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나라 ‘산부인과’를 이토록 괴멸시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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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2013년 01월 09일 (수) 01:02:00

얼마 전 라디오를 통해 한 직장인의 간절한 사연을 들었습니다. 청주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그는 임신한 아내가 걱정이 되어 매일 불안한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만삭인 아내를 볼 때마다, 출산일이 가까워질수록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아내 걱정에 안절부절못한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진통이 와서 청주에 있는 산부인과 병원까지 가려면 적어도 50분의 시간이 걸리고, 만일 자신이 직장에 있는데 아내에게 진통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몹시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이 젊은 부부가 사는 거주지에는 임신부가 정기검진을 받을 만한 산부인과 의원조차 없다는 실로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며 이 같은 절박한 상황에까지 이른 국내 의료 현실에 의료계의 한 사람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국내 산부인과계가 오늘날 ‘괴멸 현상’에 이르기까지 줄곧 ‘모르쇠의 입장’만 고수해온 보건 정책 당국에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산부인과계 괴멸현상은 국내 의료계가 처한 수많은 현실 문제 중 빙산의 일각만을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매년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젊은 의사들이 전문의 과정으로 일반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같은 큰 수술을 해야 하는 전공 분야에는 지망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시술 규모가 작은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안과나 비(非)외과 계열의 재활의학과, 피부과 등에 몰리는 현상을 두고 “요즘 젊은 세대는 힘든 전공과는 피하는 나약한 젊은 세대” 라고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젊은 전문의 지망생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 10년간 전국에서 산부인과 의원 네 곳 중 한 곳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2003년 1941의원, 2012년 1468의원, 심평원 자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왜 산부인과가 괴멸했고, 누가 괴멸시켰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료수가의 상승률은 매해 평균 2.4%이지만, 흔히 적용되는 항목은 1.5%에도 못 미치고, 드물게 적용되는 항목에는 4% 넘게 책정해 평균2.4%를 행정 당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해왔다고 의료계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원가의 합리적인 경영 체감온도에는 절대적으로 못 미쳐 속으로 곪아왔다는 뜻입니다. 의료 현장의 왜곡 현상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병원의 분만 의료수가에 비해 동물병원의 애완견 분만비가 훨씬 높은 현상을 두고 의사들이 의료수가의 문제점을 얼마나 오랜 기간 누누이 지적해왔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이처럼 살벌한 진료 환경에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여준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모든 선진국에서는 의료 사고가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진료 과목으로 산부인과를 꼽습니다. 특히 태아의 분만 과정에 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담당의사가 보호자에게 당해야 하는 고초는 인격 손상 측면에서 볼 때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 누가 이런 직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또 어떤 부모가 어렵게 뒷바라지하며 공부시킨 자녀가 남에게 멱살 잡히고 온갖 폭행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산부인과 전공을 권하겠습니까. 이런 파행적이며 살벌한 진료 분위기가 결국 의료계를 왜곡시켰고, 특히 외과 계열의 환경을 피폐하게 만든 주요인이라는 게 의료계의 분석입니다.

돌이켜보면 오래전부터 오늘날의 문제를, 특히 외과계가 괴멸되어간다고 외롭게 외쳐왔습니까. 정부는 의사가 ‘가진 자들’에 속하니 희생할 것을 상투적으로 요구하는 입장만 고수하고, 시민 단체들은 반(反)의료계의 정서만을 견지해온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인구 105,370명, 가구 45,063개(2012.4.1.)가 있는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여섯 번째로 큰 상주시 행정구역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는 두 곳밖에 없다고 합니다.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뜻입니다. 임신한 아내가 걱정되어 불안한 시간을 보낸다는 한 젊은이의 사연이 오늘날 우리 의료 현실의 절실한 단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거주 지역에 산부인과 의원이 없어 한 시간 남짓 자동차로 분만실을 찾아 나서야 하는 오늘날의 저(低)개발국형 의료 현실을 냉철히 되짚으며 해결책 찾기에 나서야 합니다. 젊은 부부가 사는 마을에 오래전에는 산부인과 의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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