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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을 어찌 하나?
임철순 2012년 12월 12일 (수) 01:53:44
계간 <문학청춘> 겨울호에 재미있는 시가 하나 실렸습니다. 허형만(67) 시인의 작품 ‘발등을 찍히다’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책장에서 책을 찾는데
바깥 줄에 힘겹게 걸터앉아 있던 책들이
순간, 우르르 타다닥,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더니
저마다 내 발등을 찍고 엎어진다
이사를 자주 다녀본 사람은 잘 알다시피
무겁다 무겁다 해도 책같이 무거운 짐 없거니
책에 찍힌 발등 또한 이리 아플 줄은 미처 몰랐다
사람들은 후회할 때
입버릇처럼 발등을 찍고 싶다고 말하지
나도 살면서 수십 번 발등을 찍고 싶었지
아니, 배신과 배반으로 무너져 내린 가슴앓이 끝에
이미 몇 차례 발등을 찍었었지
그럴 때마다 성호를 긋고, 고요에 들어 눈물을 닦았었지
그런데 오늘 편안한 자리에 모시지 못했다고
무슨 비밀결사대처럼 한꺼번에
우르르 타다닥, 무너져 내리며 찍어대는 발등이
이리 눈물나게 아릴 줄 미처 몰랐다.

누구나 경험했음 직한 일입니다. 제대로 꽂을 공간이 없어 대충 서가에 쌓아둔 책이 와르르 무너질 때는 쓴웃음과 함께 낭패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바람에 어디 두었는지 잊었던 책을 찾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무너지는 책들은 나를 이렇게 천덕꾸러기로 다뤄도 되느냐고 일제히 항의하는 것 같습니다.

책이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어느새 나도 서가에 두 겹으로 꽂고도 책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방바닥에 쌓아 두었던 책은 천으로 된 상자 여러 개에 집어넣었지만, 원래 정밀하게 분류를 하지 않았던 터라 지금은 무슨 책이 어느 상자에 들어 있는지 모르게 돼버렸습니다. 비좁은 서가에 알맞게 책을 좀 솎아내면 될 텐데 아직은 어떤 책이든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버리기는커녕 아파트 쓰레기장에 내다 버린 남의 책을 주워 오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읽을 거라는, 아주 기특하지만 허망한 생각을 하면서.

책 때문에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정년을 맞은 한 대학교수는 연구실의 책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한 끝에 문 밖에 내놓아 필요한 학생들이 가져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좀 대중적이고 최근에 나온 책만 가져갈 뿐 세로글씨로 된 책, 오래된 책은 그냥 남아 할 수 없이 쓰레기로 내다버렸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책을 뒤지고 흩트려 놓는 바람에 신경이 쓰여 서둘러 처분하게 됐다고 합니다. 전직 고위 관료 한 분은 이사를 하면서 책을 기증하기로 하고 구청에 전화를 했는데, 구청 직원이 귀찮다는 듯 “가지러 갈 사람이 없으니 책을 실어오라”고 하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합니다.

헌 책을 받는 기관이나 단체가 더러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2003년 이후에 나온 책만 달라는 식으로 최신 서적만 골라서 받으려 하거나 세로로 조판된 책은 사양하는 곳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향의 초등학교에 책을 기증한 뒤에 찾아갔다가 아무도 읽지 않고 복도에 쌓아 둔 것을 보고 실망했다 합니다. 나도 어느 학교에 간간이 책을 준 적이 있는데, 도서실이 비좁다고 사서가 매년 헌 책을 버리는 것을 알고부터 책 주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책이 점점 천덕꾸러기가 돼가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책을 물려주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돈이나 부동산을 주는 것은 환영하지만 책 상속은 싫어하는 세상입니다. 지하철에서는 신문 읽는 사람이 드물고 책 읽는 사람은 더욱 보기 힘듭니다. 저마다 휴대폰으로 드라마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애니팡 등 각종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주 진지한 얼굴로 고스톱을 치는 아가씨도 보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대산문화재단이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로 개최한 ‘장서표(藏書票) 전시회’는 아주 의미 있고 흥미로운 기획입니다. 5일부터 12일까지 8일간 광화문 교보빌딩 1층 로비에서 열린 전시에는 1993년부터 20년 동안 대산문학상을 받은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의 장서표 71점이 출품됐습니다. 판화가 남궁 산 씨가 문학인들의 개성을 잘 포착해 만든 작품입니다.

