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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수학’을 위하여
임철순 2013년 02월 26일 (화) 00:57:28
석 달도 전에 마르코글방이라는 온라인 공동체에 초등학교 2학년 수학문제가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손자의 공부를 돕던 할머니가 요즘 초등학교의 수준이 이렇다며 예로 든 문제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다음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세 자리 수를 구하시오. (ㄱ)십의 자리 숫자는 4입니다. (ㄴ)일의 자리 숫자부터 거꾸로 쓰면 처음 수보다 297이 큽니다. (ㄷ)거꾸로 쓴 수에 245를 더하면 일의 자리, 십의 자리, 백의 자리 숫자가 같아집니다.”

처음엔 무시하려다가 아무래도 수학 못하는 나를 겨냥한 문제인 것 같아 한번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지문 중 (ㄱ)은 당연히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ㄴ)부터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일의 자리 숫자부터 거꾸로 쓰라고? 거꾸로 쓴다는 게 뭐지? 말하자면 6을 9로 쓰라는 건가? 8은 거꾸로 쓰나 바로 쓰나 똑같으니 그렇다 치고 2 4 5 7, 이런 숫자는 어떻게 하지? 아니, 백의 자리보다 일의 자리 숫자부터 쓰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왜 ‘먼저’ 쓰라고 하지 않고 ‘거꾸로’ 쓰라고 했을까? (ㄴ)에서 이렇게 막히니 (ㄷ)은 당연히 무슨 말인지 당최 알 수 없었고, 답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수보다 297이 크다”는 말도 297이 더 크다는 건지, 새로 형성된 수가 297만큼 더 크다는 건지 애매했습니다. 좌우간 어찌어찌 우물럭 주물럭해서 내가 만들어 낸 답은 582입니다. 풀이과정은 너무 한심하고 창피해서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정답은? 346이랍니다. 그러나 답이 나오게 된 과정을 설명한 글을 몇 번이나 읽어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애매하고 헷갈리는 지문을 남들은 어떻게 그리 잘 알아듣고 문제를 푸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글방의 다른 사람들은 다 이 문제를 푸는데 나만 모르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낙타 나누는 문제’를 냈습니다. 낙타 17마리 중 2분의 1을 첫째, 3분의 1을 둘째, 9분의 1을 셋째가 나눠 가지라고 한 아버지의 유언을 풀지 못한 3형제가 낙타를 타고 지나가던 현인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문제를 단박에 풀었습니다. 일단 현인의 낙타를 형제들의 낙타에 보태면 낙타가 모두 18마리가 됩니다. 첫째에게 2분의 1인 9마리, 둘째에게 3분의 1인 6마리, 셋째에게 9분의 1인 2마리를 주면 1마리가 남으니 현인이 그놈을 도로 타고 가면 된다는 게 답입니다.

이렇게 문제를 풀고서 나는 의기양양, “그러나 과연 17마리의 2분의 1이 9마리라고 수학적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수학 문제가 아니라 키워서 나누고 보태서 가르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도덕적 설화입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은 그 설화를 언젠가 읽은 기억이 있어서 금방 푼 것인데, 설화건 수학이건 이번에 처음 이 문제를 보았다면 나는 또 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학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교육방식이 달라지는 것 같아서입니다. 새 학기부터 전국의 초등 1ㆍ2학년과 중 1학년 학생들이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용한 수학 교과서로 공부를 합니다. 스토리텔링 수학이란 낙타 이야기처럼 학습 주제와 관련된 소재나 상황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수학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두 재단사가 임금님의 팔 길이를 각자 손뼘으로 재서 옷을 만들었더니 양쪽 소매의 길이가 달랐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초등 2학년 1학기 수학 144쪽)” 같은 이야기를 통해 ㎝ 등 보편 단위의 개념과 길이 측정의 원리를 가르치는 식입니다.

스토리텔링 수학은 2014년에는 초등 3ㆍ4학년, 2015년에는 초등 5ㆍ6학년까지 확대됩니다. 아울러 기존 수학교과서에서 암기 위주이거나 중복되는 내용을 제외해 교과 내용을 약 20% 감축, 스토리텔링 수업을 늘릴 수 있게 한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도 포함된 스토리텔링 교과서는 기존 수학교육이 공식 암기와 문제 풀이 위주여서 창의력과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기는커녕 학년이 높아질수록 수학 포기자를 양산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개발된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발표된 ‘수학ㆍ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비교연구(TIMSS) 2011’에서 한국 초등 4년생의 수학 성취도는 참가국 중 2위, 중 2년생의 수학 성취도는 1위였습니다. 반면 수학공부를 좋아한다는 중2 학생은 8%로 참가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 초등학생은 23%로 꼴찌였으며 자신감도 최하위였습니다.

