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바로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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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바로 세우기

김창식

2013년 03월 25일 (월) 01:13:37

한 스포츠 신문이 기획연재하고 있는 '불편한 삼국지(김경한)'가 눈길을 모으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전복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중요한 사건에 대한 이면을 파헤쳐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유비 등 흠모를 받는 영웅 대부분이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그렇고 그런 인물이라는 주장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실수투성이에다 부도덕하고 현실 모면에 급급하거나 판단 오류로 큰일을 그르치는 찌질한 사람들이라니! 재미와 감동을 심어준 장면들도 가공의 이야기라는 언급은 한층 실망을 안겨줍니다. 저 유명한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비롯, 제갈량의 팔진도(八陣圖)와 적벽대전 때의 동남풍을 빌린 화공(火攻), 관우의 오관참육장(五關斬六將), 조자룡의 당양(當陽) 장판파(長坂坡)에서의 원맨쇼….

삼국지에 대한 비판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야 그렇다 치고,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부정하는 움직임도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요. 현대 중국의 영향력 있는 평론가인 류짜이푸(劉在復)가 '쌍전(雙典:삼국지‧수호지)'에서 폭력과 권모술수, 패거리의 의리를 정당화한다는 이유를 들어 '재앙'이라는 표현으로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작품에 나타난 시대 배경과 윤리 트렌드를 도외시하고 현대적 규범과 가치 기준을 적용하여 비판한다면 형평을 잃은 처사이지 않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만.

작심하고 쓴 김경한의 '불편한 삼국지'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도 설핏 수긍이 갑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위촉오(魏蜀吳) 삼국의 역사가 사실과 달리 왜곡된 측면이 있는 만큼 바로잡아야겠다는 충정이 책을 쓴 동기일 것이에요. 김경한 작가의 노작(勞作)은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삼국지도 그 자체로 평가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실과 민담설화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이니까요.

삼국지가 팩션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소설이며, 소설의 특징과 정체성은 다름 아닌 '허구'에 있습니다. 상상력에 기반을 둔 '허구'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양식이 소설인 때문이죠. '허구적 사실(진실)'을 '허구적 장치'를 사용했다 해서 거짓임을 설파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납니다. 나관중(羅貫中)이 쓴 원조 삼국지나, 촉한정통론에 입각한 모종강(毛宗崗) 계열 판본, 또는 조조를 중시한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번안 삼국지가 아니라,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를 비교 대상으로 하여 '역사적 사실'의 허(虛)와 실(實), 편파적 기술 여부를 검토함이 더 타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삼국지의 내용 중 오해의 소지가 있는 터무니없는 대목을 바룬다는 취지에는 일부 공감하지만, 소설 속 영웅들의 '생얼'을 보여주어 환상을 부수고 행위와 사건의 오류를 들추어 얻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회의도 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신화, 영웅담, 고전명작 속 인물과 사건이 허구이기 때문에 거짓인 것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