   
장서표란 책의 소유자를 밝히는 표지인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장서인(藏書印)을 사용한 것과 대조적으로 서양에서는 별도의 종이에 판화를 찍은 뒤 책에 붙였다고 합니다. 장서표로 유명한 화가로는 알브레히트 뒤러, 루카스 크라나흐, 앙리 마티스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영국 대영박물관에는 20만 점의 장서표가 수장돼 있다고 합니다.

5일 열린 개막식 행사에서 문학평론가 김병익 씨는 축사를 통해 ‘훈훈하고 정다운 작은 기념품’을 만들어준 대산문화재단에 감사하면서 내실 있고 멋진 문화전통으로 장서표운동이 널리 보급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소설가 황석영 씨도 늘 서재가 안정되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회고한 뒤, 책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환기시키는 장서표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렇게 장서표를 찍은 책은 더욱 버리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도서관이나 각종 단체에 적절하게 기증을 하면 그 책을 읽는 독자가 원 소유주의 마음까지 읽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명인사의 책을 간직하게 된 사람은 그 책을 더욱 소중하게 아낄 것입니다. 장서표 운동도 활발해지고 책 기증을 하는 일도 아울러 원활해져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오롯이 전승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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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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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121.XXX.XXX.16)
책 정리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70대 주부입니다. 선생님 글은 매번 감동 깊게 읽고 있습니다. 남편이 특히 책을좋아하였고, 나이 들고부터는 도서관에 가서 대출해서 읽었지요. 남편 천국가신지 4년 이 가까와 집니다. 작년에 큰 딸 집에 와서 있는데 집 정리를 할려고 해도 책 때문에 여태 미루고 있습니다. 월간지 하나라도 아깝고 애착이 가서 모아 두는데 어떻게 책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언젠가는 정리 해야되겠지요? 내가 떠나기 전에 정리 해야된다는 생각에 두 눈 질끈 감고 1주일 전에 집 매매하라고 시동생에게 부탁 했습니다. 만약 집이 매매된다면 비워 줄 때 쯤에 책을 이고 있을 수 없으니 마음 고생을 하더라도 남에게 주든지 고물상에 줄 예정입니다. 쓰레기 장에서라도 책을주워 온다는 말씀이 바로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감사한 마음에 두서없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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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06: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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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121.XXX.XXX.16)
우즈벡에서 간신히 인터넷 개통하고 처음 글 씁니다. 의미심장하네요. 글이 늘 따뜻해서 좋습니다.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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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06: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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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114.XXX.XXX.159)
장서표란 것이 있다는 것,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옛 여인들이 아끼는 소지품에 수를 놓듯 그림을 그려 표지삼아 간직한다면 그 안의 내용과 더블어 오래(대를 물려가며) 간직하고 싶겠습니다.

장서표를 만들어 간직 할만한 좋은 작품을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으로선 좋은 시집 한 권 받은 행운에 저자의 싸인 받고싶은 욕심 정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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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2 18: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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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장서표를 찍으면 책을 더 버리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런 거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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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09: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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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41)
책이 짐 보따리로 여겨져 읽고서 독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때그때 줌니다.책 속의 책벌레 군단이 있어 천식및 알레르기를 일으켜서요.
서재를 둘 형편이 못되어 그렇기도 하고요.
책버러지의 보이지도 않게 움직임을 보고는 책에 집착하는 습관을 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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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2 14: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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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그건 잘 몰랐네요. 책버러지인 사람들은 정말 큰일 났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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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09: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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