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프로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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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프로농구

“넌 강동희였어!”

방석순

2013년 03월 27일 (수) 00:30:56

프로스포츠는 우리 사회의 건전 여가 문화를 이끌어가는 한 축입니다. 일상에 지친 시민들이 햇살 눈부신 드넓은 옥외 경기장에서, 또는 환하게 불을 밝힌 실내 경기장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내는 선수들의 플레이에 환호하며 새로운 활력을 얻습니다. 거기엔 싱싱한 젊음이 있고 불꽃같은 열정이 있습니다. 경기의 규칙과 상대를 존중하는 스포츠맨십이 있습니다.

“허동택!” 한때 국내 농구의 중심엔 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부신 플레이에 청소년들은 열광했습니다. 농구 인기도 함께 높아만 갔습니다. 가히 농구의 중흥기라 할 만했습니다. 허재의 칼날 같은 슈팅, 강동희의 현란한 드리블과 어시스트, 김유택의 고공 플레이. 거기에 키다리 한기범이 가세한 기아는 국내 남자농구를 주도했습니다.

1988년부터 1996년 사이 아홉 시즌에서 기아는 무려 일곱 차례나 우승, 농구대잔치 최다 우승기록을 세웠습니다. 덩달아 기아의 깜찍한 경승용차 프라이드도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프라이드의 작은 문짝이 열리고 거기서 구깃구깃 접힌 종이가 펴지듯 2m가 넘는 한기범이 장신을 일으키며 내려오는 모습은 코트 밖의 또 다른 볼거리였습니다. 당시의 열기가 오늘날 프로농구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강동희는 유희형 김동광 이충희 신기성 김승현으로 이어져 온 인천 송도고 출신 국가대표 명 가드 계보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스타였습니다. 청소년들은 물론 성인 농구팬들도 그의 기지에 넘친 플레이에 감탄하며 갈채를 보냈습니다. 감독으로서의 출발도 성공적이었습니다. 동부 팀을 맡은 지 3년 만인 2011~2012시즌 정규리그 1위, 챔피언전 준우승의 성적을 올리고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청소년 팬들의 ‘아이돌’이었던 강동희 전 동부 감독이 지금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수사 초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그도 끝내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천하의 강동희마저…’ 농구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구속에 농구팬들이 받았을 충격과 실망의 크기를 강 감독 자신은 짐작할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에 오른 수많은 글귀가 팬들이 받은 상처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지켜본 레전드 선수 강동희마저 다 부정해야 한다는 게 참 서글프네요.” “재판 결과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둠의 도박과 강동희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격이다. 넌 강동희였어!”

약물과 도박, 이 두 가지는 오늘날 스포츠 스타들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들입니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그 마수를 벗어나지 못하면 선수 자신은 물론 몸담았던 스포츠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예체능계의 스타들은 공공연히 자신들을 공인이라고 말합니다. 국가 공직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자신들을 따르는 숱한 팬들 앞에서 그들 스스로 취해야 할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잇따라 터져 나오는 승부조작 사건들이 우리 스포츠 내부 깊숙이 파고든 중병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황금만능의 시대에 스포츠 스타들을 쫓는 유혹의 손길도 갈수록 교묘하고 집요해지고 있습니다. 옛 동료, 친구 등 갖가지 친분으로 파고들어 선의를 가장한 미끼를 던집니다. 그들만을 탓하기엔 에워싼 환경이 너무나 위험합니다. 영향력이 큰 선수나 감독일수록 더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어찌 보면 마수에 걸려든 당사자들이야말로 최대의 희생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프로야구, 축구, 배구에 이어 농구까지 4개 프로스포츠에서 모두 승부조작과 어두운 뒷거래가 드러나자 문화체육관광부와 프로단체들은 부랴부랴 이마를 맞대고 공동대응책을 발표했습니다. 승부조작과 관련해 자진신고자에게는 기존 1억 원의 포상금을 두 배로 올려 2억 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경기 현장에 감독관을 추가 배치하고 비디오 분석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프로농구연맹(KBL)은 정부의 포상금에다 1억 원을 더 얹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사후약방문격입니다. 실효성도 의심스럽습니다.

이미 기획된 부정이나 드러난 결과에 대한 대응보다는 근본적인 예방책 강구가 필요합니다. 경기 규칙을 익히고 기술을 단련하기에 앞서 약물과 도박의 위험을 알리고 유혹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교육이 절실합니다. 프로스포츠 단체들은 매 시즌에 앞서 선수, 지도자, 심판들에게 프로의식을 고취하고 정신자세를 가다듬는 교육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경기인들 스스로의 정신무장이야말로 자신을 위험에서 보호하고 팬들에 대한 도리를 지키게 하는 근본대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프로팀들에게는 팬들과 정규적인 교감의 기회를 가지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청소년 팬들과의 눈 맞춤이 중요합니다. 자신들의 우상을 바라보는 청소년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어떤 권위 있는 인사의 훈시나 명강의보다 더 명확히 선수들이 취해야 할 자세를 깨우쳐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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