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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침사록
신종호 2007년 07월 12일 (목) 09: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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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침사록

류짜이푸 지음.노승현 옮김

 

바다 / 출판

 

13,000원


달아난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동네 사람들 여럿이 길을 나섰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리고 갈려 결국에는 양을 찾지 못하고 모두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다기망양(多岐亡羊)은 학문의 갈림길이 많아 진리를 탐구하기가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지엽말단(한 마리 양)에 휘둘리기보다는 근본(남아있는 다수의 양)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본래 뜻을 훼손할 마음은 없지만 때로는 다기의 분분한 갈림으로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을 때가 있다. 길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심정의 이면에는 목적지에 가야한다는 강박이 작용하고 있다. 길이란 본래 자유로운 것인데 그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이 무언가에 예속이 되어 있어 편치 못한 것이다. 인간사의 의무나 윤리들 때문에 길을 나서지 못하기도 하고, 떠난다 해도 갈림길 앞에서 이 길이 바른 길인지 주춤거리며 망설이게 된다. 자유정신은 뻥 뚫린 대로를 걷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갈림길들을 수도 없이 거쳐 길 그 자체의 맛을 감식하고 즐기는 것은 아닐까?

중국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이자 반체제 성향의 문예이론가인 류짜이푸의 산문집 『면벽침사록』은 생각의 폭과 동서양의 지식을 넘나드는 해박함의 정도가 다기망양해서 독서의 즐거움이 충일하다. 1989년 톈안문(天安門) 사건 당시 학생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90여명의 양심적 지식인과 함께 “베이징 지식계 연합회”를 조직한 일로 인해 정부의 탄압을 받아 미국으로 망명한 저자는 자신의 정신을 옭아매는 현실의 늪을 뛰어넘기 위해 사유하고 또 사유를 한다. 그 결과로 얻어진 것이 『면벽침사록』이다.

제목이 뜻하는 바처럼 “하늘과 우주 전체를 높은 벽으로 삼아 깊이 생각하였다. 벽을 마주하고 깊이 생각하는 상태는 실제로 생각이 구름처럼 떠돌고 자유롭게 노니는 상태로, 몸은 벽 안에 있지만 마음은 높고 넓은 하늘에 있으며, 또한 후손 만대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의 앞과 뒤에 있었다.”는 심경이 가감 없이 고스란히 책 속에 담겨있다.

그의 정신세계와 정치적 현실은 “쫓겨남”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국가로부터 쫓겨난 자”였지만 그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쫓겨난 자”가 되었다. 그 다음에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이데올로기의 결정체인 “국가를 쫓아낸 자”가 되어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다고 스스로 선언했다. 그렇다고 류짜이푸가 세속의 일과 단절한 선사가 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자신의 정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 일체의 이데올로기나 학자적 구습으로부터 벗어나 다기의 자유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을 찾은 것이다. “자신에게 이별을 알리고 자신과 헤어져라. 손을 흔들어 어제와 작별하고, 손을 흔들어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웠던 어제와 작별하고, 손을 흔들어 어제의 시집 및 문집과 작별하고, 손을 흔들어 문예적이고 교수적인 어제의 말투와 작별하는 것이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라는 그의 다짐은 그동안 자신을 가두었던 어둠을 걷어내는 ‘면벽침사’의 시간 속에서 얻은 생의 소중한 진리다.

류짜이푸는 마음의 거리를 걷는 ‘틈새인’이며 ‘자유인’이다. “마음의 거리는 은둔자의 정신세계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냉정과 완전함을 획득하게 만든다. 철저한 은둔은 마음의 은둔이지, 몸의 은둔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걸림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면벽침사록』은 그러한 자유의 경지를 호메로스, 단테,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연명, 장자, 혜능, 루쉰 등 동서양의 위대한 스승이 전하는 지혜에 의탁해서 스스로 개척해나가고 있다. 꼭 어느 한 길로 가야한다는 무거운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짧고 명쾌한 아포리즘의 세계가 독서의 매력을 한껏 돋운다.

지혜의 숲에서 길을 잃는 즐거움이 독서의 즐거움이라면, 『면벽침사록』은 그 즐거움을 제대로 선사하고 있다. 지적인 통찰과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사유로 빚어낸 ‘면벽침사’의 시간으로 올 여름 더위를 견뎌보심은 어떨지요. 광활하고 자유로운 세계는 바로 ‘철저한’ 정신의 은둔에 있습니다. 거침없이 손을 들어 어제의 나와 작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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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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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65.XXX.XXX.155)
항상 어제의 나와의 작별을 하기위한 노력을 하지만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이 들때가 많
습니다. 오늘도 그럴 수만 있다면 하고 또 머리와 가슴을 비우도록 서늘한 바람과 함
께 걷기 시작합니다. 기회 있으면 면벽 침사록을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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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3 08: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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