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매니어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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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매니어의 행복

김영환

2013년 04월 12일 (금) 01:10:46

시내버스로 24번을 환승하여 부산까지 간 인터넷 블로거가 있습니다. ‘환승의 힘’으로 이룬 시내버스 사랑에 놀랄 뿐입니다. 1974년 8월15일에 막을 연 서울 지하철은 거미줄처럼 늘어나 9호선까지 총연장 314킬로미터가 되었습니다. 길이로는 런던(439킬로미터), 뉴욕(397킬로미터), 도쿄(317킬로미터)에 이어 세계4위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팔자에 역세권이 없는지, 필자는 이제 290개나 되는 지하철역이지만 걸어서 가기엔 먼 곳에 늘 살았습니다. 해서 지하철을 타더라도 시내버스에서 환승하게 됩니다.

버스의 좋은 점은 땅굴 속을 달리는 무표정하고 꽉 막힌 지하철과 달리 살아 움직이는 바깥세상을 창문으로 감촉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한때 지금의 지하철 칸처럼 ‘ㄷ’자로 앉아서 비어 있을 때는 빤히 맞은편 사람을 관찰시키고 출퇴근 시간에는 승객을 콩나물시루처럼 태워 좌우로 흔들던 ‘야만적’ 버스 좌석은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좌석이 인간을 존중하는 열차처럼 바뀐 것도 지하철보다 시내버스가 마음에 드는 이유입니다.

서울 지하철은 1호선이 일본 자본을 끌어들여 완성했기 때문인지 호주 자본이 투자된 9호선에 이르기까지 도쿄의 ‘야마노테(山手)’선을 본 딴 듯한 2열 횡대 마주보기 좌석이죠. 그러나 요즘의 우리 지하철은 한 줄 7명의 남녀노소 모두가 휴대폰에 탐닉하는 덕분에 사진을 찍으려는 듯한 민망한 시선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실성한 사람처럼 화면을 보며 혼자 희죽거리는 모습이 급증하고 있죠. 시내버스는 지하철보다 그런 장면이 훨씬 드물고, 있어도 눈에 잘 안 뜨인다는 점이 좋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와 경기도는 대중교통 환승 요금 정산을 놓고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서울시가 대주주인 스마트카드사가 정산비용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경기도가 반발한 것이죠.

경기도는 버스정류장 정보화의 선구입니다. 2007년 양주시 철마산 등산을 위해 거쳤던 마석읍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처음 보았던 정류소의 버스안내 정보시스템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비행기의 발착을 알리는 전광판 같은 모니터에 시시각각으로 버스도착 예정 정보가 떴던 것이죠. 발전을 거듭한 경기도 시스템은 이제 김포 마송의 천주교회 앞이건 장기동의 한옥마을 앞이건 성남시 분당구의 이름 모를 정류장이건 모니터의 형태만 다를 뿐 보급이 크게 확대되어 잘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과학도시인 대전이나 호남의 요충인 전주도 시내버스 교통정보시스템이 잘 발전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인천의 강화군은 인적이 뜸한 시골 정류장 안내판에 정류장 ID고유번호를 매겨놓고 군내버스 도착정보를 알려준다고 써놓고 있지만 최신 스마트폰으로 한 번도 정보 획득에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잘못 눌렀다’는 에러 메시지가 반복되는데 원인은 잘못 누른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잘못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매년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서울도 아직 낙후되어 있습니다. 일례로 강서구의 송정역하면 관문 김포의 바로 이웃이고 인천, 김포, 강화, 고양, 파주, 의정부로 가는 서부지역 교통의 요충인데도 불구하고 버스정보시스템 전광판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 각국의 관광객들로 붐비는 인사동 입구, 3호선 안국역 부근의 종로경찰서 앞은 버스정보 안내판이 없는데 건너편에는 있습니다.

교통 수송 분담률 30퍼센트를 자랑하는 시민의 발인 버스의 도착 안내 정보가 얼마만큼 중요한 지는 1리터로 몇 킬로미터도 못가는 대형 관용차로 휘발유를 펑펑 쓰며 몸을 젖히고 거드름 피며 출퇴근하는 일부 공직자들에겐 관심사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운행이 뜸한 노선일수록 도착 정보의 진가는 발휘되고 시민들은 편해집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서울시가 곧 간선도로를 달리는 심야전용버스를 운행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시민의 발의 확장이라고 높이 평가합니다. 요즘 ‘창조경제’라는 단어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지만 창조를 위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시간을 빼앗지 않는 것입니다. 전국 어디서건 국민들이 목을 길게 빼고 언제 올지 모를 시내버스(군내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게 하는 것, 운행 시각을 알려주어 대체 수단과 대체 노선을 찾아 탑승을 편리하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허송세월을 줄여 창조할 시간을 늘려주고 시민의 작은 행복을 찾아주는 공복들의 섬김입니다.

‘그린경제’가, ‘녹색성장’이, ‘창조경제’가 중요하다면 시민들이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이용하는 대중교통의 이용 확대 방안을 결코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과 재화와 정보의 유통 속도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경제발전의 지름길입니다. “빨리 빨리‘정신은 부작용이 있었지만 ’한강의 기적‘이라는 초고속 경제성장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정류장에 버스도착 정보시스템을 확대할 재원이 없다면 부자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퍼주는 무료 점심이나 부자 노인들에게까지 베푸는 무차별 무료 지하철 복지예산을 삭감해서라도 길을 마련해야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는 시내버스 중앙차로제 등 대중교통시스템의 혁신이 한몫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시민들에겐 대중교통이 지극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형균 (115.XXX.XXX.144)

우리나라 대중교통은 누가 뭐래도 선진국 수준이지요. 김 교수의 견해에 적극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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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6 01: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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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용 (59.XXX.XXX.230)

저도 버스 메니어 입니다.버스타면 마음이 편해지고 사색할 여유가 주어져서 좋더라고요.수십년전 재벌회장들이 울산공단방문할때 버스를 타고가는걸 보았는데 이런이야기를 친구들에게하곤 하였습니다.버스타고 사색에 잠기는 사람은 저절로 품위가 올라갑니다선생님같은 멋진 칼럼니스트도 버스 애찬가여서 용기가 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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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2 1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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