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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유리구두’
신아연 2013년 04월 05일 (금) 01:12:19
지난 6주 반의 한국 방문 동안 저는 마치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시드니 제 집에서 학대를 당하다 못해 마침내 한국에서 팔자를 왕창 고쳐 줄 ‘벤츠’ 탄 왕자를 만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룻밤 무도회의 신데렐라처럼 한국을 다녀오자마자 살림이 확 피거나 신분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물론 아닙니다.

마차가 호박으로 뒤바뀌기 전에, 마부가 새앙쥐로 변하기 전에 자정 전까지 집에 돌아와야 했던 신데렐라처럼 저 역시 하루도 더 지체없이 예정된 날에 맞춰 시드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다만 무도회의 휘황함에 넋을 잃은 신데렐라마냥 저의 한국 체험도 순간순간 즐겁고 놀라운 만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곤 다시 일상입니다.

그럼에도 제 자신이 신데렐라가 된 듯한 느낌은 바로 ‘유리구두’ 때문입니다.

한국을 떠나면서 슬며시 구두 한 짝을 떨어뜨리고 왔으니 구두 임자인 내게 조만간 ‘대박’이 터질 수도 있다는 말로 이해하시면 곤란합니다.

하기사 짐무게가 초과되어 한국에서 싸돌아 다니며 신었던 구두를 친정에 놓고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한 짝이 아닌 온전한 두 짝입니다.

그 누구라 고린내 나는 제 신발에 눈곱만큼의 관심을 두겠습니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사악한 계모와 심술궂은 이복 동생들로부터 갖은 구박과 고초를 당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신데렐라, 시드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만화 ‘신데렐라’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신데렐라처럼 혹독한 운명은 아니라 해도 평범한 사람의 한 생은 신데렐라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무력감, 그 무기력에 대한 자극이라곤 어처구니 없이 가해지는 폭력의 순간일 뿐이라는 절망감이 생존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악하고 병든 주변 상황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자신을 스스로 지켜가야 하나 그러기에는 최소한의 몸짓조차 버겁기만 합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건만 유약하고 순결한 깃털은 막무가내로 짓이겨져 수습할 새도 없이 피멍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을 묵묵히 견뎌냅니다.

살기 위해 아첨도 하고 비굴한 표정도 짓지만 때로는 어린 신데렐라처럼 당당히 자기 주장을 할 때도 있고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신데렐라는 언제나 ‘희망’을 노래하며 힘겨운 현실을 이겨나갑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언젠가는, 언젠가는...’을 읊조리며 고단한 하루를 슬프도록 아름답게 살아냅니다.
평범하고 각다분한 일상 중에도 즐거움과 행복을 발견하는 우리처럼 말입니다.

저의 이번 책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는 그 이전에 쓴 책들과는 다른 각별함이 있습니다.

망망대해의 외딴섬처럼 오도카니 외로운 이민생활, 출구 없는 방이자 미로처럼 단절된 가족 관계, 목숨 붙어 있는 한 놓을 수 없는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불안 등, 말 붙이자면 신데렐라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가진 제게 이번 책은 뜻밖의 ‘유리구두’와도 같았습니다.

신데렐라를 무도회에 보내주기 위해 요정 할머니가 요술 지팡이를 휘두를 때마다 걸치고 있던 누더기가 화려한 드레스로, 늙은 호박이 날렵한 마차로, 물에 빠진 새앙쥐들이 말과 마부로, 어리숙한 개가 충직한 시종으로 간단없이 다시 태어나지만, 그러나 ‘유리구두’만큼은 맨발인 신데렐라에게 거저 주어집니다.

비록 보잘 것 없어도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주변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드레스도 얻고 마차도, 마부도 거느리게 되겠지만 그러나 신데렐라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 ‘한 방’은 무상의 ‘유리구두’입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할지, 계획은 사람이 할지라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할지, 나의 노력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매듭, 혹은 반대로 내 노력과는 무관한 은총, 스치는 인연 같은 것들을 일컬어 ‘유리 구두’라 후투루 이름붙이고 싶습니다.

부모 복, 시대 복이야 말할 것도 없고, 살면서 ‘나의 나 된 것’은 내 힘만으로, 내가 했다고 할 것이 얼마나 될까요?

‘유튜브 시대 스타’ 싸이하고야 비교할 일도 아니지만, 제게 작은 글재주를 주신 것은 부모요, 게다가 호주 촌구석에 살면서도 인터넷 덕에 한국에 글을 알릴 수 있었으니 저 역시 부모와 시대를 잘 타고났달 뿐, 스스로의 공을 세울 일은 아니듯이요.

게다가 이번 책은 독자 중 한 분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그분의 도움이 제게는 제 노력과는 무관한 결정적인 ‘유리구두’인 셈입니다.

