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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신아연 2013년 03월 14일 (목) 01:15:34

서울에 머무는 동안 친정 조카들한테서 얻어 쓰고 있는 컴퓨터가 무슨 이유에선지 ‘ㅃ ㅉ ㄸ ㄲ ㅆ’ 등 된소리를 못 내는 통에 지금은 피시방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갑자기 ‘된소리’를 못하니 ‘된서리’를 맞아 못 먹게 된 푸성귀처럼 이렇게 말해도 안 되고 저렇게 표현해도 말이 안 되는, 된소리 없이는 한 문장도 완성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나사 빠진 사람처럼 어리숙하고 얼뜨고 바보 같고 답답해서 자다가 매번 남의 다리 긁는 느낌입니다.

‘아빠’는 ‘아바’ 대신 ‘아버지’라 할 수 있지만, ‘빨리 빨리’ 할 것을 ‘발리 발리’라고 하니 '빠른 감'이 하나도 안 옵니다. ‘때문에’를 ‘대문에’라 하고 ‘똘똘’ 뭉칠 것도 ‘돌돌’ 뭉칠 수밖에 없습니다. ‘오바의 달’은 ‘오빠의 딸’로 문맥상 새겨들어 줄 것을 호소합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지인들에게 눈부신 서울의 모습을 전하고 싶은데 ‘우둑우둑’ 선 빌딩, ‘비가번적’한 거리 등, 나사 ‘바진’ 소리만 ‘자구자구’ 하게 되니 미칠 노릇입니다. 이 지경이니 된소리 없이 전할 수 있는 말은 ‘자장면’뿐인 것 같습니다. 그조차 '짜장면'도 맞는 말이라는 전제 하에 그렇지만.

저의 고충 아닌 고충을 전해들은 한 지인은 ‘야, 이 나븐 놈아, 대려죽일 녀석, 돼지 새기, 덕두거비,’ 라는 말을 나열하며 가만 보니 욕 중에서 유독 된소리가 많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래도 미끄러운 눈길에 ‘꽈당’ 넘어지지 않고 ‘과당’ 넘어진다면 덜 아프고 덜 다칠 거라고 저를 위로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짜고 매운 자극성 음식처럼 우리말의 된소리도 밍밍한 말에 자극을 주고 맛을 내는 역할을 하나 봅니다.

간기 없는 맹탕 같기도 하고, 벙어리장갑 낀 손이나 김 서린 안경 너머의 감각 같기도 한 된소리 없는 자판을 두드린 지 어언 한 달,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된소리를 되도록 피하기 위해 같은 의미, 유사한 뜻을 담은 단어와 표현을 찾아 쓰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빼라’할 것을 ‘지우라’고 하거나 ‘나 대문에’ 할 것을 ‘나로 인해’ 따위로 표현하면서 어휘도 다양해졌지만 글에서 된소리가 사라지면서 시나브로 ‘경화’된 마음도 부드럽게 풀어지는 걸 경험합니다. 말이 순화되자 심성도 착해졌다고 할까요, 부들부들해진 마음이 꼭 노전에서 파는 버터구이 오징어나 눌러 놓은 문어 다리 맛 같습니다. 합죽 할멈 입 속의 삭은 밥알처럼 무력하지만 폭신폭신한 세계가 내면에 새로 들어차는 느낌도 있구요.

이번에 낸 책의 제목은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입니다. 처음에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출판사와 설왕설래를 했더랬습니다. ‘밥 짓는 여자’라는 말이 싫었던 것입니다. ‘집에서 밥이나 하는 아줌마가 아닌, 그럴 듯하고 고상한 캐릭터를 가진 여자의 글’로 보이고 싶은 허황된 심리가 제 속에 있었던가 봅니다. 내심 ‘흥, 날 뭘로 보길래, 내가 왜 밥하는 여자야?’ 라며 뾰로통하니 심사가 꼬인 거지요.