스토리텔링 교육계획을 보면서 요즘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나도 어려서부터 그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수학을 잘했을지 모릅니다. 아니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최소한 수학에 대한 흥미는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흥미를 갖고 공부를 하다 보면 팔자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수학을 잘하지 못하면 설 자리가 없는 나라입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은 잘못은 잊어버리고 이렇게 투정을 하는 것은 우리 교육에도 큰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스토리텔링 수학 교육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교사들의 준비가 부족하고 교과용 도서 연수도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학부모들은 막연한 불안감에서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스토리텔링 수학 지도교사 양성과정을 운영하는 민간 기구나 업체가 많아졌다니 사교육 시장은 역시 잽싸고 기민합니다.

그런데 왜 꼭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을 쓸까? ‘이야기 수학교육’이라고 우리말을 쓰면 어디가 어때서? 어느 인터넷 기사에도 교육부장관이 미국에서 영어교육을 받고 와 그런 모양이라는 비난 댓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스토리텔링이 현대 조직사회의 효과적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활용된다 해도 우리 2세를 기르는 교육에서는 지금이라도 우리말로 고쳐 쓰기를 촉구합니다. 수학도 결국은 국어입니다. 새로운 교육이 지향하는 바가 일종의 ‘설화/동화 수학’이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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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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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39.XXX.XXX.180)
큰일 났습니다.
손녀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이야기 수학은 제겐 너무 어렵습니다.

아무리 읽어봐도 1번 문제는 풀길이 없습니다.
저 보다 더 못한 에미 애비는 이 핼미만( 손녀가 외할머니는 자기를 돕는 할미라 '핼프미'를 줄여서 핼미라 부는 답니다.) 믿고 맘 푹 놓고있는데 ...

저는 구구단 외는 것만 대견해 했습니다.

정 모를 수학문제를 만나면 여기와서 주필님께 핼프미!!! 를 외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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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8 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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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16)
아이구 아닙니다. 저는 수학 땜에 망한 사람인데요. 핼미, 재미있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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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8 23: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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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맘 (1.XXX.XXX.211)
정말 그러네요
세종대왕님께서 오시면 많이 화를 내실 것 같네요
< 이야기 수학교육> 듣기도 좋고 쓰기도 좋은데 단어인데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 문제 하나도 못 풀 것 같아요
임철순님은 두 문제 중 한 문제라도 푸셨으니
이 다음 손주들 공부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네요 부럽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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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07: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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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16)
칭찬해 주시니 기분은 좋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수학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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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08: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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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121.XXX.XXX.16)
재미아게 읽었습니다. 아직 우즈벡입니다. 길게 쓰면 언제 끊길지 몰라서 간단히 씁니다. 안녕하시지요? 언저나 뵈올 날이 있으려라....안녕히 계세요.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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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06: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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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철 (211.XXX.XXX.129)
동의합니다. 저도 자녀를 가르칠때 문제 자체가 애매해 여러번 읽어야할 때가 있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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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6 16: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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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철 (211.XXX.XXX.129)
이렇게 쓰면 되나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세 자리 수는 무엇입니까?
ㄱ. 십의 자리 수는 4입니다.
ㄴ. 백의 자리 수와 1의 자리 수를 바꾸어 쓴 수에서 처음의 수를 빼면 297이 됩니다.
ㄷ. 백의 자리 수와 일의 자리 수를 바꾸어 쓴 수에 245를 더하면 각 자리의 수가 같게 됩니다.

어렵네요. 완벽하지 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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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6 16: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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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119.XXX.XXX.227)
아! 이뜻이었습니까?
문제 낸 사람이 자기 생각만 했군요~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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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10: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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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211.XXX.XXX.129)
공감이 많이 되는 글입니다. <스토리텔링 수학>을 <이야기로 푸는(만나는) 수학>이라면 더 가깝게 느낄 터인데 말입니다.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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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6 16: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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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용 (121.XXX.XXX.16)
스토리 탤링 수학 /내용이 산뜻하네요/진부하지않아서 좋습니다./계속해서 신선한 충격의 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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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6 08: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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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내선생 (121.XXX.XXX.16)
읽는 내낸 소리내어 웃고 재미있어서 다시 일고 댓글까지 쓰게 되었네요. 특히 스트리텔링이 대유행인 시대에 정말 우리 말과 언론의 문제를 재미있게 써 주셨네요. 한잔하며 다시 읽을 글입니다, 긴내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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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6 08: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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