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제도는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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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제도는 고치자

김홍묵

2013년 04월 01일 (월) 03:06:58

중국 후한(後漢) 말 환제(桓帝) 때, 선초(禪超) 등 이른바 오사(五邪)의 환관이 왕권을 능멸하고 전횡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일부 정의파 관료들이 거세게 항거하여 소위 당고(黨錮)의 화(禍)라는 대대적인 탄압 사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항쟁의 중심에 이응(李膺)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름 있는 선비에게서 학문을 익혀 장군 직에도 오르고, 하남(河南)지방의 지사로 천거되기도 했습니다. 한때 환관들의 모함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이응은 다시 경찰청장으로 복귀하여 절조를 지켰으므로 명성이 더욱 올라갔습니다. 그를 경모하는 신진 관료들은 이응의 추천을 받는 것을 대단한 명예로 여겼습니다. 이를 등용문(登龍門)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에 있는 협곡의 이름으로 물 흐름이 빨라 아무리 큰 물고기도 이 협곡을 쉬 거슬러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 번 용문의 급류를 타고 넘은 물고기는 바로 용이 된다고 합니다. 빼어난 기량과 각고의 노력으로 난관을 돌파하여 약진하는 기회를 얻는다는 등용문이라는 말은 이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박근혜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남짓, 정부 조직도 내각 구성도 지지부진한 가운데 용문을 넘보는 사람도 참 많아 보입니다. 정부 기관, 산하 단체, 투자 기관 등 수천 개의 자리가 널린 블루 오션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말입니다. 용문을 타넘으려고 노력하는 물고기보다 유력자의 천거에 눈독을 들이는 이들이 더 많은 판이긴 하지만.

등용문의 반대 의미로 점액(點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액’은 이마, ‘점’은 상처를 입힌다는 뜻입니다. 용문을 오르려다 급류에 휩쓸린 물고기가 근처에 있는 바위에 부딪혀 이마에 상처를 입고 기절한 채 다시 하류로 떠내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출세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 요샛말로 루저(loser)입니다.

그런데 요즘 점액자들은 흠결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 ‘내정자’에서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난 이들의 면면을 보면 병역 면탈,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다운 계약, 부동산 투기와 탈세 등은 기본 스펙입니다. 나아가 보유 주식 신고 누락, 해외 비자금 계좌 운영, 성 접대 등 의혹이 속속 불거지고 있습니다. 용은커녕 지렁이보다 영양가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물러나는 이들은 스스로의 허물을 부끄러워하거나 고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몰랐다” “착각했다” “생각이 모자랐다”는 식으로 슬쩍 넘어가려고 합니다. 청문회나 언론 취재를 통해 불거진 흠들은 옛날의 묵형(墨刑)에 버금가는 논죄인데도 말입니다. 고르고 골랐다는 인물들이 이러니 과연 닭 무리 속에서 학을 골라 낼 수 있을지.

더 큰 문제는 사회 전체가 불신의 늪에 빠지는 일입니다. 다행히 용문을 넘은 사람은 완벽한 사람들인지, 알량한 정치적 타협의 결과는 아닌지, 그들의 등용 여부를 결정하는 국회의원들은 그만한 자질과 경륜을 가진 ‘죄 없는 자’들인지. 말로는 ‘인사가 만사’라고 외치지만 5 년마다 되풀이되는 ‘인사 참사’를 보면서 국민은 정치 트라우마를 앓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5 년 단임으로 묶어 놓은 ‘화전민(火田民) 정권’ 제도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화전민들은 산자락에 불을 질러 초목을 태우고 돌을 골라낸 자리에서 몇 년간 농사를 짓다 땅이 척박해지면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버짐 난 머리처럼 흉측한 상처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누가 다시 찾지도 않고, 산사태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상도동’ ‘동교동’ ‘친노’ ‘친이’ ‘친박’으로 이어진 가운데, 과거 정권들이 거쳐간 뒷자리를 더듬어 보면 버려진 화전과 흡사합니다. 혈족과 측근, 이념과 지역 연고자들이 국사를 농단하는가 하면, 이어갈 정책은 실종되고, 여야 없이 끊임없는 편 가르기만 하고 있습니다. 남은 건 정치꾼이나 고위 공직자나 기업인들의 눈치놀음뿐입니다.

지속적으로 국력을 결집시킬 정책 개발은 외면한 채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고도 책임지지 않는 정당, 자신들의 권익과 지역구 사업을 위해 몇 천 억의 예산을 뗐다 붙였다 하는 국회, 강자엔 약하고 약자엔 강한 법치, 국민의 안녕과 국가의 안위를 앞세우면서 뒤로는 호박씨 까는 공권력. 이런 현상이 보편화되면 국민은 정부를 외면하게 됩니다.

차제에 정책정당과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관료사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회는 지역구의 민원 아닌 국익을 위한 입법에 매진하고, 국민은 당근공약에 현혹되지 않을 제도 개혁을 진지하게 연구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대통령의 4년 중임제, 국회의원의 중·대선거구제, 중요 정책(또는 공약)에 대한 국민투표 같은 정치 개혁들입니다.

정부를 믿지 못하고, 상처받는 국민이 많으면 잘 사는 나라, 강한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나랏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대승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작은 일에도 목숨을 거는 카오스 사회가 됩니다. 그런 도덕불감증 치료는 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야 효율이 올라갑니다.

공자(孔子)는 “훌륭한 사람(군자)은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떨어진다. 그러나 자신에게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자 자공(子貢)도 “군자의 허물은 일식 월식과 같아 누구나 그것을 본다. 또한 그것을 고치면 모두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도층은 조삼모사의 술수보다 백년대계의 혜안을 부릅떠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인내천 (183.XXX.XXX.130)

김선생님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좋은 지적이시고 좋은 제안인데 댓글이 썰렁한 이유가 뭘까요?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라서, 그래봤자 영원한 희망사항이라서 지레 동의하고 지레 포기한 때문이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임기의 4년 중임제는 백번 옳습니다!
중요한 국가정책에 대한 국민투표제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중대선거구제는 인구가 적은 자치단체의 소외를 가져올 공산이 크기에 고려해 볼 사안인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제도를 개혁해야 하지만 더불어 국민들 의식이 깨어야 하는데 아작도 혈연,지연,학연에 매어 있으니 답답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호남과 서울을 제외하곤 모두 빨간색이었는데 특히 그런 지역이 그런 저급한 의식에서 탈피하지 못하는게 이 나라의 불행입니다!
호남도 서울도 똑 같다구요?
참여정부 때에 호남을 배제한 문재인씨를 지지한 호남이 지역주의고 서울이 지역주의라고요?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호남도 지역주의 프레임에 갇혀있다고 도매금으로 넘가는데 아니죠! 호남은 나라의 위기 앞에 한번도 뒷전에 선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국민들이 호남사람들 만큼의 의식만 있다면 나라꼴이 이렇진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정치적 지형에선 말입니다!
김선생님이 주장하신 제도개혁과 함께 국민들 의식개혁도 이루어져 세계가 부러워하고 인정하는 대한민국으로 우뚝섰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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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2 09: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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