그러다 이제는 그 제목이 좋아졌는데, 곰곰 생각해 보면 ‘된소리’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에서 된소리가 빠지면서 마음까지 착해지고 순해진 느낌이 들었던 것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책의 제목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 뻐기고 싶었던 ‘마음 속 된소리’가 힘을 잃고 잦아든 탓입니다.

‘밥’이란 실상 ‘삶’이 아닌가요? 한 끼니의 밥을 얻기 위해 일평생 고생하며 흘린 눈물이 얼마이며, 밥 한 그릇에 팔아버린 양심과 저버린 책무, 외면한 진실은 또 얼마인가요. 신산하고 고단한 삶이든 허풍스레 탐욕적인 삶이든 결국 ‘밥’, 그 이상의 사연을 담지는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밥’은 밋밋하나 소중한 일상이며 애면글면 이어가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더구나 단순히 밥을 ‘하는’ 게 아니라 ‘짓는’ 일임에야…

밥을 ‘짓는’ 일은 삶을 ‘짓고’ 생을 ‘짓는’ 일이니까요. 자기 생을 ‘지어가는’ 사람은 본능과 감정에 끄들리며 되는 대로 '반응하는' 사람이 아닐 테지요. 애초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세워진 집과 마구잡이로 얽은 움막이 같을 수 없듯이 밥을 ‘하는’ 일과 ‘짓는’ 일도 그처럼 엄연히 구분될 것입니다.

책 제목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목이 오히려 과분하게 느껴집니다. 내 삶, 내 생인 ‘밥’을 지금까지 제대로 지어왔나 하는 부끄러운 성찰을 해봅니다. 행여 글 쓰는 여자는 못된다 해도 죽을 때까지 ‘밥 짓는’ 여자로는 살아야겠다는 속 다짐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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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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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근 (202.XXX.XXX.203)
안녕하세요. 보내 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끔 왜 글이 안 오지? 올 때가 됐는데. 어디 아픈가,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궁금해 하기도 하지요. 책을 내셨다니 당분간은 기다릴 필요없이 책으로 여러날은 즐겁게 읽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서울 방문 길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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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8 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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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상 (202.XXX.XXX.203)
와우 진자 재밋겟다. 발리 사서 읽어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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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8 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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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202.XXX.XXX.203)
신아연님의 글을 즐겨읽고, 또 기다리는 독자입니다.
허세없고 간결하면서 생각이 분명한 님의 글이 참 좋습니다.
그것은 아마 글과 사람이 확실이 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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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8 12: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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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갑술 (202.XXX.XXX.203)
신아연 선생 님....

글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된소리 의 뜻을 조금 알수있게 됐습니다.

이민 생활의 고달프고 힘든상황에서도 글쓰시는 직업과 밥을짓는

직업에 열과 성을 다하시는 신선생님의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시드니에 가면 비스트로메메 를 찾아가겠습니다.

책도 꼭 읽어보렵니다.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쓰시고

사업의 번영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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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7: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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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현 (202.XXX.XXX.203)
자유칼럼 신아연님의 글 애독자 입니다.

