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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이름의 무기
김홍묵 2007년 07월 06일 (금) 01:11:29
한 달 전 대전 국립묘지를 다녀왔습니다. 육군 소위로 1951년 3월 경북 봉화 전투에서 전사하신 삼촌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56년 전 그 해 봄, 한 줌의 재와 함께 전사 통지를 하러 온 선임하사 앞에서 할머니는 넋이 나간 듯 마당에서 뒹구시고 온 가족이 통곡하던 모습이 필자가 네 살배기 때부터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6.25 참극의 한 장면입니다.

정전협정 다음해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농수로에 뒹구는 해골이며 밭머리에 흩어진 군마(軍馬) 뼈 잔해가 무서워 몇 명이 어울려서 그 곁을 잰 걸음으로 지나야 했습니다. 그나마 동심을 달콤하게 적셔준 추억으로는 구호품 박스 속의 초콜릿 맛과 학교에서 배급해준 분유, 옥수수가루의 고소한 맛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파괴된 탱크에서 떼 넨 쇠바퀴 굴렁쇠놀이 등이 어릴 적 기억의 편린(片鱗)들입니다.

성장하면서는 검정물들인 미제 군복을 걸치고, 옆구리 터진 워커를 끌고 다니면서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습니다. 1천만 이산가족의 회한과 ‘부역자 가족’ ‘빨갱이 후손’ 들의 아픔을 엿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의 살 길을 찾기 위해서는 ‘약간의 지식과 투철한 반공정신’을 앞세워야 했습니다. 편향된 역사 기술(記述)과 교육 덕분입니다.

실로 6.25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가장 처참한 비극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발발 이후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 유엔군과 한국군 18만, 북한군 52만, 중공군 90만 명과 민간인을 포함해 245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상자를 합하면 약 450만 명이 희생당했 습니다. 인성도 산하도 갈가리 찢겨진 참화였습니다.

공식적으로 총성이 멎은 지 54년, 그 6.25는 우리의 뇌리에서 엄청 멀어지고 있습니다. 월간중앙이 최근 서울시내 7개 초등학교 3~6 학년생 3,66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세 명중 한 명(33.5%)이 ‘학교 수업시간에 6.25전쟁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고 했으며, 상당수(37.8%) 가 6.25를 ‘조선 시대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답한 것이 단적인 예 입니다.

불과 반세기만에 6.25가 제3세대에게는 뒤안길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을 반증하듯 6.25의 역사적 자리매김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6.25동란 또는 사변이 6.25전쟁으로 바뀌었다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전쟁으로 객관화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호적에 올라야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듯이 역사가에 의해 이름 붙여진 과거만이 역사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번 이름 붙여진 과거가 절대적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항상 강자의 입장에서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볼테르는 “모든 역사는 거짓말이다”고 단언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우리사회는 역사를 앞세운 논쟁으로 야단법석입니다. 참여정부 들어 과거사를 들추며 대립각을 세우던 여야는 대선을 앞두고 남의 과거를 들춰내 비방하고 폄하하는 일에 매진하는 듯합니다. ‘독재자의 딸’ ‘빨갱이의 사위’ 등 비 인과적 사실까지도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비니가 “역사는 세론에 대한 권력 투쟁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이 세론에 따를 때는 강하고, 그것에 거역할 때는 붕괴한다”는 분석이 그대로 적용되는 듯합니다.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을 반추하고 재해석하는 집단에서는 적과 동지가 갈라지고 치열한 공방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인식의 차이는 무기로 돌변하고 맙니다.
괴테의 지적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과거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삼 6.25가 상기되는 것은 “모든 권력이 총구로부터 나온다” 는 모택동의 주장 이상으로 이념의 대립 갈등을 뛰어넘어 역사가 또 다른 무기로 둔갑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입니다. “피해는 모래위에 써놓고, 은혜는 대리석에 새겨 넣어라”는 격언 따위를 읊어대는 것은 헛발질에 지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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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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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ddulnal (168.XXX.XXX.66)
역사란 "我와 非我의 투쟁"이라고 하지 않앗나요? 또한 역사의 발전도 모순과 투쟁관계가 핵심이라고 하엿지요.당연히 승자가 모든 것을 갖게 되겟지요,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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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2 08: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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