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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St. Valentine Day)와 의제 설정 이론
박상도 2013년 02월 14일 (목) 00:57:57
오늘은 밸런타인데이(St. Valentine Day)입니다.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3세기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 황제의 허락이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때 황제의 허락 없이 결혼을 시켜준 죄로 순교한 사제의 이름이 밸런타인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순교한 사제의 날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날이 바로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라고 합니다.

젊은 남녀의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해준 성 밸런타인의 축일인 밸런타인데이가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변해버린 데에는 일본 제과회사의 상술이 한몫을 했습니다. 1980년 중반부터 불어 닥친 밸런타인데이 열풍은 2000년 초반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열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에게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많이 받았니?”

하고 물어보니 심드렁하게

“아뇨, 별로요.”

하는 겁니다.

“너, 인기가 별로 없구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밸런타인데이보다는 빼빼로데이를 더 이용하거든요.”

하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11월 11일에 길쭉한 초콜릿을 한 보자기는 받아 들고 히죽 히죽 웃으며 집으로 들어온 녀석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하는 의미로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지만 빼빼로데이는 그다지 진지한 사이가 아니라도 남녀 누구나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데다 별로 비싸지 않아서 서로 재미로라도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아, 세상은 내가 부르짖지 않아도 변하는 거구나.’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체불명의 밸런타인데이 풍습과 일전을 벌였던 오래전 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중반 필자는 ‘밸런타인데이는 상술에 불과하며 이러한 상술에 지갑을 열어 비싼 초콜릿세트를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취지의 방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세상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야기를 들어주기는커녕 비웃기라도 하듯 비싼 초콜릿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초라해져 버린 밸런타인데이의 위상을 보며 세상이 변해가는 데에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엇인가 강력하고 미스터리한 법칙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주체는 바로 사람의 집단인 대중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대중은 밸런타인데이에 예전처럼 열광하지 않을까요?

매스미디어 이론 중에 ‘의제 설정 이론(Agenda Setting Theory)’라는 것이 있습니다. 반복된 뉴스 보도를 통해 대중의 마음에 이슈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입니다. 즉, 특정 주제에 대해 미디어가 주목하고 많이 다루면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대중이 그 이슈를 중요하게 평가하게 된다는 것으로 맥스웰 매콤과 도널드 쇼(Maxwell E. McCombs & Donald L. Shaw, 1972)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습니다.

밸런타인데이가 대중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과거에는 방송과 신문에 밸런타인데이와 관련한 기사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특히 방송의 매거진 프로그램에서는 밸런타인데이의 풍속도를 비롯해서 특이한 초콜릿제조법까지 별의별 프로그램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 초반에 들어서는 서서히 그 열기가 식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밸런타인데이 아이템은 방송에서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방송은 늘 썸씽 뉴(Something New)를 찾습니다. 방송사의 뉴스 역시 뉴스(News)라는 제목에 충실합니다. 따라서, 항상 새로운 소식을 좇습니다.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되지 않습니다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기자들이 우스갯소리로 하곤 합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방송의 속성입니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낡은 밸런타인데이보다는 새롭게 등장한 빼빼로데이가 더 주목을 끌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무슨 무슨 데이가 참 많기도 합니다. 3월 3일은 삽겹살데이고 5월 2일은 오이데이랍니다. 그리고 9월 9일은 구구데이라고 해서 2003년에 국어사전에 신조어로 등재되기까지 했습니다. 닭의 울음소리를 연상하는 ‘구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구구데이는 닭을 먹는 날입니다. 이렇게 날짜와 상품을 연결하기 시작하더니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삽겹살데이와 오이데이 그리고 구구데이는 농가의 소득을 올려주기 위한다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틈에 빼빼로데이가 살짝 끼어있는 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속성이 새로운 것을 좇기 때문에 매스 미디어가 극성스럽게 새로운 트렌드를 앞다퉈 소개하는 것인지 아니면 매스 미디어의 속성이 새로운 것에 민감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대중(大衆)이 새로운 트렌드를 인지하게 되는 통로는 매스 미디어입니다. 따라서 매스 미디어가 어떤 의제를 선택하느냐가 관건이 됩니다.