글이 항상 신선하여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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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7: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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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 (202.XXX.XXX.203)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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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7: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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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중 (202.XXX.XXX.203)
이글을 보는 즉시 글을 씁니다. 급한데로 컴퓨터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하니 내가 답답하네요.
그 귀하고 좋은 생각을 제대로 전해듣지 못하니 말입니다. 내 note book 을 한국에 게시는 동안
빌려 드릴테니 주소를 알려주세요.오늘 바로 가저가겠습니다. 그리고 밥짓는 여자,글스는 여자 둘 다
하면 좋겟는데 먼 훗날 둘 다를 할수 없을때가 온다면 긄쓰는 여자로 남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우리국민의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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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7: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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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02.XXX.XXX.203)
밥 짓는 일은 엄숙하고 고귀한 일입니다. 한 끼의 밥이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매일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정성을 받치는 일이 얼마나 진지한 일인데요. 좋은 글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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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7: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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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걸 (202.XXX.XXX.203)
하하~ 그렇겠군요. 자판에서 된소리만 쓰지 못해도 문장의 맛이 확! 달라지는군요
된소리 한 자 쓰지 않고 에세이를 쓰거나 시를 쓰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말씀하신대로 문자가 사유의 반영이라면 거칠고 된 소리를 자주 쓰는 것은 그런 심성, 사회의 반영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말은 참으로 오묘해서 거친 감정의 표출이라는 측면 말고 된소리를 통해 표현되는 자연현상,심경 등은 된소리를 빼면 영 싱겁지요?
밥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짓는' 것이라면 글도 '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으로 했더라면 어땠을지요? '짓는'다는 어감이 주는 주체적, 창조적,능동적 몸짓!
이번 컬럼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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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7: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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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202.XXX.XXX.203)
아침마다 이 칼럼 보면서 안 그래도 지금쯤 한국에 와서 바쁘게 좋은 시간 보내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된소리 안되는 글 쓰기를 하며 지내고 계셨군요.^^* 역저 발간 축하드리고요, 남은 방한 기간도 알차고 보람차게 잘 엮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문재 돋보이는 상큼 발랄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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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7: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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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121.XXX.XXX.81)
멋진 글 고맙습니다!~ 맘에 팍팍 들어용!~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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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08: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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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02.XXX.XXX.203)
감사합니다. 제 글이 맘에 드신다는 건지, 책 제목이 맘에 드신다는 건지.여튼 맘에 드신다니 저도 기분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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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7: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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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220.XXX.XXX.128)
새책을 내시는 일에 축하를 드립니다. 아는 분이 책을 내면 나는 꼭 사봅니다. 주면 거절합니다. 대단한 정성을 그냥 받지는 않습니다. 출판업계가 어렵다 말은 하고 책은 공자로 받는 것이 나는 싫습니다. 지금도 연극이나 공연등의 표를 소위 높은 분들에게 돌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것도 무지 싫어했습니다. 말이 안되는 소리가 아닙니까. 그 공자표를 들고 상석에 그것도 어부인을 동반하고.. 꼴볼견이 아닙니까.
각설하고 신아연님의 책을 한권이라도 사주는 일에 동참하시지요.출판을 한 분들에 대한 예의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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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06: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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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02.XXX.XXX.203)
감동스런 말씀입니다. 실은 저도 돈을 주고 사서 봅니다. 만약 한 권 얻었으면 따로 한 권 구입하지요. 글이나 공연, 전시 작품 등은 모두 무형의 노동의 결과가 아닙니까. 작가로서는 피를 말리는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야 뭐 그런 정도는 물론 아니지만 이렇게 격려해 주시니 힘이 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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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8: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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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pco (117.XXX.XXX.4)
무엇이든 한번 없이 살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도 스페이스 바가 말을 안들어 글을 한번 써보니 가관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습관적으로 쓴 스페이스 바가 주는 아름다움을 알았지요. 꺽어진 난 잎이 하나 있어야 맛이 나는 경우가 있지요. 너무 완벽하면 재미 없습니다. 너무 넘쳐나면 아무 것도 더 담을 수가 없지요. 부족해야 아이디어가 많아 집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맨손으로 시작하라고 했나요? 책 발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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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5 12: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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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02.XXX.XXX.203)
스페이스 바가 안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가요?^^ 상처없는 사람이 매력없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모자람이 주는 겸손함은 삶의 또다른 여백이 아닐까요?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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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8: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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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02.XXX.XXX.203)
맞습니다. 저도 밥짓는 여자로 남고 싶습니다. 나와 내 이웃을 위한 따스한 밥 한 그릇, 언제나 정성스레 그렇게 밥을 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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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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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식 (202.XXX.XXX.203)
반갑습니다



사실 밥상은 생활의 공동체요, 삶의 집약된 복된 근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출간을 축하드리며, 기대가 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이 완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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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4 1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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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202.XXX.XXX.203)
보람된 한국나들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얼마전 시드니에서 온 대학 동기 오성광 목사님과 대학 동기들 '밥'을 같이 먹었습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제목이 좋습니다. 밥이야말로 원초적인 생명의 근원이지요.



책이 나오면 신청하겠습니다.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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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4 1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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