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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작업
안진의 2013년 04월 11일 (목) 06:01:41
40미터가 넘는 철판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잠시 넓은 작업장을 빌렸습니다. 작업장은 성수역 먹자길 한복판에 있는데, 이 거리가 참 재미있습니다. 종일 작업을 하다보면 먹자길 명성답게 고기 굽는 냄새도 넘어오지만, 깨를 볶는 냄새도 코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깨 볶는 냄새를 얼마 만에 맡아보는지, 근처에 방앗간이 있다는 것도 반갑습니다.

냄새뿐 아니라 “고장 난 시계 삽니다.”를 비롯하여 “술 빵”을 외치는 확성기 소리에도 귀가 열립니다. 철물점, 목욕탕, 미장원, 족발집, 정육점, 전파상, 약국, 쌀집, 떡집, 얼음가게까지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입니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봄볕을 쬐며 잠시 걷는 이 동네가 사람 사는 냄새를 물씬 느끼게 해줍니다.

작업하고 있는 것은 아트 월(Art Wall)인데, 아파트 지하 공간 썽큰(sunken)의 벽면을 장식하게 됩니다. 아파트의 썽큰은 자연광을 유도하기 위해 대지를 파내고 조성한 곳으로, 대개 지하 주차장이나 헬스장과 같은 주민 커뮤니티 공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하에 위치하다 보니 소홀히 하면 흉물스런 사각지대로 변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제가 디자인하게 된 곳은 지하 1, 2층의 도서실과 헬스클럽에서 주로 조망하게 되는 벽면입니다. 광장이라 하기에는 높은 벽과 좁은 지면으로 답답해 보이는 적막한 공간이지만, 이곳을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바닥면에는 실제 식물을 통한 조경을, 벽면에는 미술장식품을 통한 상상의 꽃밭을 구현하여 지하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하공간을 문화적 상징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미술장식품 제작에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대학원까지 마친 제자들이지만 그림 그려 먹고산다는 것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이고, 아동미술을 한다 하더라도 온전한 수입을 보전받기는 힘이 드는 터라, 오랜만에 선생님이 부른 일이 내심 반가웠던지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몸은 고단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새로운 도구와 방법, 창작에 모두가 마음을 빼앗기고, 수다도 없이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식사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겨우 허리를 폈습니다. 작업복 차림으로 식당에 앉았고, 따사로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동네 길을 기웃거리는 잠깐의 휴식을 가졌을 뿐입니다.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모두가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정해진 일정 안에 작업을 끝내야 하다 보니, 작업량이 많았고 힘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간단히 채색을 하고 손쉽게 끝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늦은 밤, 이제 붓을 놓고 정리하자 해도, 누구도 먼저 붓을 냉큼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고 더 그릴 것을 찾았습니다.

그림이 완성되어 가면서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좋겠다며, 스스로의 작업을 대견해했고 노력에 만족해했습니다. 돈을 먼저 계산한 일이라면 누구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도, 형편상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제자들은 오랜만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창작의 즐거움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정해진 일정에 작품을 마치고 제자들은 작업도구들을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다시 또 선생님이 일을 맡아오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요. 제자들도 그들의 일상으로 보내고 40미터가 넘는 작품은 아파트 공사현장으로 보내고 텅 빈 작업장에 홀로 남았습니다. 여전히 창밖은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작업장 오는 길, 응봉동 암벽 등반 공원 쪽에 개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었던 풍경이 눈에 선해졌습니다. 두리번거리다 철퍼덕 주저앉아 폐자재가 된 다른 철판에 무심코 개나리꽃을 그려보았습니다. 애지중지 고생하며 만든 미술장식품은 아파트 지하공간에서 꽃을 피울 것이고, 제자들의 마음에는 벌써 희망이 자라고, 녹슨 철판에도 봄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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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공간,폐자재를 활용해 신선한 문화적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이야말로 부가가치가 높은 예술이 아닌가 합니다.
답답한 벽면을 대하는 시선들이 무슨 위안을 받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휴식과 상상을 제공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단박에 생산적 공간으로 뒤바뀔테니까요!
대한민국,
세계라는 정원에서 한 켠으로 내몰린 벽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개한 아프리카에도 분단국은 없는데 OECD국가라고 거들먹거리며 10위권내에 드는 경제대국인데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당장이라도 싸울 듯이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버려진 공간이 아닐런지요!
안교수님과 제자들의 노력으로 답답한 폐공간이 활력이 넘치는 문화공간으로 태어나듯이 타국의 이해로 전쟁 일촉즉발의 버려진 한반도가, 의식있는 국민들의 깨어있는 행동과 실천으로 남북화해의 봄날 작업을 시작했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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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1 0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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