우리의 삶은 실상 너남없이 누군가가 무상으로 신겨준 ‘유리구두’로 영위되지 않나요.
앞서 간 모든 사람, 역사와 사상과 문화 예술의 빚, 더 크게는 신의 가호와 음덕으로 우리 모두는 일생 ‘유리구두’를 신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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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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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83.XXX.XXX.144)
계모와 의붓 언니들의 구박 때문에 늘 부엌떼기로 살았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졌기에 대모 요정의 도움으로 왕자와 결혼하는 신데렐라는 늘 우리의 우상으로 자리 했지요! 그러니까 우리들도 불우한 환경 탓하지 않고 신데렐라처럼 굴면, 재를 뒤집어 쓴 가련한 소녀에서 일약 왕후로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답니다.
제가 보기엔 아연님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신데렐라(콩쥐)가 아닌가 합니다!
아버님께서 비정통적 권력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인고의 세월을 옥에서 보내야 하셨으니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을테고 식구들이라고 온전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조국에 대한 원망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칼럼을 쓰시고 책까지 내셨으니 충분히 유리구두를 신을 자격이 있으십니다!
황금마차가 호박으로 변하고,마부와 시종들이 생쥐와 개로 변할까봐 허겁지겁 호주로 가셨지만 반드시 유리구두를 들고 호주까지 찾아가는 왕자가 나타날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무지한 국가폭력에 희생 당하셨으면서도 나라사랑에 틈을 보이지 않으심에 감동 먹었음을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국이 야비한 이웃의 불장난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사격해주십시오!
야연님의 글재주는 이럴 때를 위해 창조주께서 선물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팬은 칼보다 강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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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8 23:36:00
1 0
신아연 (60.XXX.XXX.96)
인내천님의 과찬에 빙그레 웃습니다. 제가 무슨 잘 난 일을 하고 있다고, 국가 사랑을 한다고 이렇게 칭찬을 하시는지. 다만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길러준 주변 환경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 존재가 빚진 곳인데 무슨 불평 불만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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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1 09:31:39
1 0
김윤옥 (39.XXX.XXX.180)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도 그저, 우연히, 어쩌다 굴러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 오늘 처음으로 아연님의 글을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아내는 동안 우리를 보내신 그 분이 감동하고 내려주시는 당연한 축복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돌아온 일상속에서 그 날의 의미를 놓치지 않는 복된 나날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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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6 22: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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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60.XXX.XXX.96)
일상이 곧 '유리구두점'입니다.^^ 우리 삶이 이렇게 하루하루 주어진 자체가 바로 '유리구두' 입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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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1 09: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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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220.XXX.XXX.128)
반복되는 일상의 무력감, 그 무기력에 대한 자극이라곤 어처구니 없이 가해지는 폭력의 순간일 뿐이라는 절망감이 생존을 무겁게 짓누릅니다."악하고 병든 주변 상황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자신을 스스로 지켜가야 하나 그러기에는 최소한의 몸짓조차 버겁기만 합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건만 유약하고 순결한 깃털은 막무가내로 짓이겨져 수습할 새도 없이 피멍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을 묵묵히 견뎌냅니다"
신아연 작가님의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답답함을 견뎌냅니다. 그런 속에서도 작가님은 묵묵히 글을 짓고 이번에 또 책을 생산해냈습니다.
축하드리며 이제 훌륭한 작가님이 되셨고 앞으로 더 정진하셔서 우리가 일상을 더 묵묵히 견딜 수 있게 해주시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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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6 06: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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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60.XXX.XXX.96)
세상에 삐져봤자 나만 손해죠.^^ 세상은 결코 제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법이 없지요. 그야말로 묵묵히 저혼자 걸어갑니다. 우리가 세상과 팔짱끼자 하고, 좀 잘 봐달라고 아양을 떨어야 하는 거지요... 그렇게 알랑방구를 끼는데도 한 세상 살아가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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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6 07: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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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식 (60.XXX.XXX.96)
출간을 축하드리며, 대박이 나기를 기원드립니다



또한 다시 시작되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더욱 활기차고, 행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이 완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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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5 08: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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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 (60.XXX.XXX.96)
신아연작가님,




김재은의 행복편지 400회 기념모임에서 작가님을 알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작가님의 블로그 들어가서 글 몇 가지를 읽어봤는데 작가님의 생각에 대부분 공감해서 작가님의 책을 사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칼럼을 애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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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5 08: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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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앤드류 (60.XXX.XXX.96)
바쁜 생활속에서도 아름다운 영감의 좋은글에 항상 감사함을 보냄니다.
6주간의 한국여행기를 한번...

희망의 메세지가 우리들 가슴속에 호수의 파장처럼 울려 퍼져 나가길 소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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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5 08: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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