니다. 2개의 벽이 125도로 만나며 하나의 길이가 247피트 (약75m) 인 벽은 옹벽 형태로서 양끝이 지면으로부터 차차 낮아지다가 중심 부분이 땅 밑으로
3미터 정도 깊이가 되면 다시 점차 지면으로 올라오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긴 옹벽 2개에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58,200여 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음각으로 새겨지는 것입니다. 반사되는 검은 대리석에 새겨진 이름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간 순서대로입니다.

설계안 번호 “1026번” 인 당선작의 주인공은 당시 21세로 예일대학 건축학부에 재학 중인 중국계 이민 가정의 여학생인 Maya Lin 으로 밝혀졌습니다.

1981년 당시, 당선작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킵니다.
여타 기념비들의 경우에는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세워졌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베트남전이 끝난 지 겨우 5년 밖에 지나지 않다보니 패전의 상처들이 채 아물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15년이란 긴 시간동안 2,000억 달러를 쏟아 붓고도 패배한 전쟁, 명분도 없는 전쟁이요, 초강대국 미국의 영광과 권위는 실추된 채 크고 작은 많은 상처들이 아직 봉합, 치유되지 못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더더구나 설계안 당선자가 미국 백인 남성이 아니란 것도 작용하다 보니 기념비가 “미국의 자존심을 나타내지도 못했고, 영웅적이지도 못하다”, “묘비같다”, “패배를 상징한다”, 에서부터 시작하여 무릇 기념비란 것이 남근을 상징하듯 우뚝 솟아야 하거늘 되레 땅밑으로 기어 내려 간다는 것은 너무 “여성적이고”, “패배주의적” 이라는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시각의 반대론들이 이어졌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왜? 수치와 슬픔의 상징인 검정대리석이냐? 흰 대리석으로 바꾸라! 는 주장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미국내 강력한 압력단체인 '재향군인회'의 경우에는 “당선을 취소하라” 고 요구하기 까지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은 미 의회의 중재로 전통적 형식의 기념비를 따로 또 건립한다는 타협안으로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Maya Lin은 의회에까지 불려나가 “기념비에 새겨질 이름들이 기념물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과 그 이름들은 서로 교감할 것입니다. 디자인에 더 이상의 장식은 필요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결국은 검은 대리석 옹벽에서 120피트 (약36미터) 떨어진 곳에 백인, 흑인, 히스패닉계 3인의 군인동상을 세우게 되었고, 후일 여군 동상이 추가됩니다.

1982년 3월 11일 최종적인 전체 디자인이 확정되고 3월 26일 공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약 8개월 후, 1982년 11월 13일 미국 재향군인의 날, 수천 명의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 제복차림으로 운집한 가운데 Vietnam Veterans Memorial은 제막됩니다.

방문객들은 반사되는 인도산 검은 대리석 앞에 섭니다.
서게 되는 순간, 전사자 명단, 또는 사랑했던 이들의 이름과 함께 자신들의 모습이 함께 반사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름을 찾아..., 손으로 어루만지고..., 입을 맞추기도 하고..., 이름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을 문질러 탁본하듯이 이름을 간직하거나..., 이름 옆에 꽃을...., 또는 주고 싶은 물건들을 가져다 놓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공 예술품 중의 하나로서 기념물의 한쪽 끝은 링컨기념관을 향하고 다른 한쪽 끝은 워싱턴 기념탑을 향합니다.

Vietnam Veterans Memorial 이후 유명해진 Maya Lin은 건축가, 조각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세월이 흘러 현재 50대 입니다.
“만약 설계안이 일련번호가 아니고 이름이 표기 되었더라면 결코 당선돼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그녀는 당시를 회고합니다.

설계안 당선 후 큰 홍역을 치루었으나 기념물이 제막된 이후 거셌던 반대론자들로부터 까지 존경과 용서와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National Park Services)이 관리유지를 맡고 있으며 현재 하루 평균 1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찾는다고 합니다.
기대해 봅니다.

장주익
제물포고, 고려대를 나와 직장 (애경,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금강개발, 뉴코아백화점 등)에서 근무. 정년퇴임 후 젊어서부터 관심 있던 건축분야에서 건축물의 이해를 돕는 해설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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