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도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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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쉬고 싶다

방석순

2013년 03월 05일 (화) 00:32:14

사람의 오감(五感) 중 가장 예민한 게 무엇일까요. 신체 기능이 저마다 다르고 감각을 측정하는 단위도 제각각이겠지만 저는 청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각이 한층 더 빠르고 예민할 것 같지만 어둠 속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반면 청각은 어둠 속에서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후각은 개 코처럼 예민하다는 사람조차 십여 초 지나면 무뎌지고 좀 더 지나면 아예 마비되어 버립니다. 미각도 입속에다 넣지 않으면 기능하지 못하니 시청각에 비하면 한참 뒤지는 편입니다. 촉각의 우둔함은 주사 한 방으로 입증되지요. 그 무서운 주사바늘도 예쁜 간호사가 엉덩이 한 번 찰싹 때리고 푹 찌르면 어느새 살 속 깊이 파고드니까요.

그렇게 예민한 청각을 맡은 우리의 귀는 고달픕니다. 귀에 너무나 소홀하고 무례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소음, 자동차 경적, 찻간에 오른 행상이나 종교 전도사들의 장광설, 시장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고급 백화점 내의 호객 소리, 길거리 상점 밖에다 설치해놓은 스피커의 굉음, 음식점이나 주점 옆자리의 고함소리… 환경부가 낮에는 55dB(데시벨), 밤에는 45dB로 1분 이상 내는 소음을 피해인정 기준으로 정했다지만 실제 그런 소음을 측정하고 단속했다는 소리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눈에는 덮개라도 있지만 귀에는 마개가 없습니다. 인공적인 마개로 막아주지 않으면 종일 듣기 좋고 싫은 모든 소리를 감내해야 합니다. 잠잘 때는 불침번까지 서야 합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소음은 사람을 거의 미치게 만듭니다.

방화와 살인의 참극까지 불렀던 소음 시비가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소음이 씻은 듯 사라지고 그로 인한 불편이 말끔히 해소된 건 아닐 겁니다. 너무나 참혹한 사건의 발생에 방심했던 주의력을 잠시 팽팽히 당긴 덕이요, 짜증스런 반응을 애써 자제하고 있는 덕이겠지요.

비상사태의 불똥이 먼저 튄 곳은 물론 문제의 진원지 아파트 건설을 관장하는 국토해양부였습니다. 국토부는 우선 아파트 구조를 소음이 상대적으로 적은 기둥식으로 바꾸도록 권장하고 바닥 두께를 늘려 층간 소음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허겁지겁 발표한 대책도 소음의 근절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입니다. 이미 지난 20년간 주민의 생활환경이 아니라 건설업계의 편의만을 좇아 비용 덜 들고 공기 단축되는 벽식 구조의 아파트 건설이 대세를 이루어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파트 주민은 위층에서 코고는 진동까지 느낀다고 말합니다. 어떤 주민은 마루에 매트와 담요까지 깔아놓고 철없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곤 하지만 아래층의 계속되는 불평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아래층도 위층도 불편하기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60% 이상이라니 분쟁의 빈도도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역시 다중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아파트의 불편에는 건물의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에도 적잖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내 집에서의 소음은 내 마음대로라는 듯 아무 때나 큰 짐을 옮기고 세탁기를 돌리고 아이들의 쿵쾅거리는 발걸음을 방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웃의 불편 호소나 항의에 오히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불끈하고 나섰다가 맞붙어 벌어지는 불행이 아마도 언론에 보도되는 끔찍한 사건들일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 참극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음을 일으키는 쪽이 먼저 용서를 구하고, 그 피해를 받는 쪽도 상대의 불가피성을 이해한다면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게 번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인간정신의 발전을 앞질러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파트, 자동차, 휴대전화가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물질을 사용하는 주인의 의식수준이 그 물질의 편리성을 따르지 못합니다. 그러니 철부지 손에 위험한 장난감을 쥐어 준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파트촌에서는 무분별한 소음이나 쓰레기, 재활용품, 폐기물의 무단 방출로 주민들 사이에 상을 찌푸리고 분쟁이 일어나는 일이 허다합니다. 다중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와 질서도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달리는 흉기로 변하곤 하는 자동차의 사용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핸들만 잡으면 욕설부터 내뱉고 과속에 무시로 차선을 넘나드는 운전습관이 세계 최고 수준의 교통사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버스나 전철 간에서 휴대전화에다 대고 그렇게 큰 소리로 오래 떠드는 나라도 우리 말고는 지구상에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한 번만 자신이 당한 불편을 떠올려 보고 남이 받을 불편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 수 있을 텐데, 어제도 오늘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런 불편을 두고 다투고 싸우곤 합니다. ‘저렇게 훌륭한 문명의 이기(利器)를 만들어내는 인간들이…’ 안타깝다 못해 참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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