대개 우리나라 신문은 하루 200여 개의 기사를 취급하고 있으며, 방송의 종합 뉴스는 대략 25~30개 정도의 뉴스 아이템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문의 1면 뉴스들이나 방송의 첫 10분 뉴스 등은 중요도를 갖는 미디어 의제들로서 대중 의제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 의제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수많은 뉴스가 발생합니다만 편집회의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선택 받는 뉴스 아이템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선택된 뉴스들은 대중의 마음속에 중요하게 각인됩니다. 부지불식간에 대중은 미디어가 선택한 의제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첫 화면이 매우 큰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방문하게 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첫 화면에 뜨는 기사들을 신문이나 방송사 메인 뉴스보다 더 많이 접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신문이나 방송 같은 기존의 매체보다는 인터넷을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뉴스의 연성화가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성화는 기존의 신문과 방송보다는 인터넷 공간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정치, 경제, 안보 같은 이슈는 다소 딱딱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고 여기서 생성되는 이슈는 놓치지 말아야 국민이 대접받는 수준 높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연예인의 사생활 엿보기나 각종 루머에 귀를 세우고 여기에 편승해서 있지도 않은 얘기를 만들어서 기사를 클릭하게 만드는 질 낮은 보도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대중의 수준 역시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알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정말로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정론(正論)이 다시 서야 할 것입니다. 매스미디어의 올바른 의제 설정 기능을 통해 오늘의 시대적 요구인 사회 통합과 경제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제 2, 제 3의 밸런타인데이 상술이 미디어의 의제로 다시 선택 받아서 국민의 눈과 귀를 왜곡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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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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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83.XXX.XXX.211)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지적하신대로 오늘의 매스미디어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깜짝 의제만 비중을 두고 있어 신문을 훑고 나서도,뉴스를 시청하고 나서도 잡히는게 없고 혼란스러운데 심층 기사를 연재형태로 싣는 프레시안에서 다소의 갈증을 풀고 있습니다.
시대적 요구라고 적시하신 사회통합,경제정의에 대해서 모든 매체들이 비중 있게 다룬다면 우리 사회는 많이 변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랬을 때 독자나 시청자가 늘어날 것이냐가 관건이 되겠죠? 그것을 우리 국민들이 지지하고 밀어주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매스미디어의 저질화,사회적 분열과 경제적 불의는 형태만 다를 뿐 한 뿌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민족의 분단과 친일 반민족 범죄에 대한 미청산,그리고 외세 말입니다.
도둑이나 깡패는 용서할 수 있지만 나라 강점시 적국 편에 서서 민족을 배신한 반민족적 범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인데도 일제를 대신한 미국의 비호 아래 그들이 신생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틀어쥐고 오늘까지 누리고 있으니 되는게 없죠!
이 문제에 대해서 종교가 침묵하기 때문에,지성인들이 곡학아세하기 때문에,교육이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비굴한 51%의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그 질곡은 대를 이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일기예보처럼,매일 9시 뉴스 시간에 통일과 정의에 대한 예보를 같이 진행함 어떨까요? 재밌고 유의미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사회의 모든 모순의 뿌리는 분단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분단 문제의 극복, 통일 앞에서 만이 진짜와 가짜게 확실하게 가려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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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5 08:05:21
0 0
김창식 (1.XXX.XXX.20)
‘아, 세상은 내가 부르짖지 않아도 변하는 거구나'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그런데 그게..., 침묵해도 어찌됐건 이래저래 변하니 곤혹스럽습니다.


'구구데이'가 닭 먹는 날인 줄도 처음 알았습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개 먹는 날'은 복날 말고 정확히 언제 입니까? 매일이라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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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4 11: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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